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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단편/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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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02회 작성일 08-03-01 00:34

본문

|신작단편|
어느 살인자의 편지 
배지영


프롤로그
이 편지를 읽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을 씻는 일이었다. 따뜻한 물이 담긴 세면대에 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비누 거품을 만들어 손을 씻은 후 아주 여러 번 헹궜다. 수도꼭지에 물을 틀어놓은 채로, 한참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이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바람에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골라낼 새도 없이 각종 청구서와 광고물을 함께 집어 올라왔다. 소파에 앉아 카드 청구서와 각종 우편물을 뜯어보고 나서야 누런 봉투에 담긴 우편물을 발견했다. 발신인 주소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수신인에는 ‘이건수 선생님 앞’이라며 나의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 노트 크기의 누런 봉투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만져보니 두툼했다.
학생 중 누군가가 보낸 우편물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임시직이라 생각하며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이 올해로 7년째지만 나는 소위 비인기 강사였다.
대학 졸업 후 한 복지재단에 잠시 있었던 것을 끝으로 직장을 갖지 못했고 전직의 희망이나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견뎌내며 지냈다. 아이들은 패배자의 냄새를 쉽게 맡았다. 의무적으로 강의를 했고 아이들 역시 기계적으로 강의를 들었다. 
봉투에 적힌 글씨는 아주 작았다. 누군가 글씨를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크게 쓰던 때가 있었다. 
나는 봉투를 뜯었다. 5년 전 마지막으로 잡지사에 투고했던 원고가 기억났다. 내가 쓴 소설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부담되는 두께의 우편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재단에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편 소설로 만들어 열 개가 넘는 출판사에 보냈다. 일곱 군데에서는 정중한 거절의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동봉된 채 반송됐으며 나머지 세 군데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 반송되지도 않았다. 
봉투를 뜯어보니 안엔 아주 깨끗한 백지에 깨알 같지만 정서한 것임에 분명한 글의 행렬들이 반듯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편지는 내가 아닌 ‘정래식’이란 이름의 형사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며 어느 살인자의 편지였다. 

정래식 선생님 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 역시 선생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을 텔레비전을 통해 봤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연쇄 살인범을 잡으신 후 4개월 만에 1계급 승진을 하셨더군요. 경찰 창설 이래 최초의 초고속 승진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비로소 연쇄살인범 이현식을 잡은 분이 바로 ‘강력1팀 정래식 경위’라는 것을 알게 됐고 고민 끝에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선생님(호칭을 형사님이나 경위님으로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괜히 제가 위축돼서 말입니다)의 공로를 깎으려거나 심려를 끼쳐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떤 형사들보다 총명하실 테니까 제 편지를 받으시면 누구보다 신속하게 저를 잡아주실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혹시 이 편지에서 무슨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지금 쓰고 있는 펜은 0.7mm 유성펜인데 펜촉을 코끝에 바짝 갖다 대면 딸기맛 아이스크림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손엔 딸기맛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향을 누르는 악취가 나고 있군요. 
잠시 손을 씻고 오겠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냄새라도 한참 맡고 있으면 익숙해집니다. 불운이나 불행도 오랫동안 계속되면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를 단 한번이라도 맡거나, 전혀 다른 냄새로 환기된 다음 후각은 예민해지고 맙니다. 그것은 운명과 참 비슷합니다. 
냄새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에게는 ‘악취’일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는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진해 조선소에서 전선 폴링 작업이란 걸 했답니다. 제어판에서 기계까지 전기 배선을 끌어당기는 일이었는데 하루 하고 나면 어깨가 한 치는 늘어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만난 임씨는 말입니다, 발 냄새를 좋아했습니다. 구릿구릿한 발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푸근해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자기 발에서 올라오는 구린내를 맡으며 잠들 때만큼 행복할 수가 없다며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목욕탕 근처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좋다는 사람, 아이가 젖 토한 냄새가 좋다는 사람, 페인트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사람, 휘발유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는 사람, 심지어 계란 썩는 냄새가 좋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부산 항만에서 짐꾼으로 일할 때 만난 박씨는 암내를 맡으면 무조건 발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제철공장 기숙사에 있었을 때 하필이면 같은 방 동료가 암내가 나서 아주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증세가 박씨 혼자만은 아니었다고 하니 ‘악취’라고 정의할 수 있는 냄새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냄새에 대해 생각하게 된 최초의 기억은 ‘밥 냄새’입니다. 저는 지금도 밥냄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합니다. 밥을 지을 때 나는 폭신하면서도 달디단 냄새도 좋고 찬밥을 코끝에 가져다 댔을 때 풍겨 나오는 고목 냄새 같은 눅눅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의 냄새도 좋아합니다. 
문득 어린 시절 여름날 저녁이 떠오릅니다. 제가 열 살쯤 되었을 땝니다. 저는 놀다가 배가 고파 먹을 게 없나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아버지는 커다란 솥에 라면을 끓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들어오는 저를 보더니, 여느 때와 다르게 “배고프지?” 하고 물었습니다. 자상한 목소리로 말입니다. 
저는 때국물이 흐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라면 다섯 개가 솥 안에서 끓고 있는데 거기에 라면 한 봉지를 더 넣었습니다. 갑자기 생각난 듯 냉동고를 열더니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습니다. 돼지고기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통째로 넣더니 불을 더 키웠습니다. 저는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침을 꼴깍 삼키며 서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문지방에 서있는 제게 손짓을 했습니다.
