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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시/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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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42회 작성일 08-03-0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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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정적, 흐르다


그는 해골처럼 말라간다. 반 평 남짓한 화단 구석 얼어붙은 가시나무, 아이들은 담벼락 아래서 줄을 긋고, 스물인지 마흔 살인지, 새들이 하루종일 귓불을 간지럽힌다. 그래도 아이들의 줄은 끊이지 않는다. 그가 히부죽이 웃는다. 며칠째 허리에 달고 있는 빈 주머니. 두통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설익은 탱자의 시퍼런 향기가 손바닥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저녁 무렵에도 줄을 긋고, 햇살이 담벼락에 얼어붙어 있다. 그는 또 얼음알갱이 같은 햇살을 이불 속에 구겨 넣고 잠이 든다. 창밖을 보던 그가 또 히부죽 웃는다. 검정고무신이 담벼락 아래서 햇살을 퍼내고 있다.





내가 음지(陰地)였을 때


내가 음지식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해는 길어 숲을 그득 채운다.
제기랄,
넌 절대 꽃을 피울 수 없어.
꽃이 피기도 전에 모가지를 뚝뚝 분질러놓는 일쯤이야.
얼굴 위로 스멀스멀 벌레들 기어오른다.
언제쯤 슬픔도 쥐며느리처럼 둥글게 말아 올릴 수 있을까.
죽음의 이빨로 덥석 베어 물어도 잘리지 않는,
틈, 언제나 자국을 남기는,
때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는,
누군가 마흔은 음지라고 말하더군.
가로수들도 저들끼리 연애를 하고
초경의 비릿함이거나 끈적함이 사라진 지 오래.
마흔의 그늘,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는지
날마다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습기를 만들어내는.


김효선․
제주 출생
․2004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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