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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특집/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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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유연한 프레임
1
욕실 바닥에 깔린 색색의 타일들이 뿅뿅
전자오락에 심취해 있었다.
몬드리안이 작곡한 ‘뿅뿅’이라나.
막노동이었겠군요, 이렇게 차가운 프레임들을, 눈들을!
2
김중일이 무뚝뚝한 유리창을 어깨에 이고 어디로 간다.
2층, 3층으로 이고 간다.
태양이 몰래 내려와 그러니까 무동(舞童)을 타자
투덜투덜, 입에서 사각의 프레임이 봇물처럼 터진다.
3
어느 해인가는 태풍이 몹시 불어
서랍 속으로 피신을 하였습니다.
어깨를 빼고 머리를 갈비뼈 사이에 숨기고
새카만 발바닥을 귀 옆에 착 붙이고,
참 불편한 프레임이어서 무르려고 했는데
책상이 영수증을 꿀꺽.
4
거울 안에 들어가 한 달포쯤 드난을 살자
눈 밑에 투명한 유리질이 돋아나 내가 거울이 되는 프레임.
5
이 프레임은 편모(鞭毛)로 움직이는 단세포 생물입니다.
몸 전체가 눈처럼 보이지만
다시 보면 몸 전체가 입인 프레임.
다시 보면 몸 전체가 위인 프레임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돌발 영상.
6
출구 프레임. ‘세상으로 나가는’ 구멍이길 빌며.
무한의 비행
―변신 이야기
끝없이 혼잣말을 하는 어두운 숲이었네. 소나무 껍질처럼 얼굴이 갈라진 신(神)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네. 거기서 열두 겹 흑옥(黑玉)의 밤이 흘러나왔지. 그 음악에서! 달빛을 바수어 만든 차가운 비가 치적치적 내렸네. 나는 천년 버섯의 그 해묵은 그늘 아래서 웅크리고 있었네. 제 몸보다 훨씬 무거운 적요를 질질 끄집고 다니는 숲의 정령들이 나타나자 숲도 역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를 그쳤네. 비에 젖은 가는 팔이 석질(石質)의 식물로 되어가고 있었네. 그저 돌이 되는 변신이 아니라 나무가 돌이 되는 영겁의 침입 같은 것이었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어요? 천년을 외롭게 떨어져 산들―」
늪의 냄새가 올라왔네, 오동나무의 썩은 낙엽에서. 한 자락 기인 밤하늘엔 어둑신이들의 여숙(旅宿)이 떠 있었네. 그랬지. 내가 아는 그 천사가 하늘을 날고 있었지. 안테나로 만든 날개를 달고. 그가 웃고 있었네. 천년 버섯 아래서 비의 주렴 너머로 내가 그것을 보았네. 나를 찾고 있었네. 빌리 홀리데이 노래의 가사처럼 온 세상이, 어쩌면 나의 지구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을지도. 나는 어쩔 줄을 몰랐네. 돌이 되었다가 다시 구슬 따위로 깨어나는 무한의 비행만이 길이라고, 오동나무가 알려주었네. 그늘이 깊어지면 호젓함도 끼이리라던 마녀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슬펐지만. 주저앉아 비를 보고 있었네. 하늘이 다 그 안에 박힌 비를 보고 있었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어요? 천년을 외롭게 떨어져 산들―」
변성기
그것은 다시는 미성으로 노래할 수 없다는 것.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이 그 빛깔과 향기를 잃기 전에 먼저 소리를 잃는다는 것. 목안에 득시글득시글했던 개미들이 부끄러워 과묵해져야 했던 어느 봄날의 빛 부스러기들이여.
깃털 구름을 매단 하늘은 가없는 날개를 펴고, 쪽빛 제비들이 그리는 부드러운 폐곡선, 대지는 봄의 몸을 하느라 아지랑이들을 올리고 있는데,
그 묵언의 계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때 누군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한 번만 불러주었다면, 다시는 미성으로 노래할 수 없어도 좋았을 것이다.
깃털 구름을 매단 하늘은 가없는 날개를 펴고, 하늘과 땅 사이엔 바람의 프리즘, 대지는 봄의 몸을 하느라 아지랑이들을 올리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빈방을 기던 빛 부스러기들이여. 두 번 다시 미성의 노래는 없겠구나. 입을 열 때마다 개미를 토하며 사위는 헛된 노래의 불씨만이 길이겠구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소년은 당신을 찾아 브라질로 날아갑니다.
당신 노래의 ‘꼴꼬바두’를 찾아
리우 데 자네이루까지 날아갑니다.
당신은 우주여행의 먼 길을 떠나 안 계시고
있잖아, 당신 피아노의 선율은
이름 모를 들꽃의 홀씨가 되어 여전히 둥둥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들꽃의 진액이 하늘의 끝을 연보라로 물들인
꼴꼬바두는 보잘것없는 바위산,
밤이 되면 별들이 내려와 흥얼흥얼
보사노바를 부르곤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인사 없이도
그 곁에 와서 보사노바를 흥얼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있잖아, 소년이 ‘꼴꼬바두’를 부르자
꼴꼬바두의 밤하늘처럼
깊은 눈을 지닌 소녀가 소년에게
들꽃을 꺾어다 건넸습니다.
그때 반짝였던 하늘의 별,
당신이 보낸 것일까요,
별나라의 윙크는.