“문지방에 서있으면 복 나간다. 물러서 있거라.”
저는 냉큼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시키기 전에, 밥상을 펴고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면발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꺼내 먹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한 입 물다가 다시 내려놓더니 가위로 고기를 잘게 잘랐습니다. 저는 밥통에 남은 밥을 긁어 그릇에 퍼 담았습니다.
아버진 선 채로 서서 면발을 계속 건져 먹었습니다. 라면 2개는 족히 먹은 다음에야, 아버진 행주로 솥의 양 옆을 잡고서 펴놓은 상 위에 솥을 내려놓았습니다. 대접을 두었습니다만, 아버진 솥째 먹었고 저는 젓가락으로 퍼진 라면 가닥을 건져 대접에 담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빨리 먹기 대회’ 우승자답게 라면을 금세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곤 밥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라면 국물에 넣어 말았습니다. 저도 숟가락으로 밥알을 건져 먹었습니다. 아버진 밥도 빠르게 먹었고 솥을 들어 후후 불어가며 남은 국물마저 모조리 마셨습니다.
“배부르지?”
빈 수저만 빨고 있는 제게 아버지는 물었습니다. 허기가 남아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진 일어나 냉장고를 열더니 사과를 꺼냈습니다. 제게 사과 반쪽을 갈라 주고 아버지 혼자 다섯 알을 먹어치웠습니다. 
씽크대 아래 빨간 고무대야 안엔 소금에 절여놓은 무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마저 아버진 식칼로 잘라 먹었습니다. 수돗물을 틀어 냄비에 물을 받더니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러고도 위가 차지 않았는지, 아버진 버럭 화를 냈습니다. 
“여편네가 도대체 먹을 걸 해놓질 않아.”
갑자기 제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습니다. 
“여기서 알짱거리지 말고 빨리 꺼져버려. 이 식충이 같은 놈아.”
저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나갔습니다.
“저런 개자식을 봤나. 지 에밀 닮아서 눈치가 없어. 어딜 가? 설거지를 해놓고 가야 할 거 아냐? 이런 망할 녀석.”
아버지가 더 분을 터트리기 전에 대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뛰어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은 없었습니다. 이미 해는 졌고 동네의 유일한 공터 겸 놀이터는 이미 중학생 형들의 차지가 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집집마다 창문엔 노오란 불빛이 새어나왔습니다. 찌개 냄새도 아니고 고기 굽는 냄새도 아닌 밥 냄새가 흘러나오더군요. 저는 코를 벌름거리며 달콤한 밥 냄새를 맡았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우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흥얼거림,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 그들은 어떻게 싸우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욕하지 않으며 저녁나절을 보낼 수 있는 걸까요. 위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질 수 있는 식사를 그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골목과 골목을 서성였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개발 공사가 한참인 개천가로 갔습니다. 거기는 고가도로를 잇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하천 옆 공터는 산책로를 만든다며 시멘트를 부어놓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개천이 내려다보이는 도로변 벤치에 앉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벤치들도 이미 가난한 연인들과 술주정뱅이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위로 걸어가서야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발이 몹시 아팠습니다. 양말을 신지 않아 운동화엔 땀이 가득 차 있었고 발등과 뒤꿈치가 까졌는지 따가웠습니다. 
해는 개천 너머 높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가로수의 매미들은 스억스억스억 귀가 따갑도록 울어 제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거북한 소리였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땀은 계속 흘렀습니다. 쓸쓸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득 화가 치밀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아귀처럼 꾸역꾸역 먹어대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장면 먹기 대회에서 1등을 한 후 20킬로가 더 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겨울이 되기도 전에 140킬로가 넘어버릴 것입니다. 
그때 발밑으로 쥐새끼 같은 것이 굼틀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놀라서 발을 벤치 위로 올렸습니다. 쥐는 아니었습니다. 새끼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누리끼리한 털에 검정 줄무늬가 있었습니다. 왼쪽 눈 밑으론 얼룩이라도 묻은 것처럼 검정 털이 나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예쁜 털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새끼들이 그렇듯, 그 고양이 역시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스러웠으며 귀여웠습니다. 새끼고양이는 바들바들 떨며 벤치 다리 옆에 몸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몸을 굽혀 한참을 내려다보았는데도 고양이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솜뭉치처럼 가벼웠습니다. 털은 조금 젖어있었고 배는 부드러웠습니다. 고양이의 얼굴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들어 올렸습니다. 빨간 혀를 내밀더니 제 손등을 핥았습니다. 까끌까끌한 고양이의 혀가 스치자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고양이는 제 손바닥보다도 작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새끼 고양이의 배는 마치 가스가 찬 것처럼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어미 고양이라면 임신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발도 다쳤는지 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고양이는 조그만 머리를 내게 비벼댔습니다.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조그맣고 까만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처럼 가슴 벅찬 충일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결심했습니다.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고양이의 행복은 나의 사명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행복이라니요. 그게 가능하기나 한 말입니까. 행복이란, 그러니까 집안에 화장실과 목욕탕이 함께 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처럼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중목욕탕을 가야 하고, 화장실을 가려면 대문을 나와 이웃집과 함께 써야 하는 그런 집엔 없는 거라는 겁니다.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키울 작정이었지요. 대문은 열려있었고, 대문 앞에 있는 가로등은 깜박였습니다.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집에 없었습니다. 청소부였던 아버지는 늘 밤이 깊어서야 출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지럽혀 놓은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과일 박스를 찾아내 그 안에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고양이는 푸른빛이 도는 사랑스런 회색 눈동자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미용 미용’ 울어댔습니다. 집안을 뒤져 긁어모은 동전으로 가게에서 우유 한 팩을 샀습니다. 접시에 담아 고양이 앞에 두었습니다. 고양이가 핥아먹었습니다. 접시의 우유를 다 먹으면 또 부어주고, 다 먹으면 또 부어주는 식으로 우유를 주었는데, 반도 채 먹지 않더군요. 나머지는 제가 다 먹었습니다. 그러다 전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제가 눈을 뜬 것은 켁켁거리는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동안 보아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임에도, 몸이 얼어붙은 듯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위기만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앉아 있었고 웃통은 벗은 채 바지만 입은 아버지는 어머니를 뒤에서 끌어안아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두려움에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고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아떼려 했습니다. 어머니의 꾀죄죄한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고 퍼머 머리카락이 구불구불 춤추고 있었습니다.
