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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단편/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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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표범이 지나간다
류 경
나는 무이에 왔다. 아무런 이유 없이.
수목장(樹木葬)을 취재할 때만 해도 무이 생각은 없었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사진을 찍고 메모한 뒤 원주 터미널로 나왔다. 매표구로 가면서 시간표 쪽을 보았을 때 그 이름을 발견했다. 무이. 그 지명만이 네온을 켠 듯했다.
왜 무이로 가는가. 이제는 수가 없는 그곳에.
차가 떠나길 기다리며 이 느닷없는 충동에 대하여 생각했다. 충동을 열정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충동을 용기로 오해하지도 않는다. 무이에 가서 뭘 어쩌자는 걸까. 취재거리가 하필 수목장인 것이 작용했을까? 숲의 나무 한 그루마다 뼛가루가 묻혀 있었다. 서른다섯 나이에 죽은 한 여자의 서어나무에는 글씨가 번지고 빛이 바랜 채 이런 비명(碑銘)이 걸려 있었다. ‘봄이 오면 수액을 타고 하늘로 오르리라 바람 불어 수분 날리는 날 강물에 섞이리라 물살의 흐름에 실려 대양에 이르리라 어부의 그물에 묻어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니’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낄 게 없다. 무이 가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감은 눈 속으로 표범이 지나갔다.
한 남자가 속수무책이라는 듯 두 팔을 들고 서 있다. 남자의 가슴과 몸통은 깊게 도려내져 있다. 그 구멍으로 표범이 지나간다. 한 마리는 지나갔고 한 마리는 지나가는 중이며 한 마리는 기다리고 있다. 이 세 마리가 다일 것 같지 않다. 기다리는 표범 뒤에도 남자의 뻥 뚫린 가슴을 지나갈 표범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을 것만 같다. 그림은 세 번째 표범의 꽁무니에서 잘려 있다. 키스 해링은 더 이상의 표범을 그리는 것이 무의미함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는 메일로 이 그림을 보내왔다. 달랑 그림 한 장뿐이었다. 그림의 제목마저 <Untitled>, 무제. 무이에서 그를 본 지 일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나는 처음엔 남자의 몸에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고, 다음엔 가볍고 날래게 지나가는 표범을 보았다. 그리고 수의 이름에서 눈이 멎었다. 그 이름이 맹수가 되어 내 몸을 지나갔다.
소사휴게소를 지날 때는 높은 해발 때문에 귀가 멍멍했다. 하루 내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그러나 소사는 구름안개에 자욱이 가려 있었다. 이 길을 처음 갔던 일년 전 구월에도 이곳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소사. 아름다워서 불행한 여자의 이름일 것 같은 지명이라고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소사를 지나자 줄곧 내리막 지형이었다. 해발고도가 낮아지면서 낙차 때문인지 귀가 더 멍했다. 구름안개는 환영처럼 사라지고 푸르른 구월 하늘이 차창 밖으로 돌아왔다.
그해 구월. 나는 수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는 무이에 살았다. 그곳은 산이 첩첩이 접힌 주름 사이 갈피처럼 나에게 생각되었다. 시간의 주름을 펼치고, 첩첩한 산의 갈피를 펼치면, 무이라는 작은 마을 안의 그가 시공의 빛나는 갈피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수는 긴팔 점퍼 안에 모직스웨터를 껴입고 있었다. 나는 여름치마에다 샌들, 끈 달린 탱크톱에 얇은 카디건을 걸쳤을 뿐이다. 카디건도 그나마 밤 기온을 생각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서울은 늦더위가 한창이었다. 춥겠는데. 미리 말해줄 걸.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수가 말했다. 그는 무이에서 난방 보일러를 끄는 것은 일년에 겨우 이십일 정도라고 했다. 그 밖의 날들은 추워서 난방을 끄고 잠들 수 없다고. 무이의 바람은 코끝이 쌩하도록 맑고 차가웠다. 두 달을 건너뛰어 십일월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하늘은 드높았고 빠른 구름이 흘러갔다. 샌들을 신은 맨발이 시렸다. 그는 외국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면 외국에 온 것처럼 느끼고 싶었던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나는 소소한 물건들을 자꾸 잃어버렸다. 