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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신작시/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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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29회 작성일 08-03-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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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시간의 그늘


새 아파트 건넌방 문을 열던 딸내미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된 폐허가 거기에 들어앉아 있었다. 난 금방 알아보았다. 곧 무너지려 하는 고향집 사랑방이 옮겨와 있었다. 관솔불에 그을린 천장 모서리에서 말라죽은 거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길만 닿아도 부스러지는 흙벽의 노쇠한 글자들은 스스로 삭아가는 중이었다. 나 한 몸 누우면 꽉 들어차는 방에서 머슴 동식이 아재랑 조무래기들 일곱이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독한 꽁초 담배를 애들에게 물려주며 동식이 아재는 이똥 가득한 눈으로 킬킬거렸다. 동무들은 목침에 만든 연기 달걀로 후라이를 해먹었다. 나도 따라 목침 달걀 후라이를 후르륵 빨아먹었다. 내가 먹은 후라이에서는 몽환의 매캐한 담뱃내가 콜록콜록, 새어나왔다. 거실까지 담배 연기 자욱해지자 딸내미는 건넌방 문을 쓱쓱 지워버렸다. 사라진 건넌방에서 동식이 아재와 동무들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중독


나는 네 앞에만 서면 울렁거린다.
혼미로 끓는 이 정신 산란을 어이하랴.
부끄러운 듯 부끄러운 듯
천지를 뒤집는 산도화여, 산도화여.
네 둥근 가슴 열어
태초에 숨겨진 수밀의 환희를 맛뵈주더니
너는 어쩌자고 발간 열정 거두어
저 깊은 망각 속으로 숨어드는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념도
네 보드라움에 끌려 호르르 사라지는 것이니
시방 나는 치명적 유혹에 빠진 것인가.
가쁜 숨결 발그레 내닿는 저녁,
산도화 그늘에서 나는 지레 질린다.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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