언제 일어났는지 상자 속에 넣어놓았던 새끼고양이가 다가와 내 손가락을 핥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목을 계속 졸랐습니다. 어머니의 혀가 밖으로 기어 나왔고 침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버둥거리며 몸을 흔들어댔지만, 두툼한 아버지의 손바닥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다 깬 내게 간절한 구원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저는 고양이를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지긋지긋한 공포심을 갖고 한 발짝 한 발짝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구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오후에 있었던 개천변의 벤치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손바닥 위엔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서늘한 기운에 정신을 차렸을 땐 어깨와 이마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몸 위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는지 고양이는 몸을 부르르 떨더군요. 털이 꼿꼿하게 섰습니다. 쓰다듬으면 다시금 털은 부드럽게 물결치듯 내려앉았습니다. 부드러운 털이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목 안에는 나뭇가지 같이 연한 뼈와 얇은 힘줄이 들어있겠지요. 
고양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고양이의 잿빛 눈동자를 바라봤습니다. 고양이는 빨갛고 가는 혀를 내밀었습니다. 빗방울이 고양이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빗방울을 털어냈습니다. 다짐했습니다. 고양이를 지켜주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고양이는 뭐가 불안한지 몸을 떨고 앞발로 허공을 할퀴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더군요. 
“이봐. 난 너를 지켜주겠어. 난 아버지와 다르다니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 갈수록 고양이의 심장박동은 더 가깝게 느껴졌고 바르르 떠는 울림이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진심을 몰라주는 고양이한테 슬슬 화가 났습니다.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 제 손등을 할퀴었습니다. 붉은 핏방울이 긁힌 자국을 따라 방울방울 올라왔습니다. 고양이는 갸르릉거렸습니다. 고양이의 가느다란 목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약하게 흔들었습니다.
“아프잖아. 이러면 내가 아프잖아.” 
손가락에 조금 힘을 주었습니다. 고양이의 네다리가 필사적으로 허공을 갈랐습니다. 왼손으로 고양이의 등을 쥐고 오른 손으론 고양이의 뒷덜미 쪽을 잡았습니다. 그리곤 비틀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투툭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후회와 함께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몰려왔습니다.
몸을 흔들어대던 고양이는 다시 솜뭉치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고양이는 목을 아래로 툭 내려뜨리더군요. 고양이 몸은 아직도 따스했지만, 더 이상 심장은 뛰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양이를 벤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눈물이 조금 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빗방울은 더 굵어졌지만 뛰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손바닥을 코에 가져다 댔습니다. 고양이 냄새였습니다. 저는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문지르며 계속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밥통을 끌어안고 밥을 비벼 먹고 있었습니다.
비를 쫄딱 맞은 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눈을 흘겼습니다. 어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목덜미에 검고 푸른 손가락 자국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표정은 천진했고 눈빛은 탁했고 티끌만큼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한 역겨운 표정이었습니다.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저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종이 박스로 만들어 놓았던 고양이 집을 애써 외면하며 이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저는 손바닥을 코에 들이대고 냄새 맡았습니다. 그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비릿하면서도 구릿구릿하면서도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가 쌓인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냄새라고 할까요. 
사실 자수 전화를 했던 것도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자꾸 냄새가 손바닥에서 풍겨 나오는 겁니다. 어떻게든 전 감옥이란 델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멈추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저 장난전화라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더 이상의 수사도 하지 않으셨고 제가 건 전화 내용에 대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나오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 전화를 받은 사람이 선생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선생님의 후배라면 따끔하게 혼내주시기 바랍니다. 
전 그때 전화를 해서, 연쇄살인범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살인사건 중 두 건은 내가 했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위치를 얘기하고 공중전화 앞에서 꼼짝 않고 기다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꼼짝 하지 않은 건 아니군요. 그날따라 자꾸 설사가 나와 화장실에 서너 번 갔다 왔고 그때마다 손을 씻느라 꾸물거리긴 했습니다. 설마 그때 다녀가신 건 아니겠죠?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가 어느 정돈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건 청소하던 아버지에게서 풍기던 땀 냄새와 오물 썩는 냄새를 합한 것보다 더 역겨운 냄샙니다.
아버지는 살이 계속 쪘습니다. 배급받은 청소복이 맞지 않았습니다. 주문을 하고 2개월 정도 기다린 후 겨우 아버지 체격에 맞는 큰 사이즈의 청소복을 받았지만 그것도 몇 개월 못 가서 꼭 끼고 말았습니다. 