아니, 소소하지 않다. 잃어버리는 일이 너무 자주,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소소하게 여길 수 없었다. 없으면 당장 아쉽거나 가슴이 철렁해지는 것들, 예컨대 열쇠, 지갑, 핸드백, 휴대폰, 립글로스, 숄……. 더워서 카디건을 벗어 팔에 걸치고 걷다가 어느 순간 팔이 허전한 걸 깨닫는다는 식이었다. 온 길을 돌아가면 늘 없었다. 흘린 적이 없다는 듯이. 사면 또 잃어버렸다. 어떡해도 내 것이 아니란 듯이. 길에서, 술집에서, 전철에서, 택시에서, 집에서. 집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찾지 못하는 것일 뿐 어디든 ‘있겠지’ 안심하다가 그것이 집안 구석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그 공백이 주는 섬뜩함이란! 그 모든 잃어버린 물건들에 혼이 있어 나에게 끊임없이 하나의 암시와 경고를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만큼 나는 명료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이 무엇을 잃으려는 전조였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여하튼 잃어버린 물건이란 빈 자리가 명백히 드러나는 것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그것이 더 불안했다. 거기에다 불면이 겹쳤다. 그렇다고 폭식을 하거나 쇼핑에 중독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엇으로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를 서성거렸다. 물건들과 나의 잠을 배낭 속에 꽁꽁 넣은 채. 발품을 파는 취재는 좋은 핑계거리였다. 나는 일거리만 들어오면 터미널로 달려 나갔다. 마음이 끊임없이 달아났다. 마음의 보폭만큼 내 걸음도 따라가야 했다. 달아나는 마음에게는 그 어디도 거처가 되어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무이였다. 산간내륙 깊숙이, 첩첩한 산의 갈피를 하나씩 젖히고 나는 무이에 왔다. 터미널에 서있는 수를 보았을 때, 어제까지 이 여행의 무의미함에 기가 질려 있던 나는 가슴을 가득 채우는 무엇인가를 피로 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내 하릴없는 여행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를 보기 위한 걸음이었음을.
고속버스가 동촌 톨게이트로 들어섰다. 터미널은 금방이었다. 무이 가는 시내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차도 사람도 없는 한적한 길을 달렸다. 물 없는 계곡이 흰뱀처럼 따라왔다. 지난여름의 수해로 돌덩이들이 흘러내려 물길을 하얗게 좁히고 있었다. 승객은 여섯 명이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 노인과 나. 산이 하나씩 뒤로 물러나고 다른 산이 나타났다. 버스가 가끔 섰고 사람이 한 명씩 탔다. 타고 내리는 사람마다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식이 너 거 계속 시끄럽게 떠들 거가?
네.
중학생 소녀들이 입속으로 푸후 웃었다. 운전기사는 듣지 못했다.
엉? 시끄럽게 떠들 거가?
차 안은 불만 없이 조용했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미식이라는 소녀와 또 다른 소녀가 운전기사에게 인사하고 내렸다. 소녀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사진 밭둑길을 걸어갔다. 수해로 산이 흘러내려 밭의 경계는 없어져 있었다. 수의 작업실은 어디 있었을까. 그의 트럭에는 ‘네모 디자인’이란 상호가 찍혀 있었다. 소목공인 그는 네모난 것들을 만들었다. 다탁, 의자, 실내용 벤치, 물푸레나무책상 같은 것. 외딴집 창가에서 스카이라이프 안테나가 보이다가 산에 묻혔다. 행동반경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곳까지 사람이 살고 있구나, 놀란다. 비 오는 날 흙 속에서 처음 나온 지렁이는 아마도 사람이라는 거대 종족이 땅 위에 무수히 살고 있는 것에 놀랄 것이다. 무이에서 나는 내가 지렁이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싸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그 구월과 똑같았다. 저온의 햇빛과 마린블루의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짙푸른 기를 버리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내 차림은 이번에도 서울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채였다. 산이 터미널 양편의 시야를 가로막고 하늘을 가두고 있었다. 터미널이라야 버스 두세 대가 간신히 서는 곳이었다. 흰 구름이 상공으로 빠르게 달아났다.
