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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이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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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송
木浦 노을
저 빛나는 햇살에
비로소
자신의 광채를
드러내는
우울
이 때는
마음의 심해가
처연히 웃는
시간
바다는 고요해서
오히려
거칠고
美人은
스스로가
미인임을 안다,
고 느낄 때 나는 속물주의자가 된다,
고 말하는 나는
스스로가
미인이 된다
추억이 없는 자
행복하리
죄 짓지 않았으므로
그러므로, 자, 소주 한 잔
말보로를 피는 女子
여자가 재를 턴다
oh, nice day, 날씨가 좋아
여자가 연기를 내뿜는다, 하품이다
눈물이 반짝, 여자의 담배 연기에 섞이며 빛난다
가문비나무에서 가문비나무로
훌쩍
새가
뛰어 넘는다, 라고 여자가 쓴다
까페 바그다드의 로고가 찍힌 메모지다
(Zoom in)
이 생에서
저 생으로의
good nice jump!
여자가 바라보는 창문 밖은 겨울과 가을
사이,
햇빛이다
추신 : 배경음악은 Manha De Carnaval, Bossa Nova 風으로 노래할 것
김경수
구름 그리고 멸망한 왕국 고구려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 위에 나무가 자란다. 나무 줄기가 큰 가지를 내고 큰 가지가 더 작은 가지를 내어 그 끝에 태양이 주는 먹이를 먹는 입을 만든다. 물고기처럼 수많은 입을 벌리는 나무들 사이로 태양에서 태어난 삼족오三足烏가 날아다닌다. 나무들을 실은 구름들이 줄지어 밀려간다. 구름 위에 얹혀진 의자들이 구름을 먹는다. 구름 위에 놓여진 벽시계가 햇볓을 마시고 자란다. 구름 떼를 이끌고 가는 대장 구름의 안장鞍裝에 해모수가 앉아 있다. 주몽도 앉아 있다. 수隋나라를 멸망시키고도 무너진 천 년 제국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하고 있다. 다섯 자루의 칼을 어깨에 짊어지고 당당히 서있는 연개소문이 피눈물을 흘리고 요동성을 지켜냈던 양만춘 장군이 땅을 치며 슬퍼하고 있다. 멸망한 제국의 역사책이 휘날리다가 찢겨져 멀리 날아가고 있다. 하늘의 양떼구름 위에 나무는 계속 자라고 연개소문이 칼을 빼 들고 당唐나라를 베었다. 비장한 음악을 이끌고 천둥이 땅으로 곤두박질했다.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 위에서 자라던 나무가 수백 개의 입을 벌리고 바람의 흔들림에 맞추어 슬픈 곡조의 노래를 했다.
시간을 점 속에 가두다
사라지는 순간적인 빛을 위해 붓을 든 인상주의 화가처럼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 만남이 이별의 꼬리를 물고 이별이 만남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역시 문제는 시간이었고 나에겐 어떤 대항력도 없다는 사실만이 존재했다. 부족한 시간은 기쁨 속에 반드시 슬픔의 핵核을 거느리고 있었다. 짧고도 긴 꿈이었다. 내 사랑과의 질긴 인연도 한순간에 깨어졌다. 역시 시간의 문제였다. 나와 내가 사랑한 가족들과 나의 과거는 눈 깜짝할 순간에 지워지기 위해 서 있었고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은 지구 위에 잠시 들른 손님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혀로 몸을 핥아주는 시간 앞에 꽃처럼 서서 모든 생각들을 꺼내 밖으로 버리고 있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가 달아나는 시간을 점 속에 가두었다.
김경수․
1957년 대구에서 출생
․199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 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문학ㆍ문예사조 이론서 알기 쉬운 문예사조와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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