도로변의 낙엽을 쓰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안전모를 쓰고 있었는데,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둔하게 몇 걸음 걷고 자루가 긴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습니다. 쓰레받기를 든 손엔 낙엽을 담은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죠. 도로의 낙엽과 쓰레기들을 언제 다 쓸어 담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더군요. 
한발 한발 굼뜨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악취,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러다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배가 터져 죽는 상상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먹어대던 무지막지한 것들이 뱃속에서 쏟아져 나와, 피나 내장보다 더 많은 양의 음식물들이 기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결국 아버진 배가 터져 죽긴 했습니다. 아버지는 마른 오징어를 계속 먹어대다가, 소화불량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마른 오징어가 위 속에서 불으면서 소화를 못 시켰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한쪽 입가에 장난스럽고 애교스런 오징어 다리가 삐죽이 나와 있었습니다.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이미 그때 죽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버지 몸무게는 170킬로가 넘어 있었습니다. 두 명의 구급요원은 아버지를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막대기를 등짝 뒤에 넣어 지렛대의 힘으로 몸을 굴려 들것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들것을 들 수 없었습니다. 다시 바퀴 달린 들것에 옮겨놓은 후, 미닫이 문 두 짝을 들어내고, 철제 대문의 양쪽을 빼내고서야, 좁디좁은 집에서 아버지를 옮겨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그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후루룩 떨어지던 은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단은 요술 가루처럼 아버지가 지나간 골목길을 하얗게 뿌려주었습니다. 구급차에 옮겨지자 그나마 느리게 뛰던 아버지의 심장은 완전히 멈췄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즐거워할 어머니가 곁에 없었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기 두 달 전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아버지의 모진 매질을 견디지 못했던지 대문을 열고 뛰쳐나갔습니다. 뚱뚱한 아버지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머니는 계속 뛰다가 골목길에서 나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맞아 죽을 것 같았던 어머니는 차에 치여 죽었고 차에 치여 죽을 것 같았던 아버지는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전 울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자유를 얻었는데 왜 울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하게 아버지는 보험을 들었더군요. 보험금의 액수가 상당히 컸습니다. 다행이라구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전 한순간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 말입니다.
보험금 덕분에 다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존재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삼촌이란 작자가 나타나 저를 부양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삼촌은 사창가 부근에서 만물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평도 안 되는 그곳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습니다. 양은냄비와 수저, 도마, 빨래판에서부터 귀후비개, 무좀약, 구두 밑창, 우산, 콘돔, 성용품, 석유와 얼음, 그리고 빨간 비디오 테이프까지. 
상황에 따라선 있으나 없으나 그게 그거지만, 없으면 불편할 온갖 물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저는 만물상 옆쪽 창고를 치워 한켠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방은 가게 앞문을 잠그면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난방은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크기의 전기요로 해결했습니다. 여름에는 가게에 도둑이 들까, 문도 열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물건들과 함께 기나긴 여름밤의 찜통 같은 더위를 견뎌내야 했지요.
왜 그동안 삼촌이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삼촌은 지독한 구두쇠였습니다. 행여나 자신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쉬운 소리를 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삼촌은 아버지와 달리 몸피가 굉장히 작고 말랐습니다. 손은 닭발처럼 검은 살가죽이 뼈에 들러붙어 있었으며 팔은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고 가시처럼 얇았습니다.
반면에 숙모는 살집이 아주 좋았습니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음식 솜씨도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촌은 숙모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삼촌은 숙모가 헤프다고 믿고 있었죠.
삼촌에겐 한 가지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섹스를 하지 않아야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촌은 가급적 숙모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고 성욕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득 차오를 때, 숙모에게 입으로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구요?
숙모가 말해줬기 때문입니다. 숙모는 제게 편하게 말했고 이런 대화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인간 거시기 작은 거 콤플렉스잖아. 지가 아무리 용써봤자 내가 만족하지 못할 게 뻔한 걸 안 게지. 그래도 말야, 맨날 지만 빨아 달라는게 말이 돼? 아주 날 거시기 싸개만도 못 하게 본다니까. 난 뭐 성욕도 없나?”
그러면서 숙모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숙였지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정말이지 숙모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열일곱이었지만, 성적으로는 열세 살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은 공연히 저와 숙모를 의심했습니다. 
제가 석유나 얼음 배달을 갔다가 들어오면 여지없이 삼촌은 숙모를 때렸습니다. 제가 그걸 말릴 수 있느냐 하면 물론 아니었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 어미 아비 싸울 때도 안 말렸는데, 무슨 정이 새롭다고 삼촌과 숙모를 말리겠습니까. 배달용 스쿠터를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며 한바탕의 내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습니다. 
숙모에겐 진짜 애인이 있었습니다. 애인이란 사내 역시 변변찮아서 만물상이나 다름없는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흰색 다마스에 성용품을 가득 담아 한갓진 차도나 국도 옆에 세워놓고 파는 사내였지요. 그는 우리 만물상에 물품을 대주었습니다. 삼촌은 성용품을 냉장고에 넣어 팔곤 했는데 이게 입소문이 나서 꽤 많이 팔렸습니다.