나는 대합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거리에는 구월의 햇볕이 정갈한 물처럼 고여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노인의 뒷모습이 햇빛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지나고 차가 지나는 순간에도 거리는 정적 속에 있는 듯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압축된 소음을 터트리며 지나갔다. 멀어지는 그 소리는 적막하게 울렸다. 적막해서 시끄러운, 그런 소음이었다. 터미널 양쪽으로 거리의 끝이 내다보였다. 어디로 갈까. 망설일 자유도 없을 만큼 작은 시가지였다. 이 거리에서 수와 했던 유일한 일은 밥을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디로 걸어가 어디서 밥을 먹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는 말하길,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면 함께 영화를 보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영화의 스토리며 장면들이 또렷이 떠오른다면 상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사람도 영화도 아니고, 그때의 자기 자신이 선명히 떠오른다면 더더욱 사랑일 리 없다고, 일년 지나 그 영화를 떠올릴 때쯤 누구랑 봤는지도 헷갈리게 될 거라고. 나는 일년이 지난 지금, 수와 나, 그가 한 말, 미세하게 달라지는 순간의 그의 표정과 목소리, 내 떨림과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떠올랐다. 하지만 무이의 거리는 영화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온다 해도 이렇게 낯설 줄 알았다. 나는 납득할 수 없으리만치 투명한 햇빛 속에 불안스레 서 있었다. 선명한 것은 되레 그 구월의 캄캄한 밤길이었다.
트럭 한 대가 사람 없이 캄캄한 시골길을 달려갔다. 그 길이 산과 산 사이로 뻗어 있다는 것은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서울의 밤거리에서는 맡을 수 없는 차갑고 시린 산의 냄새. 나는 트럭의 창틈으로 산의 육중한 호흡을 느꼈다. 이따금 전조등 불빛 속으로 외딴 인가의 불빛이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났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었다. 나는 서울에서처럼 카페라도 들어갈 거라 기대했지만 수는 곧장 트럭에 나를 태웠다.
니가 내 새끼를 뱄으면 좋겠어.
수는 계속 액셀을 밟았다. 트럭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나는 막상 이 밤의 만남에는 설렘이 조금도 없다는 걸 이상히 여기면서 이곳까지 나를 이끈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이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어.
나는 캄캄한 길 속으로 트럭을 끌고 가는, 그의 동물적 본능에 증오를 느꼈다. 좋다. 너에게 안기지 않겠다. 내가 너를 안는 것이다.
내 이름 수가 나무 수자야. 하는 일도 나무를 만지는 일이고. 난 나무, 넌 불. 니가 있어야 탈 수 있어. 제발 날 좀 활활 태워줘.
수가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트럭은 그 사이에 묘지를 지났다. 산의 냄새가 지워진 그 안에서 몇 개의 비석이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비석들 사이로 멀리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호텔의 불빛을 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장을, 내 마음을 틀어쥐지 못한 나의 남편을 격렬히 증오하기 시작했다.
장과 결혼 구 년이 되었다. 퇴근하는 그를 혼자서 맞는 생활이었다. 그가 현관에 들어설 때 쌀쌀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치에 앉아 그를 함께 맞는 생활은 어떨까? 나는 장에게 고양이를 키우자고 했다. 어릴 때 가까이 지내서 개보다 친근했다. 그는 처음엔 털이 날려서 싫다고 했다. 뭔가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두 번째엔 개든 고양이든 짐승은 짐승답게 살 권리가 있으며 인간의 필요를 위해 인형처럼 길들이는 건 이기적인 짓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어떤 필요를 느끼느냐고 물었다. 나는 키우면 필요가 생길 거라고 말장난을 치려다가 그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그냥,이라고 얼버무렸다.
세 번째에 그의 거절은 좀더 단호했다. 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결국 자기 일이 될 거라면서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딸 하나 돌보기도 벅차.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딸처럼 그의 품에 안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배역임을 깨달았기에. 설익은 풋사과 같은 내 유방이 거울에 비쳤다. 장은 거울 속의 내가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사춘기 소녀 같다고 말했다. 가엾은 것……. 그가 나를 안고 중얼거렸다. 잘 돌볼게,라는 말 정도로 그의 믿음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그의 셔츠를 다려주는 일, 책상을 깔끔하게 치워주는 일, 장을 보고 요리해서 끼니를 준비해주는 걸 고마워했다. 구 년 동안 변함없이 그는 말했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그러나 그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지는 못할 거라 믿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까?