캐논볼 애덜리
그날 술집에 들어섰을 때
해적의 마누라쯤 되어 보이던 뚱보 주모가
당신의 ‘가을 낙엽’을 틀어주었소.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캠퍼스를 걷던 늙으신 교수님의
은퇴식 날의 쓸쓸한 어깨가 떠올랐소.
베이스의 동동거리는 구두가
장난스럽게 거리의 낙엽을 쓸고 다녔소.
마일즈 데이비스 씨의 트럼펫이
가을이 오면,이라고 말하면,
당신도 가을이 오면,이라고 말했소.
낙엽은 진다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피아노의 연주에 맞춰
당신의 알토 색소폰 위로
노란 낙엽이 한 장 내려앉았소.
아트 블래키 씨가 두근두근 드럼을 쳐주었소.
두근두근, 노란 길이 있다고 했소.
흑맥주를 마시며 뚱보 주모에게
은퇴하면 술집을 차려서는
당신네 밴드 음악을 쿵쿵 틀겠다 선언했소.
당신의 ‘가을 낙엽’을 한 번 더 청하며
아직 데뷔도 못했는데 은퇴를 꿈꾸던 한심한 날에.
캐논볼 애덜리,
‘가을 낙엽’에는 노란 길이 있었소.
당신은 알고 있었소,
당신이 지나가면 그 길도 사라진다는 걸.
묵음
박장대소를 하면 싫다고 짖는 개가 있다.
외출을 하려고 하면 뒤꿈치를 물기도 한다.
그저 묵묵히 제 곁에 있으라는 것인가.
그 늙은 개가 부스럼투성이가 되어 죽어간다.
방 가운데 베개를 돋우고 누우면
등 뒤로 가만히 와서 제 등을 맞대며 부닌다.
어느 날은 개가 눈곱 낀 눈으로 매지구름을 올려다본다.
나란히 앉아서 매지구름이나 본다.
회동그란 눈이 나를 잠시 본다. 그뿐이다.
왜 그리 서둘러 늙었니, 마음만 그렇고.
비는 안 오고, 둘이 묵묵히 있는 것은
역시 쓸쓸한 일이지만.
젖은 손
비가 내립니다.
거지아이의 거적때기 집에도 내립니다.
거적때기 집이어서 방안에도 비가 내립니다.
이 나간 그릇과 찌그러진 냄비 위에도 내립니다.
처음에 물받이 기명들은 이가 시리다고 울다가
빗방울과 함께 울다가
고인 물에 빗물이 합치는 울림으로 울다가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거지아이가.
더럽고 앳된 손등이
비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세수도 하면서
만나고 가는 비와는 제법 지껄이면서.
수재민
검붉은 흙을 업은 큰물이 삼켰다가 도로 뱉어냈다.
배겨낸 세간이 하나 없다.
냉장고가 토사곽란을 했는지 흙 범벅으로 누워 있다.
등이 굽은 노파가 진흙투성이 냄비를 잠시 들어본다.
노파는 어치정대며 뼈만 남은 집으로 들어간다.
후줄근한 이부자리들이 혀를 내밀고 죽어 있는 길.
가족을 잃은 젖은 개 한 마리가 집터 위에서 두리번거린다.
비는 다시 내리는데
마실 물도 없이 마실 물도 없이.
길옆 진흙에서 방금 나온 까라진 젊은 여자가
눈만은 살아서 이쪽을 보고 있다.
원망인지 분노인지 모두 다인지
그 야멸친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내 잘못도 아닌데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울면 손해
―일상
시작하는 연인들의 미음완보(微吟緩步) 위로 달빛이 고이는 밤. 라디오에선 ‘롤러코스터’의 「너에게 보내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듯, 어른인 주제에 외로움을 타는 밤이면 블랙커피에 딸기 타트를 곁들여 먹습니다. 한여름 밤인데 뜨거운 커피나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밤엔 셸리 풍의 악마 연인 이야기 같은 것도 좋겠지만, 오늘은 왠지 해피엔딩의 순정만화나 읽고 싶군요.
함지(咸池)의 달빛 속을 아기천사들이 날아다닙니다.
장난기 많은 천사는 달궁에 손도장을 찍어댑니다.
이강주 만화의 주인공은
방금 사랑 고백을 마쳤습니다.
함지 위로 바람이 지나가자
함지는 기타 소리를 냅니다.
창 쪽을 무심코 바라보았더니
하얀 시클라멘이 달빛을 받고 잠들어 있습니다.
슬며시 라디오 볼륨을 낮추어도 좋은 시간,
자연이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밤.
울면 손해!
대니 보이
고등학생들의 하학(下學)시간
칠보자개 빛깔 뭉게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한 놈이 다른 한 놈의 목에 매달려
장난스럽게
‘대니 보이’를 흥얼거렸다.
짊어진 가방이 방울처럼 달랑거리며
코스모스 핀 길을 가고 있었다.
시작노트
군대에 다녀와서는 학위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도 간혹 썼고 논문을 쓰면서도 줄곧 쓰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것들은 그저 기억에 관한 것이거나 사소한 일상에 지나지 않은 것들입니다. 살다 보면 생에도 굴곡이 있어서 극한까지 가는 경험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침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일상을 좀 아름답게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이 아름다운 순간이 있어서 시인은 그 순간을 시로 동결(凍結)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순간은 자주 잊어버렸다가 몇 년이고 세월이 흐른 다음 뒤통수를 후려치며 돌아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으로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있습니다. 가령 「대니 보이」가 그런데, 그래도 그 추억의 빛으로 일상은 좀더 유연해지는 거 아닐까요.
장이지․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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