다마스 사내는 2주에 한번, 삼촌이 물건을 떼러 시장을 갈 때마다 오곤 했습니다. 사내는 가게 앞에 다마스를 주차하고 (미리 준비해 놓은) 물건을 담은 부대를 제게 던졌습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숙모는 재빨리 다마스에 올라탔습니다. 숙모는 제게 윙크를 했고 저는 그들의 외도에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사내는 숙모를 싣고 한적한 골목길에 주차를 해놓았고 차는 한참동안 들썩였습니다. 이십여 분 후 발그레한 얼굴의 숙모가 차에서 내렸고, 숙모는 가게까지 흐느적흐느적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은 다마스 사내에게서 선물 받은 양가죽 콘돔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선물이라 하기에 좀 그렇고 신형 콘돔 사은품으로 붙어있는 것을, 사내가 몇 통 건네준 것에 불과한 겁니다. 제가 콘돔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까도 말했지만 당시 제 성적 수준은 열세 살 정도였습니다) 그저 호기심에 기분이 어떤지나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동안 했던 마스터베이션의 등장인물은 결코 숙모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전 숙모나 어머니처럼 살집이 있거나 키가 큰 여성들은 딱 질색입니다.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 (아마도 다마스 사내가 준 콘돔이라 그런 거 같습니다) 자꾸 숙모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저는 몇 번만에 사정을 했고,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콘돔을 베개 옆에 던져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누가 흔들어 깨운 것도 아닌데, 이상한 기운 때문에 눈을 떴습니다. 눈앞엔 눈알이 시뻘건 삼촌이 칼을 들고 떡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습니다. 저는 몸을 옆으로 옮기려 했지만, 방이 워낙 좁아서 더 이상 갈 곳도 없었습니다. 
“삼촌, 왜 그러세요?”
삼촌은 야비하게 웃으며 눈꺼풀을 바르르 떨었습니다. 
“너가 몰라서 묻냐? 이제 아주 내 앞에다 이런 걸 갖다 놓는구나. 응?”
그러면서 제가 지난밤 사용해서 흐물흐물해진, 정액이 담겨있는 콘돔을 얼굴 위로 철퍼덕 던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에요. 아니에요.”
숙모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기에 (숙모를 떠올리며 했던 마스터베이션이 찔리기도 해서) 저는 계속 아니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삼촌은 칼자루를 꼭 쥐고는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제 나이 열일곱이었습니다. 또래치고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해 키도 작고 몸도 말랐지만, 한창 힘이 솟고 피가 뜨거운 십대란 말이죠. 
전 삼촌의 손목을 잡아 벽에다 메다꽂고 일어섰습니다. 삼촌은 칼자루를 떨어뜨리고 ‘어이쿠’ 하며 바닥에 떨어져 나갔습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저는 급히 창고방에서 뛰쳐나갔습니다. 
왜 그가 왔는지 몰랐는데, 다마스 사내가 마침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사내는 콘돔과 자위 기구가 들어있는 종이박스를 두 손에 든 채 몸으로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하니 서있었지요. 삼촌은 다시 칼을 잡아들고 내 뒤를 쫓아 튀어 나왔습니다. 
다마스 사내는 삼촌이 자기에게 칼을 들고 쫓아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상자를 삼촌에게 던졌습니다. 그 바람에 삼촌은 칼을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사내 뒤로 숨었고 삼촌은 사내를 주먹으로 팼습니다. 삼촌은 사내가 나를 편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사내는 바닥에 벌러덩 나뒹굴었고 그러면서 바닥에 떨어졌던 칼을 쥐었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다마스 사내는 삼촌의 허벅지에 칼을 꽂았습니다. 
삼촌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때 저는 사내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졸랐습니다. 삼촌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손에 힘을 풀자, 사내는 앞으로 푹 거꾸러졌습니다. 삼촌은 사내의 죽음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신음 소리를 내며 자신의 허벅지에 꽂았던 칼을 뽑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멍하니 서있자, 삼촌은 죽은 사내를 다른 쪽 발로 밀쳐 내더니 “가서 수건이나 가져와. 피가 계속 나잖아.”라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저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사내와 바닥에 흐르는 피를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걸어, 가게 선반 위에 걸려있는 수건을 가져왔습니다. 
삼촌의 초라한 등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작은 등짝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먹거렸습니다. 역겨운 악취가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수건으로 손바닥을 감았습니다.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냄새가 심해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곤 바닥에 뒹굴고 있는 피 묻은 칼자루를 조심스럽게 쥐었습니다. 납작한 칼자루는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다른 선택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 칼로 삼촌의 옆구리에 꽂았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세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총 다섯 번을 꽂았다고 하더군요. 삼촌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뭐라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수건으로 칼자루를 깨끗이 닦은 후, 다마스 사내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정액이 묻은 콘돔을 주머니에 넣은 후, 조용히 신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사건 현장과 시체를 살펴보았다면, 다마스 사내의 목덜미에 난 손자국의 크기가 삼촌의 얇은 손가락보다는 약간 더 크다는 점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더군요. 
아, 선생님처럼 명민하신 분이 그 수사를 맡았다면 분명히 전 잡혔을 겁니다. 이걸 다행이라 할까요, 아니면 불행이라 할까요. 단언컨대 그건 불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치정 살인이 분명한데다가, 이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숙모는 사내와의 불륜 행각을 횡설수설하며 술술 불어댔습니다. 숙모는 삼촌에게 불륜이 들킨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날 다마스 사내가 온 것은 전날 주었던 콘돔을 반품시킨다는 명목으로 숙모와 데이트를 즐기러 온 거였다고 합니다. 
숙모 대신 한달 가량 만물상의 물건을 팔다가, 돈을 훔쳐 나와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뒤 10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릅니다. 그 기간 동안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아무도 때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절 때리고 욕하기도 했지만, 전 참았습니다. 