고양이는, 실은 장, 당신을 위해서야. 디아블로(Diablo) 게임의 얼룩소를 죽이는 대신에 고양이 몸의 움직이는 곡선을 사랑해보라고. 얇은 뱃가죽 안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끊어질 듯 여리고 뜨거운 목숨을 느껴보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에게 혹시 있을지 모를 슬픔을 자극할까봐 그만두고 소를 사랑하느냐 물었다.
얼룩소를 사랑해?
나는 가끔 궁금했다. 장이 정말로 정관수술을 했는지. 말하자면 ‘소를 사랑하느냐’는 내 물음은 ‘수술을 했느냐’로 바뀌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의혹은 아니었다. 어쩌다 가끔, 내 몸이 임신할 수 있는 몸일까? 하고 스스로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에 가까운 궁금증이었다. 우리는 결혼 초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일이 바빴고 늘 피곤해했다. 어머니라는 캐릭터에 내가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한 인간이 자신의 어머니가 바로 나란 이유로 평생 불행할 거라는 믿음도 작용했다. 귀찮은 것도 사실이었고, 어쨌든 애를 갖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장도 같은 생각인 것을 알고 나는 안도했다. 신문을 볼 때면 내 일상의 홀가분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임신과 출산, 육아와 교육, 대학입시 관련 기사 면은 광고지 넘기듯 후르르 넘겨버렸다. 인생의 어떤 부분의 노역을 면제받은 기분이었다. 호젓하고 여유로웠다. 두 사람 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은 없었지만 저축에 대한 압박감도 별로 없었다. 집을 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십 년 동안 서른두 평 전세아파트에 살면서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의 가격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든 여행을 다녔다.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들일 돈을 우리 자신에게 썼다. 이기적인 부부라는 세상의 비난을 의식해 각자 수입의 1프로를 기부하기로 했다. 매달 수입의 작은 일부분이 무료급식시설이나 소년소녀가장, 무의탁노인들에게 건너갔다. 그러나 한번도 그들에게 밥을 퍼준 적 없고, 소년소녀를 만난 적 없다. 실은 세상의 비난이 두려웠던 게 아니다. 뭔가 미안했던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부들의 노고에, 우리를 키워준 세상에. 빚진 기분은 싫었다. 약간의 돈밖에 들일 게 없는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고자 했다. 우리는 각자, 그리고 또 함께 자기의 삶에 집중했다. 편하고 만족한 삶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장이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수를 보았을 때, 나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꼈다. 그의 얼굴은 깊은 밤에 네온을 켠 듯했다. 그의 얼굴은 어린 짐승의 것 같은, 어리광과 열광을 품고 있었다. 그가 내게 처음 한 말은 배고파요, 밥 사줘요,였다. 수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막무가내로 매달리고 보채는 남자에게 약해져 있는 나를 보았다. 그는 무작정 무이로 가자고 했다.
무이로 가자 무이로 가자……. 전철역에서 싸우다가 마침 들어온 전차의 열린 문으로 내가 들어가 버렸을 때 그가 뛰어들어 내 머리채를 허리까지 확 잡아당기는 일 같은 것, 머리뿌리가 으드득 뽑히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비명소리를 삼킨 채 일제히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일, 퇴근 무렵의 혼잡한 전차 안, 문이 닫히고, 그런 순간에도 무이로 가자는 그의 말이 밤의 네온처럼 마음에서 깜빡이고, 이 남자를 따라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랑 있고 싶다구! 그가 내 머리채를 흔든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무언가 으드득 뿌리 뽑히는 소리가 난다, 다시 한번, 이 남자를 따라 어디라도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칸으로 피해간다, 이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로, 그가 내 뒤에 와 있다, 너랑 있고 싶어,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게 안 되면 한 시간만이라도 더, 제발, 그는 전철 안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순간의 자신에게 자기를 바친다, 무이로 가는 버스는 끊겨버렸다, 전철이 흔들리고, 내 허리를 움켜쥔 그의 팔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의 손등 위로 내 손을 겹쳐 쥔다.
