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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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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70회 작성일 08-02-29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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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갈대/갈 때


오후 3시 지하철 내 옆자리 할머니 옆에서 다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라는 요즈음 유행하는 노래를 부른다 할머니가 다음 구절을 가르쳐줘도 꼬마는 계속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갈 때랍니다’라고 반복한다 지하철은 갈대가 되어 갈 때로 흐른다 오늘은 갈대/갈 때가 문제다 꼬마에게 갈대가 뭔지 알아 묻자 뭐냐면요 여자의 마음이 다른 남자한테 갈 때가 됐다는 뜻이에요 아줌마는 그것도 몰라요 꼬마의 입술에서 앵두꽃잎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 꽃잎을 줍다가 나는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어떤 골목


새벽녘 귓속을 울리는 환청을 따라간다 유리창 부서지는 소리에 골목은 흔들린다 늙은 사내와 젊은 여자가 살고 있는 빨간 벽돌 4층 연립은 조금씩 허공으로 떠오른다 늘 이 시간이면 택시 운전사와 실갱이 하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여자가 들어오고 십분 뒤쯤 외마디 비명소리에 골목은 잠에서 깬다 이 골목에선 달도 구름 속으로 들고 바람은 나선으로 돌다 쓰레기통 속으로 처박힌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이중창의 불협화음 알아들을 수 없는 말 가운데 “ㄱ ㅐ ㅅ ㅐ ㄲ ㅣ”란 단어가 톡 튀어나와 녹슨 굴렁쇠로 구르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날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크리스틴의 노래 같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은 굿거리장단같이 들린다 소리를 먹고 자란 골목의 개들도 오! 오! 하며 운다 여자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프리마돈나의 아리아처럼 흐느적거리다가 아침이면 창문에 고드름이 되어 열린다.


이희영․
2004년 ≪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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