처음엔 시설이 썩 괜찮은 여관에서 몇 개월 지내며 빈둥거리다가, 돈이 떨어진 이후부터는 한 평도 안 되는 벌집 같은 쪽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은 아주 작은 방들도 나눠져 있었고 화장실 겸 세면실은 1층에 딱 하나 있었습니다. 벽과 문이 있고 천장이 있다는 것이 ‘노숙’하는 것과의 차이일 뿐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일주일에 한 두 명은 얼어 죽었습니다. 
그나마 전 전기방석을 깔아 놔서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여름엔 벽에 뚫린 조그만 환기창을 열어 환기도 시켜주었습니다. 벽에 달려있던 선반도 고쳐서 새로 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방은 집이 아니었기에 어떤 애착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비가 샐 때도 자주 있었고 겨울엔 외풍이 너무 세서 이가 갈리도록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 노인이 밤이면 끙끙 앓아대는 소리를 듣느라,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한밤 내내 ‘아이고, 나 죽겠네.’, ‘아파 죽겄네.’, ‘이러느니 죽고말지.’ 이러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군요. 주먹으로 벽을 쿵쿵 울려도 소용없었습니다.
더 화가 나는 건, 아침이면 말짱한 모습으로 일어나 1층 화장실에서 긴 줄 뒤에 서서 기어코 세면을 마치고 나오는 노인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저 노인네는 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 전 아파트 현장에 가구와 씽크대 등을 설치 보조 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구를 날라 자리에 배치해 놓으면 기술자들이 설치했습니다. 잘 해야 하루 두 건 정도 할 수 있었지만 일은 끔찍하게 고되었습니다. 건당 4만원 정도 받았는데 오전, 오후 두 집을 뛰면 이틀은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기술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어깨 너머 배우려고 기웃거릴라치면 그것도 기술이라고 이를 드러내며 노려보더군요.
좁은 방안에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쥐오줌과 곰팡이로 얼룩진 천장, 그리고 싸구려 벽지가 흉물스럽게 뜯겨진 벽을 바라보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은 상태가 될 때까지 몸도 마음도 소진되기만을 ‘희망’했습니다. 
이 고결한 마음을 옆방 노인은 더럽혔습니다. 정말이지 단 하루라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밤 잠꼬대하듯 ‘죽겠다’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이 웅얼거리는 말들. 처음에는 누구와 끊임없이 소곤거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밤새 자지 않고 나를 괴롭힐 요량이라도 부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들어오자 마자 제게 봉지쌀을 안겨주더군요. 처음엔 교회나 성당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남자는 제게 명함을 주었습니다. 대출 담보나 인력소개소 같은 전단지 명함이 아닌, 흰 종이에 인쇄된 명함을 받아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하얀 명함에는 ‘한우리도시연구소’라는 까만 글씨가 찍혀있었습니다. 남자가 명함을 건네줄 때 어떤 냄새가 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과일향이었습니다. 사과나 감같이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나 볼 수 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이국적인 열대 과일에서 날 법한 그런 향 말입니다. 물론 그런 과일을 먹어본 적도 향을 맡아본 적도 없지만 능히 그럴 듯싶은 냄새가 났습니다. 
남자는 무척 단어를 가려가며 어렵게 말했습니다. IMF 이후 쪽방 주거민의 실태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다면서 협조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쌀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향기에 매혹되어 설문에 응했습니다. 
남자는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묻더니 주제넘게 어떻게 쪽방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꼬치꼬치 캐묻더군요. 순간 이 남자가 완전범죄로 끝난 나의 범죄에 대해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옆방 노인의 과거에 대해 제게 조금 흘리더군요.
“옆 방 노인분 말예요. 그분은 그동안 본인이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저희와 면담 가운데 가출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셨고 저희 한우리도시연구소에서 행방을 추적한 결과 부인께서 사망하신 것을 알게 됐거든요.”
내가 과거 이야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남자는 이렇게 에둘렀습니다. 저는 띄엄띄엄 말했습니다. 불행의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사실 그건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새롭진 않지만 거기엔 가장 개성 있는 음습한 기운이 서려있습니다. 이하의 생활이 있을 수 없다는 비참함을 깨는, 더 밑바닥의 생활이 대기하고 있는 게 또 이쪽 생활입니다.
남자는 어쩌면 참으로 평범한 제 과거를, 여기 쪽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순위를 매긴다면 그리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열심히 적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이야길 제 소설에 조금 인용해도 될까요?”
남자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묻더군요.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구나 싶어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긋지긋한 노인네의 웅얼거림도 시작되었지요. 남자는 필기구와 작은 수첩을 가방에 넣더니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남자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남자의 보드라운 손과 악수했지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의 엉덩이엔 내 방에서 묻은 것임에 분명한 실오라기가 붙어있었습니다. 실오라기는 떨어질 듯 말 듯하며 끈질기게 붙어있었습니다. 
남자가 옆방 노인과 인사 나누는 목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저는 가만히 벽에 귀를 댔습니다. 남자는 노인에게 지난달부터 3만 원씩 용돈이 입금되었는데 받았냐고 묻더군요. 노인은 뭐라고 지껄였고 남자는 낮게 웃었습니다. 남자는 저와 비슷한 질문을 노인에게 했고 노인은 계속 웅얼거렸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하수구 냄새가 났습니다. 그땐 그게 손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몰랐습니다. 쪽방에선 어디에서나 이상한 냄새가 피워 올랐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일찌감치 노인을 따라나섰습니다. 