너는 널 혼자 두고 장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 질투 때문에 험한 말을 해놓고 날 사랑한다고 말한다. 길에서 싸우고 가버렸다가도 다시 돌아와 미친 듯이 나를 찾아 헤매었다. 영화관 앞에서 싸우고 네가 가버렸을 때, 나는 일층 커피숍의 유리창으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는 널 보았다. 저 남자를 어째야 할까. 한숨을 쉬면서 가슴이 아릿해지던 그 순간에 나는 벌써 다퉜던 이유를 잊었다. 넌 커피숍 안의 나를 보지 못했으면서 무작정 문을 밀고 들어왔다. 두리번대는 너의 눈은 엄마 손을 놓친 아이 같았다. 너는 널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간절하게 나를 찾던 표정을 뒤로 숨긴 채.
트럭이 산 밑의 외딴 호텔 앞에 섰다.
수와 나는 어떤 홀에 마주앉았다. 휴양지의 연회장처럼 천장이 높고 넓은 곳이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가 직원을 불렀을 때 그의 목소리가 천장 높이 울렸다.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나는 이제, 체크인을 지연하는 그의 동물적 욕망에 상처를 받았다. 참을 수 있는, 참아지는 욕망이라는 것에. 홀의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진 유리창에는 백색의 나무덧창이 달려 있었다. 여름에는 살대 틈으로 햇빛이 비쳐들었을 것이다. 찻잔과 식기 소리가 부딪치고 덧창에서 걸러진 부드러운 빛이 넓은 홀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둠에 물들어 먼지가 깊이 쌓인 듯만 했다. 우리는 여름 지나 문 닫은 휴양지에 늦게 도착한 여행자 같았다.
나는 보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온의 햇빛이 길 끝에서 끓고 있었다. 상점거리가 끝나는 그곳까지 걸어가자 굽이진 길 너머 다시 산이었다. 도대체 왜 무이에 왔을까. 나는 길을 건너 반대편의 보도로 온 길을 다시 걸었다. 목이 말랐다. 커피를 마시고도 싶었다. 브릿팝이 흐르는 바나 커피빈을 기대할 순 없었다. 다방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지하에, 당연하게도 무이 다방.
손님이 아무도 없는 실내에는 여자 셋이 따로따로 흩어져 있었다. 티브이를 보거나 거울을 보거나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를 내면서. 여자들은 마치 집안 부엌이나 마루에 있는 듯했다. 편안하게 살이 붙고, 입고 있는 옷도 집에서처럼 편해 보였다. 탁자는 여섯 개. 입구부터 안쪽까지 잡동사니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갑작스런 방문자처럼 쭈뼛쭈뼛 들어섰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티브이를 보던 중년여자가 나를 보고 뒤늦게 일어섰다. 어서오세요, 하면서 그녀는 나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저,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요. 나는 꾸물꾸물 말하면서 다방에 들어와 커피를 마셔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자신이 촌뜨기처럼 느껴졌다. 이 다방에는 나를 지렁이처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나는 티브이에서 가까운 안쪽 탁자에 실내를 등지고 앉았다. 집안에 있는 듯한 여자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통통한 중년여자가 플라스틱 잔에 얼음물을 가져왔다. 돌아서는 여자에게 따뜻한 물로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여자는 흔쾌히 네, 하고 대답하더니 플라스틱 잔을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뜨거운 물을 갖다 주었다. 그녀의 친절이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는 간장종지처럼 작고 빛바랜 듯한 청자색 잔에 넘칠 듯이 나왔다. 여자가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레 내려놓았기 때문에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여자는 성의껏 내려놓고 플라스틱 설탕통과 크림통의 뚜껑을 열어주었다. 나는 설탕과 크림까지 타주는 게 아닐까 걱정인지 기대감인지를 가졌다. 여자의 정성스런 손놀림이 그런 기대를 갖게 했다. 여자는 다행히, 그리고 아쉽게도 맛있게 드세요, 하고 갔다. 나는 뚜껑을 열어준 여자의 성의를 생각해 크림을 듬뿍 넣었다. 맛보지도 않고 넣은 걸 후회했다. 커피에서는 ‘다방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이한 탄내가 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특유의 더 진한 탄내를 기대했지만 커피는 더없이 맹맹했다.
손님은 계속 들지 않았다. 티브이에서는 연예인들이 나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커피는 아직 남았고 나는 무이에서 뭘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허스키한 비음이 섞인 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중력이 싫어.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운터에 앉은 여자가 손거울을 비춰 보며 목을 쓸어올리고 있었다. 중성적인 목소리와 달리 얼굴이 얄상했다. 세 여자 중에서 가장 젊고 예쁜 얼굴이었다.
