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4호 신작시/손진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03회 작성일 08-03-01 00:38

본문

손진은
포도들


누가 부우연 지붕은 달아달라고 했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종일 하품을 해대며
물방울로 맺히는 햇빛에 게으르게 밀사들은 머릴 굴려본다
잎새 뒤에서 칙, 담배 꺼내 물고 달님 아씨를 불러내던 건달의 시절은 갔다
갈기 구름 아래를 어슬렁거리며 햇살을 나꿔채던 흡반 뇌관들  
장대비에 두개골 후두둑 깨지고 싶던 폭풍의 나날도 다 옛일
우아하게 분사하는 스프링쿨러가 빗방울 대신 발가락을 간질일 때
분을 만들려 달려오던 여린 눈썹의 안개를 껴안지 못해 거북하다
달빛과 벌레울음이 단물 밀어넣던 시절이 그리운
밀사들은 이제 별수 없이 수인이 다 돼간다
분을 묻힌 하품들이 실려간다 저 하품을 잘 익었다고
푸푸 추억들을  내뱉는 입술은 또 무언가
칸칸이 포개진 방안에 앉아 트럭에 실려가는
출옥수가 왜 저리 심드렁한가
 
먼 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는 어느 시인의 구절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저 팅팅 불은 우울의 안구 앞에서



덩굴들


참나무 우듬지까지 타고 오른 연어떼를 보았다
처음 참나무는 웬 이쁜 음표가 발등에서부터
통통거리는가 했을 것이다
그러다 살갗 틈새에 발톱을 박아 넣으며 흐름에 몸을 싣는
햇빛을 잔뜩 퍼먹고 천진한 웃음 파닥이는
그를 어느 때부터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초록의 기슭에서 옆으로 눕는 파도 속
그만 유독 상류를 거슬러 오르려는 걸까
생각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무는 여위어갔을 것이다
통증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
잎새 하나를 떨구자
연어는 그 잎새 하나만큼의
알들을 낳으려고 지느러미를 파닥인다
그때마다 잔주름을 하나 더 거느리는 참나무는
폭풍 같은 현기증이 나는 것이었지만
회귀하려는 연어의 의지를 당하기가 버거웠다
모두가 자기 물결을 헤적일 때
흐르고 치솟으면서 모든 걸 깨어버리는
저 연어들의 부리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도 고치지 못한
저 나무 장정을 우듬지까지 캄캄하게 폭발시킨 다음
끝내 온 바다를 다 헤집어놓을 텐데
이 사람아, 이 사람아
탄식하는 저 나무 부족의 방언들이 아래에 번져가도
산의 주름들은 마른 풍금소리를 내며 쩍쩍 갈라질 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연어가 연안으로 돌아온다



손진은․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등
․연구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등

추천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