노인은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신문지를 주워 자루에 담았습니다. 그것을 질질 끌고 올라와 지하철 입구에 묶어놓은 자신의 리어카에 실었습니다. 노인은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슬렁슬렁 돌며 폐휴지를 주웠습니다. 가끔 길거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담배를 꺼내 몇 모금 빨다가, 불씨를 털어내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가게에서 빵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사더니 놀이터 벤치에 앉아 점심으로 때우더군요. 빵을 손가락으로 조금 떼어 입에 넣고는 지루할 정도로 오랫동안 씹었습니다. 소주병을 들어 몇 모금 마시고는 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그의 앞으로 비둘기가 날아와도 쫓지 않았고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있었지요. 빵을 다 먹고 나자, 소주는 반병쯤 남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술을 더 마시지 않았습니다. 소주의 뚜껑을 단단히 닫았습니다. 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병 입구를 둘둘 말아 호주머니 안에다 소주병을 집어넣었습니다. 저도 품 안에 있는 망치를 집어 보았습니다.
노인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보다 더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노인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노인은 저를 흘낏 보고는 다시 앞만 보며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함께 걸었습니다.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났습니다. 낮에 노인이 지났던 공업사와 반찬가게와 유통사를 지났습니다. 노인은 리어카를 멈추더니 저를 돌아봤습니다.
“우리 어디서 봤죠?”
노인은 멍한 눈빛으로 저를 돌아봤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빙그레 웃었습니다.
“글쎄요.”
그러자 노인은 이가 다 빠진 볼을 우물거리더니 또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노인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해졌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동네 골목골목마다 참 많은 집들이 있더군요. 
이윽고 저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말이지요.
“제가 일하는 공업사가 말에요. 이 동네로 이사를 왔거든요. 종이박스가 많이 나왔는데 싣고 가실래요?”
노인은 리어카를 멈췄습니다. 전 뒤돌아 걸었습니다. 노인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끼에 걸려든 먹잇감을 처치하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한적한 공터에 도착했을 때 해는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하죠?”
노인은 낮게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담배 한 대를 주자 노인은 그걸 피우지 않고 품에 넣었습니다. 대신 호주머니에 담배꽁초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낮에 피우다 말고 불씨를 끄고 집어넣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노인은 볼을 홀쭉하게 당겨 담배를 빨았습니다. 저는 품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 순간 왜 망치를 꺼냈는지 노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어디선가 야옹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노인의 눈빛이 조금 떨렸습니다. 저는 망치로 노인의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노인은 ‘억’ 하는 단말마를 내지르고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지더군요. 주위를 돌아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터의 어둠은 더욱 짙게 내려앉았습니다. 낡은 리어카를 끌어 당겼습니다. 땅바닥에 엎어진 노인 몸 위로 리어카를 세웠습니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대문을 타고 들려오는 집집마다의 독특한 소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제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것마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 개의 골목길을 돌아 제가 사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뉴스에 나온 것처럼 죽은 노인의 호주머니를 뒤져 돈을 훔친 건 아니었습니다. 돈은 그대로 두고 단지 노인의 주머니에서 통장만을 꺼냈습니다. 돈을 인출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생활보호지원금으로 얼마나 받는지, 그토록 궁상으로 살면서 얼마나 저축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내가 죽인 노인을 자신이 죽였다는 연쇄살인범 이현식은 단돈 몇만 원을 뺏기 위해 노인을 죽였다고 말했지만, 그는 분명 제가 죽였습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노인의 경우만은 양심에 하나도 꺼릴 게 없습니다. 매일 밤, 죽겠네, 죽고 싶네, 하던 노인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이니까요. 
다음날 아침, 짐을 챙겨 진해로 내려갔습니다.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무조선 기차를 타고 갔는데 거기가 진해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소에도 한 달 정도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 오래 있진 못했습니다. 그냥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서른 살이 되는 날엔 부산항까지 흘러들어 와 있었습니다. 
부산에선 여관을 하나 잡아 항구 잡역부로 일했습니다. 가끔 일본으로 가는 밀수품을 나르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다른 날보다 품삯을 더 받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일을 하기 위해 여관의 유리문을 열고 나서는데 또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길가의 수챗구멍에서 기어 올라오는 하수구 냄샌 줄 알았습니다. 항구에 도착하자 저와 같은 잡역부들 서넛이 군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 옆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비비며 불을 쬐었지요.
“혹시 무슨 냄새 안 나나?”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물었죠. 
“무슨 냄새?”
“하수구 냄새 같은.”
새치가 유난히 많은 이십대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갯냄새밖엔 안 나는데요.”
그 옆에 있던 ‘박’이란 자가, 자기 입 옆으로 두 손을 모아 ‘후’ 불더니 대답했습니다.
“며칠째 계속 술을 마셔댔더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지 자꾸 하수구 냄새가 목구멍으로 기어 나오던데. 내 입 냄새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박’이란 사내처럼 두 손을 들어 입가를 나팔처럼 그러모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냄새는 내 손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이라는 걸. 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란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저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예감’이 들었다면, 본능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겐 본능이 종교였으며 육감이 세상을 살게 하는 교훈이었으니까요.
그 다음은 선생님도 아는 일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대구까지 가는 덤프트럭을 얻어 탔습니다. 동대구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탔지요. 강남터미널까지 가기 전 들른 휴게소에 내린 저는 다시 버스에 올라타지 않았습니다. 