쟨 꼭 주름을 중력이라고 하더라. 그게 아니래도. 맞게 갖다 붙여야지.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여자가 눈을 흘기곤 다시 티브이로 돌아갔다.
죽으면 너나없이 땅으로 끌려 내려가잖아. 세월이 밑에서 잡아당기는 게 중력이지 뭐야.
카운터의 여자가 여전히 목의 주름을 쓸어 올리며 고시랑거렸다. 티브이로 돌아간 여자는 연예인들을 따라 웃고 있었다. 나는 정말 특이한 목소리군,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그만 일어서려 할 때 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녀? 일 끝나고 버스 타면 전화해. 터미널로 데리러 나갈게.
문자에 찍힌 날짜와 시간을 보았다. 서울도 무이와 똑같이 구월십일일오후네시팔분이란 건 어쩐지 믿기지 않았다.
장과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 피 흘리는 소를 사랑하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타인의 취미를 비웃는 건 소의 살을 부위별로 골라서 구워먹는 사람이 개를 삶아먹지 말라고 나체로 시위하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 소 한 마리가 또 죽었다. 그러자 소는 없고 바닥에 피 무더기만 남았다. 우주공간에서 싸우는 것을 소명으로 태어난 소들은 매일 밤 그렇게 장렬히 전사했다. 그는 오늘도 수십 마리의 소를 죽인다. 그로써 그는 경험치를 올리고 더 힘센 전사가 된다. 게임일망정 살생하지 말라는 내 말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 작은 상자 안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갔냐고 물었다던 고조할머니 시대의 풍설만큼 순진해서 정겹다고 그가 말했다.
장의 회사는 자그맣게 잘 굴러갔다. 어떤 프로젝트는 실패했고 어떤 건 성공했다. 어느 땐 돈을 잃었고 어느 땐 잃은 것보다 더 벌었다. 그는 얻는 것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당연한 결과로 그는 심심해했다. 저녁이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레벨이 점점 높아졌고 선물과 보석, 보너스점수가 쌓여갔다. 그의 회사는 이제 잃기 시작했다. 의뢰가 줄고 그는 집으로 일찍 왔다. 적은 수입을 부끄러워했지만, 그리고 실패와, 절망이라는 것을 맛보는 듯도 했지만, 부끄러움과 절망은 그가 계속 게임에 빠져들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는 게임을 계속했다. 정신을 놓은 듯이 몰두했다. 새벽까지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고 피곤과 허무에 젖어 잠자리에 드는 날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새벽 세시에 깨어 소를 죽이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등 뒤에서 바라보는 나를 의식하지 못했다.
장은 소를 보았을 때,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외로운 등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슬픔 없이 떠올릴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새벽 세시에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내 가슴에 애인하게 떠올랐다. 이 남자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 남자는 나를 묶어 가졌다. 나는 장이 묶은 것이 정관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인생에 디아블로의 소는 무엇으로 바뀌어갈까. 그는 무엇으로 경험치를 올리고 더 힘센 전사가 될 수 있을까. 장과 나, 사랑은 갈 데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개나 소나 이구아나, 고양이를 사랑할지언정.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의 사랑이 갈 곳을 찾는 것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일어섰다. 중력을 싫어하는 여자가 카운터에서 나를 맞았다. 지갑을 꺼냈지만 여자는 나를 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목소리를 아끼려는 사람처럼. 할 수 없이, 아낄 것 없는 내 목소리로 얼마냐고 묻자 여자가 천천히 한 음절씩 끊어가며 커피 값을 말했다. 곱상한 얼굴에서 나오는 중성적인 비음이 내 주의를 끌었다. 나는 이런 독특함이라면 목소리를 아껴도 거만해 보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갑을 열었다. 애초에 여자의 얼굴을 본 까닭은 그 독특한 음색과 너무 싼 커피 값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수염이었다.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그녀의 코밑에 난 아름다운 수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코밑은 하얗게 화장되어 있었고 모공에서 한 올씩 나온 검고 부드러운 수염이 빗질된 듯이 숨죽어 있었다. 나른한 수염이었다. 오후 동안 금세 자라나온 듯 신선한 감마저 풍겼다. 여자도 뭔가 놀란 눈으로 나를 마주보았다. 태(胎)를 품을 수 없는 여자.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그 순간에 수의 음성이 마음에 울렸다.
