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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시/강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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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66회 작성일 08-03-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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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여자


햇살에 튀겨진 석류알이 벌어져 있었어요 이따금 바람이 붉은 휘파람을 불며 지나갔어요
대장간이었나 익은 고추밭이었나 아니 생솔가지 튀는 아궁이 앞이었는지도 몰라요
수세미 자루를 보았어요 누렇게 익어 아래로 쳐져 내린 수세미, 건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마른 잎 하나가 막 시치미 떼는 것을 알고
내 속에서 빠져나간 바람이 끈질기게 수세미 자루를 흔들어대자
그 속에서 시뻘건 변명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벽보다 두꺼운 변명을 침 묻은 손가락으로 뚫었죠
작은 구멍 사이로 수세미 뼈 같은 그이의 얼굴이 보였어요
그리고 한 여자가 도마 위에 나를 뉘어놓고 칼질을 하고 있었어요 낑낑대는 신음소리와 탁탁 피 튀기는 소리, 여자는 내 인내가 고래힘줄보다 더 질기다며 칼 잡은 손이 부들거리고 있었어요 벌겋게 상기된 여자를 바라보며 그이의 얼굴에서 조개젓보다 더 삭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죠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후련해지고 있었어요 온몸은 스펀지 케잌처럼 부드러워지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난도질한 내가 바닥으로 스며진 그곳엔 연산홍보다 더 붉은 노을이 피어났어요 그 노을은 끝 간 데 없이 붉게 붉게 퍼져 나가고 있었어요
생솔가지 허리를 부러뜨리며 밥을 지을 때마다 나는 나를 벌건 아궁이 속으로 그렇게 밀어 넣고 있었어요





아부


나는 은사시 잎에서 바들거리기도 하고 붉은 장미 속에서 혀를 내밀기도 한다 풀잎 끝에 서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바람 내세우고 수숫잎에서 사각거리기도 한다

나는 치잣빛이 필요할 땐 치자에게
손을 내민다 쪽빛이 필요할 땐 쪽에게
때를 맞춰가며 길거나 붉거나
극점에서 정점으로 꼬리를 흔들고 다닌다

물의 가면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 실눈 속에 실뱀들이 득시글거린다고 수군댄다
입에서 나온 말이 쉬파리 떼가 되어 날아간다고 소리친다
닳아서 반들거리는 내 손끝 무늬 안에 검은 달빛이 고여 있다고 소스라친다

하지만 어떤 이는 내겐 강철보다 더 센 힘이 용광로보다 더 강한 집념이 그릇에 따라 변화무쌍한 용병술이 있다고 나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색색깔의 요란과 찬란한 구린내와 열두 개의 꼬리가 있다는 걸 아는 바위는 내가 그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입을 눈을 가슴을 아예 잠가버린다


강윤순
․2002년 ≪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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