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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서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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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정
화진포
겨울산은, 얼어붙은 폭포기둥을 골짜기로 내려치는
새벽 차창에 이마를 대고
아야진, 송지호, 이름도 예쁜 마을들을 지나간다
눈 덮인 외설악에서 흘러내리는 물도
아침을 데우려 얼음장 밑을 치달리는데
버스에 매달리는 바다는 푸른 유리창으로 달아달라 생떼를 쓴다
눈꺼풀을 짓누르던 구름은 산정으로 오른다
바위 위에 돋아난 풀이 아니면 입도 대지 않을 雪鹿을 쫓는
산행 아니라, 사육이며 야생인 넋을 찾아 나선 것이니
나를 위해 길을 따로 내지 마라 화진포
경매가 끝난 대진항 모닥불 둘레엔
끼룩 끼루룩 어쩌다 남도창을 물고 온 갈매기가
허연 배때기로 하늘을 발랑 뒤집는 구경거리를 두고
간밤에 들어온 헌혈차량에 기대어
맨 먼저 팔뚝 걷어 부치고 아침 햇살처럼 헤실헤실 풀리는
엉덩이가 크고
약간 모자란 듯한 여자가 전혀 낯설지 않기를
전생에 어느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을까
머리끝이 쭈뼛이 서는 넋은 넋으로 이렇게 만나는가
온 세상이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다
명창은 언제 오나
기차는 정말로 정시에 떠나려나 보네
살며 사랑하며 한아름 바람을 안아본다는 것이
역 승강장에 등나무를 안았을 때 등꽃은 환하게 피어 있듯이
언제 어디서나 한번은 피어나라
마을 앞으로 강물 흐르고 널따란 바위 하나 있으면 다 명당이고
제자리걸음이 가장 멀리 걷는 일이지
정작 소리의 고장을 등지고 소리를 찾는다 떠나
노인들을 등치는 약장수 패에 끼여 근근이 밥이나 얻어먹다가
하늘도 고향이 있지 않았겠나, 마른 수수깡을 씹듯 목이 메여선
오자마자 도로 돌아가려면
오줌 몇 방울 찔끔거리려 내렸는가
명창이 될 기둥이라면 진즉 떡잎부터 알아볼 걸
뜻은 뜻밖에서 죽고 길은 길 밖으로 사라지듯
기차는 혼불인양 등꽃을 달고 떠나네
서규정․
전북 완주 출생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겨울 수선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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