엄마!
나는 서둘러 커피 값을 치르고 다방을 나왔다. 계단에서 돌아보았을 때 여자는 손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고 있었다. 입술 위의 그 나른하고도 신선한 수염을.
엄마아…….
절정에 다다랐을 때 수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 말이 웃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숨이 막히도록 그를 꽉 그러안았다.
수가 얼굴을 들어 나에게 키스한다. 나는 그의 키스를 되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편히 눕힌다. 그의 턱을 이 사이에 지그시 문다. 내 턱이 꽉 물고 싶어 하는 걸 이빨이 떨면서 억제하고 있다. 그는 두려움에 사무쳐 으으으 신음소리를 낸다.
이 광녀…….
그의 얼굴이 웃고 있다. 눈을 감고 나에게 자신을 맡기고 있다. 내 입술 사이로 새끼짐승이 낑낑대는 듯한 소리가 새나온다. 물어뜯고 싶은 걸 참느라 생긴 불만족의 신음소리다. 정사 후에 수컷을 뜯어먹는 암사마귀의 본능은 처음엔 인간 여자에게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컷은 계속 쓸모가 있다. 새끼와 성욕을 위해, 잡아먹는 걸 참아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먼 옛날의 암컷 조상에게서 받은 원시적 본능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얗게 드러난 무방비한 등을 그에게 내보인다. 그의 시선을 바짝 끌고 가면서. 그가 나를 밀어붙인다. 내 몸을 난폭하게 엎어버린다. 내 등에 올라탄다. 나는 그가 차라리 한 마리 수사마귀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로 향한 이 남자의 생명을 모두 써버린 후에,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이다. 이 남자는 잊는 것이다. 장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침에 눈 떴을 때면 소설 속의 여자들이 주인공 남자에게 그러는 것처럼 수가 메모 한 장 가볍게 남기고 떠나주었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자가 깨기 전에 홀연히 떠나주는 남자는 없는 모양인지, 그는 내 옆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가만히 일어나 유리문의 커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밖에는 새벽이 당도해 있었다. 수가 깨지 않도록 문을 조용히 여닫고 테라스로 나갔다. 서편 하늘 산마루에는 하얀 구름색의 달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의 달이 밤새 자신을 얇게 저며 놓았다가 한 조각 흘리고 간 밤의 자취 같았다. 강은 아직 깨나지 않은 듯 느리고 고요히 흘렀다.
그때 하나의 소리가 이도(耳道)를 울리며 들어왔다. 무엇인가 목쉰 듯 높이 울어대는 소리였다. 나는 테라스 난간에 팔을 짚고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똑같은 소리가 한 템포 눅어졌다가 다시 힘차게 울렸다. 순간 나는 아아, 수탉이야! 하고 입속으로 외쳤다. 새벽에 우는 닭울음 소리를 모른단 말인가? 하고 나 자신을 이상히 여기는 동안에도 수탉 소리는 골골이 메아리쳤다. 강 저편의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햇빛이 새벽 그늘을 지우며 테라스 쪽으로 서서히 뻗어왔다. 수탉이 다시 울었다. 목이 꺾이듯 애타게 울어대었다. 나는 불현듯 내 몸에서 깨어나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유리문을 열고, 커튼을 젖히고, 수에게 다가갔을 때 나는 그것이 자궁을 빈틈없이 채우고 싶은 욕망임을 알았다. 나의 수탉은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들치자 그가 자는 연기를 하고 있던 사람처럼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길은 새벽의 수탉처럼 깨어 있었다. 나는 내 젖가슴에 감긴 그의 팔뚝을 물었다. 물지 않을 수 없는 욕망으로 몸을 떨며. 이빨이 살 속으로 박혔다. 그에게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더……. 나는 물고 있던 팔을 버리고 그의 몸 위로 기어올랐다.
해질 무렵부터 해뜰 녘까지, 수와 함께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다방의 계단을 올라와 터미널 쪽으로 걸어갔다. 딱히 터미널로 가겠다는 생각은 아니면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원고를 주기로 한 시사 잡지의 편집 담당자였다. 그는 장례문화 취재 원고를 오늘까지 주기로 한 걸 잊었느냐고, 꾸민 정중함으로 물었다. 나는 잊을 리가 있느냐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면 멋진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마침 지나가는 고등학생이 있어 전화를 끊을 빌미가 되어주었다.
