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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시/최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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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60회 작성일 08-03-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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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란
시계초


강북삼성병원 제3수술실
심부전증 김씨가 창백한 미라처럼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그는 출근 시간을 초침처럼 째깍째깍 지켜야 하는 월급쟁이이므로
심장이 멈추거나 절대 꺼져서는 안 된다
갈비뼈를 들고 심장을 들어내고
수술실 사람들의 손길은 뭍으로 오르는 물고기 떼처럼 움직인다
그의 호흡이 수술에 가담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일시 정지되고
수술을 끝낸 심장의 재가동을 위해 호흡이 유도될 때
그 아래 그의 꼼짝없는 몸부림은 단 한번의 호흡을 위한 것이다
후~
첫 숨을 터뜨리지 못하면 죽는다
죽을힘을 다해 숨을 터뜨리지 않으면 영영 꺼져버린다
그의 귀 주위에는 어머니의 눈물 섞인 기도가 들리는데
경솔하신 나의 하느님은 자신과 가장 닮은 어머니를 만드시고는 어딜 가셨는지
링거의 주사액같이 똑똑 떨어지는 어머니의 눈물을 받아먹고도 그는 숨쉴 줄을 모른다
멈추면 안 된다 꺼지면 안 된다
심장이 뛰는 시간 우리가 뜨겁게 하루를 사랑해야 할 시간
사랑은 시계초보다 더 빨리 피고 지므로
째깍째깍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간다
꺼지면 안 된다 절대 꺼지면 안 된다
그는 다시 수술실에서 죽은 산 사람
월급쟁이 김씨의 가슴에 째깍째깍 심장박동기가 돈다
인공심장신분증을 받은 김씨는 알고 있다
그날 삼킨 눈물이 아직 입안에 남아
혀 밑에서 동글동글 말라간다는 것을





그날


시청 앞 시위현장에서 내가 도망쳐
재래시장 소방도로를 위급하게 달릴 때
단속반에게 걷어채어 나뒹구는 복숭아를
두서없이 주워 담던 할머니는
나보다 더 위급했다
할머니 치맛자락에 매달려 놀던
어린 손자의 그 맑은 눈빛도
그날
나보다 더 위급했다
쫓고 쫓기는 경계는 어디까지냐
너나없이 이 땅에 주둥이 끌고 사는 주제에



최명란․
1963년 진주 출생
․2005년 <조선일보> 동시,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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