11월 말, 밤 10시쯤 되었으니 날은 어둡고 바람도 차가웠습니다. 그렇지만 손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더 이상 버스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차라리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춥더라도 걸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앞에서 주황색 전구가 요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흰색 다마스를 한 대 발견했습니다. 물론 옛날 생각이 났지요. 나의 완전 범죄를 도모해주고 죽어야 했던 그 사내를 말이죠. 
그냥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다마스 운전석 옆 유리창이 조금 내려가더니 거기서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며 저를 부르더군요. 뒤를 돌아봤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그 사내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제가 목을 졸랐던, 숙모와 그 짓거리를 했던 사내 말입니다. 저는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사내는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일본 인형 한 번 만져보실래요?”
저는 꿈이라도 꾸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내는 차 뒤로 몸을 숙이고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차 문을 열더니, “날도 추운데 들어오셔서 한번 보세요.”라며 저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말랑말랑한 실리콘 인형이었습니다. 얼굴은 제법 예쁘기까지 했고 열댓 살 먹은 여자아이 크기였습니다. 유두가 달린 젖까지 있었습니다. 
사내는 덧니를 들어내며 웃었습니다. 앞니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사내는 질에 해당되는 인형의 아랫도리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습니다.
“자, 한번 손가락으로 여길 넣어보세요. 기가 막히다니까요.”
그러면서 웃었습니다.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사내는 계속 히죽거렸습니다. 
저는 그 손으로 사내의 목을 졸랐습니다. 사내가 얼마나 거칠게 반항을 했는지 지금도 제 얼굴엔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사내는 손으로 제 얼굴을 잡아 뜯고 윗옷에 달린 호주머니를 뜯었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사내가 완전히 숨이 넘어갈 때까지 목을 조를 수 없었습니다. 손목에 힘이 너무 빠지더군요. 저는 사내의 목에서 손을 떼어 그의 콧구멍 밑에 가져다 댔습니다. 얕은 숨이 느껴졌습니다. 사내는 기진맥진한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윗옷을 벗었습니다. 더웠거든요. 그리고 옷을 수건처럼 길게 접은 후 그의 목에 둘렀습니다. 양쪽으로 끝을 잡아 당겨 마저 숨을 끊어 놓았습니다.
저는 도로를 걸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위협적으로 다가와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걸을수록 걸음은 계속 느려지더군요.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습니다. 저는 잠시 퍼질러 앉았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웠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오더군요. 불씨를 버리고 남은 꽁초를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었습니다. 아비보다 더 굼뜨게, 노인보다 더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습니다. 밤하늘이 부옇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손바닥에선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더군요. 세상은 온통 악취로 들끓고 있었으니까요.

에필로그
살인자의 편지는 여기서 끝을 맺고 있었다. 손을 씻고 다시 소파에 앉아 편지지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펜촉에서 난다는 향도, 그의 손에서 난다는 악취도 없었다. 
난 인터넷으로 살인범 이현식의 기사를 살펴보았다. 강력1팀 정래식 경위가 특진한 것도, 동자동 놀이터에서 무의탁 노인이 살해당한 것도, 성용품을 파는 사내가 살해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편지가 모두 사실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편지를 가지고 정래식 경위를 찾았다. 우편물 봉투 수신인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지만 편지의 내용상 수신인은 엄연히 정래식 경위였다.
정래식 경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편지를 대충 훑어보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이네요. 손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도 그렇고. 이상하잖습니까. 연쇄살인범 이현식이 자기가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왜 죽였다고 자백하겠습니까? 안 그래요?”
나는 약간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이현식 사건은 이미 수사 종결됐어요. 가뜩이나 사형 폐지다 뭐다 해서 유가족들 심기 불편한데 괜한 말 하지 마세요.”
정래식 경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편지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만일 연쇄살인범 이현식이 죽인 게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래식 경위는 한쪽 입술을 어슷하게 올렸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자 옆에 듣고 있던 형사 하나가 말을 맞받아쳤다.
“정 경위님 특진은 무효 되는 거 아닌가요?”
주위에 있던 형사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정래식 경위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정래식 경위는 가벼운 거수경례를 했고 나는 편지 봉투를 가슴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이번엔 또 다른 봉투가 우편함에 들어 있었다. 역시 깨알 같은 글씨로 수신인엔 역시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는데 그 옆엔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이 분명한 명함-한우리도시연구소 이건수 간사라고 인쇄된 명함-이 붙어 있었다.
서둘러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통장이 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통장을 펴보았다. ‘최일성’ 명의의 통장, 바로 그 노인의 통장이었다. 매달 170,000원이 구청에서 입금되었다. ‘한우리도시연구소’에서 3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무의탁 노인을 위한 위로금이었다.
노인은 매일 3천 원에서 1만 원 가량 폐휴지를 수거하는 대로 입금했고 월세와 식비를 사기 위해 매달 초 10만 원에서 20만 원씩 출금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2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록은 없었다. 
나는 통장과 우편물을 앞에 포개어 놓고 바라봤다. 이 우편물은 애초부터 정래식 경위가 아닌, 내게 보낸 것이 확실했다. 그는 내가 포기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도록 재촉하고 있었다. 이국적인 과일향으로 정리해서 만든 빈민촌 소설이 아니라 살인자의 목소리로 직접 작성한 글을 정리하도록 말이다. 


배지영․
2006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추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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