나는 고등학생에게 여기에 피씨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원고를 오늘 꼭 보낼 생각도 아니면서. 고등학생은 몹시 불쾌해하며 당연하죠, 두 개나 있는데,라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려 하자, 고등학생이 먼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데 피씨방이 두 개쯤 있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듣고 보니 그렇겠다고 대답했다. 하마터면,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고백할 뻔했다. 고등학생은 자기도 마침 피씨방에 가는 길이라면서 나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간판이 이상해서 여기 사람이 아니면 찾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내가 머뭇대자 고등학생은 바로 요기라고 턱짓을 했다. 나는 마지못해,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갔다. 터미널 옆에 치과가 들어 있는 건물의 지하였다. 간판에 C자가 없어져서 P방이었다. 고등학생이 계단을 함께 내려갈 기세여서 나는 볼 일 보고 이따가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려 하자 고등학생이 진짜 고맙냐고 물었다. 나는 커다래진 내 눈을 느끼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고등학생은 진짜 고맙다면 자기가 이따가 고개 처박고 엎어져 있을 때 숨쉬게 뒤집어달라고 말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무이에서 마주치는 이 사람들. 그들은 모두 수가 벗어두고 간 과거의 허물일 것 같았다.
재채기를 하느라 걸음이 늦어졌다. 톡 쏘는 매운 내가 길 밖으로 맹렬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게에는 방앗간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한 남자가 기계 앞에 멍하니 앉아 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기계도 멈췄는데 무엇이 매캐한 냄새를 쏟아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추 빻는 냄새가 피아노 소리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방앗간 이층에 피아노학원이 있었다. 나는 방앗간 남자의 시선에서 비켜선 채 모르는 이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서툴지만 귀에 익은 곡조였다. 왈츠. 춤을 출 수도, 동시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음악. 춤을 춘다고 해서 눈물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뻥 뚫린 몸통을 퐁 퐁 퐁 뛰어 건너는 표범의 걸음처럼 왈츠가 거리를 지나갔다. 나는 춤도 눈물도 없이 재채기를 쏟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이제 물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열쇠는 핸드백 안에 얌전히 들어있고 새 지갑은 모서리가 닳아갔다. 립글로스가 바닥난 것을 보았고 카디건의 팔에 뭉친 보풀을 떼면서 앉아 있었다. 내 잃어버린 물건들에 혼이 있다면 그것들은 이제 내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랑이 내 삶의 배경으로 물러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구월. 나는 무이에서 돌아왔다. 수가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수가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그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구월이 되었다. 수는 나에게 키스 해링의 그림 한 장을 보내왔다. 수는 나중에야 깨달았을 것이다. 산 밑 외딴 호텔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시간에 표범이 지나가는 통로가 뚫리고 있었음을.
한 남자가 속수무책이란 듯이 두 팔을 들고 서 있다. 가슴 깊이 도려내진 구멍으로 표범이 지나간다. 한 마리는 지나갔고 한 마리는 지나가는 중이며 한 마리는 기다리고 있다. 이 세 마리가 다일 것 같지 않다. 앞서 지나간 표범들이 있으며, 지나가는 표범 뒤에도 지나갈 표범들이 줄서 있다. 그러나 어쩌면 표범은 한 마리가 아닐까? 매번 똑같은 한 마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얼굴로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누구나 표범이 지나는 통로를 갖고 있다.
나는 터미널을 지나쳐 갔다. 딱히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은 아니면서. 수만큼 젊은 남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수보다 더 젊거나 더 늙은 남자들뿐이었다. 지나간 여름은 기나긴 비의 나날로 얼룩졌고, 무이의 주민들은 뉴스에 나와 산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수의 작업실은 산 아래 묻혀버렸다. 그가 무이를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공의 갈피 속에 빛나던 무이는 첩첩한 산에 묻혀 지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무이로 가자 무이로 가자, 했던 그곳, 사라져버린 거리를 걷고 있다. 표범이 지나간 공허의 내부를.
류 경․
2000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내 이름은 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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