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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서평/김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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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76회 작성일 08-02-2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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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임영봉 평론집 '생성과 소멸의 언어'

정갈한 성실주의자의 중용적 글쓰기
김동윤|문학평론가



1.
“비평의 언어가 이렇게 뜨거워도 되는 것일까.”-이는 임영봉이 고명철 평론집 '칼날 위에 서다' 서평에서 꺼낸 일성이다. “비평가의 비평행위란 그 태도와 어법에 있어 생리적으로 뜨겁기보다는 차갑다.”(152쪽)고 여기는 그로서는 불같이 뜨거운 고명철 식 비평에 적이 당황했을 법도 하다. 이런 언급을 통해 우리는 그의 비평이 열정의 언어보다는 냉정한 언어를 근간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분하고 침착한 언어의 구사가 임영봉 비평에서 포착되는 특성의 하나인 셈이다. 거기에는 문학현실에 대한 엄정한 진단이 탄탄한 기초가 됨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의 문학이 직면한 상황과 그 미래의 불투명성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늪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늪을 과연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회의’ 속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생각하건대 우리시대 문학의 위기란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학은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죽음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문학’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전히 글쓰기 행위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원적 수단이고, 그 가운데서 제도로서의 문학 또한 존속해 나갈 것이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그 무엇을 문학이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문학은 현재 리모델링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을 ‘생성과 소멸의 언어’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놓여 있다.(「책머리에」)

임영봉은 가라타니 고진 등이 선언한 ‘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라며 걱정하기보다는 변화의 국면임을 인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전개하는 게 바람직한 지향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시대의 문학을 ‘리모델링 중’이라는 아주 절묘한 어구로 표현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그의 탁월한 분석적 감각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여기의 우리문학은 어떻게, 어느 정도로 리모델링되어야 할 것인가.

2.
'생성과 소멸의 언어'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소설의 운명과 문학의 미래’에서는 소설의 최근 동향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문학의 현실과 진로 등을 모색하는 글을 담아내고 있고, ‘제2부 우리시대의 작가들’에는 작가론과 소설작품론이 엮어졌다. ‘제3부 우리시대의 비평가들’에서는 4명의 젊은 비평가의 평론집에 대한 리뷰와 근래에 전개된 북한의 비평을 점검하는 글을 모았고, ‘제4부 시를 찾아서’에서는 시인론과 시론연구를 수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소설의 비중이 많긴 하지만, 비평에서 시 분야까지 그의 활동 영역이 두루 넘나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심 주제도 일상성, 생태소설, 가족소설, 복수장르 등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글들이 어느 것 하나 안이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없고 모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튼실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점들은 그의 비평가로서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이번 평론집에 실린 16편의 글들을 통독해 보면, 그가 차분하고 침착하면서도 할 말은 결코 삼키지 않는 비평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내미는 비평의 촉수는 은근히 날카롭게 번득인다. 1990년대 문학의 일상성을 문제 삼은 「일상과 초월, 그리고 탈주」의 다음 인용에서 그런 점이 뚜렷이 확인된다.

소외된 일상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상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친숙성과 상투적 이미지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일상성에 대한 탐구에는 나름의 ‘폭력적’ 수사와 기법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카프카 같은 위대한 작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세대 작가의 일상성 탐구가 얼마만큼의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 은폐된 삶과 세계의 진실이지 일상의 탐닉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30쪽)

폭력적 수사와 기법의 구사를 주장한 그의 평문은 예리하고 의미심장하다. ‘폭력적’이라는 폭력성 단어를 동원하며 분명한 논리를 과감하게 제기하고 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유희적으로 일상을 탐닉하는 것이 변화된 시대의 당연한 감각인 양 여기는 신세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임영봉의 지적은 그들에게 촌철살인의 비수로 섬뜩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멸과 생성의 소설 언어-2004년도 소설 계간평」에서도 임영봉의 예리한 촉수는 빛난다. 특히 김도언의 소설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를 평하면서 그는 작품의 여러 허점을 짚어내 보인다. 그는 이 작품이 소설적 리얼리티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달상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울림이 크지 않다면서 “많은 장면에서 이 작품은 오히려 동화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자. 작품의 구성 형식과 사건, 그리고 행위의 측면이 우연성에 너무 크게 지배되고 있다는 점과 이상․하루키․카프카 등의 작가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끔 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해 두고자 한다.”(134쪽)고 언급한다. 이는 비단 김도언 개인만을 향한 지적은 아닐 터인데, 문학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더불어 자세한 작품 읽기가 수반되었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임영봉은 퍽 성실한 비평가인 것 같다. 계간평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뢰-꼼꼼한 작품 읽기가 돋보인다. 최근의 경향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서술해버린 듯한 아쉬움도 있지만, 공지영 소설에 대해 이렇게 통시적으로 명쾌하게 정리된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동트는 새벽」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1980년대에서 지금까지의 사회적 상황과 용의주도하게 관련시키면서 작가의 궤적을 촘촘하게 엮어놓음으로써 작가론의 한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 한국문학비평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과 '상징투쟁으로서의 한국현대문학비평사'를 낸 학자이기도 한바, 이번 평론집에서는 그의 비평사 연구가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예컨대 제3부에서 그는 「열정과 균형감각, 두 개의 비평적 개성에 대하여」와 「위기에 대응하는 비평의 언어」를 통해 고명철․하상일․고인환․김형중 등 젊은 비평가의 최근 평론집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그들을 두루 검토하고 내린 임영봉의 진단은 경청할 만하다.

지금 평단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다수의 젊은 비평가들의 존재는, 나에게 우리 비평의 전개 과정이 ‘비평사적 시각’의 개입을 요청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느낌 또한 갖게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비평 쪽의 변화는 다른 장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비평 주체의 대두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30대 초반에서 40대에 걸쳐 있는 비평가들이 2000년대 평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1990년대 이후 비평의 변화를 문제 삼는다면 우리의 관심사는 당연히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대표적인 세대교체 현상의 내면에 대한 탐구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164쪽) 

그가 2000년대 평단에서 세대교체를 확실히 규정한 것은 퍽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느 시대든지 새로운 세대가 평단에 출현했지만 지금처럼 대규모로 각종 논쟁을 주도하며 역량을 발휘한 적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그에 의해 한국현대비평사가 새로 씌어질 때 2000년대의 세대교체 현상은 중요한 이슈로 정리될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이 평론집에서는 북한문학 연구가로서의 면모도 잘 드러나고 있다. 북한문학의 특성과 그 흐름을 꿰고 있는 비평가이기에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북한 비평에 대한 정리는 일목요연하다. 총련 작가인 박종상의 장편소설 '봄비'를 논한 「이념으로 쌓아올린 조국과 민족」에서도 북한문학 연구가로서의 역량이 충분히 감지됨은 물론이다.

3.
나는 이번에 임영봉의 두 번째 평론집 '생성과 소멸의 언어'를 읽으면서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성실하게 발언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전반적인 논리에도 대체로 동의함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얼른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좀 짓궂게 말하자면, 이 책은 1, 2부 혹은 1, 2, 3부로만 묶여야 될 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3부의 「고난의 행군의 전위, 우리식 평론-북한의 문학평론」과 4부의 「추억하는 정신의 아름다움-곽재구론」은 저자가 이미 간행했던 책의 것을 다시 수록한 글들이다. 물론 가치 있는 좋은 글들이긴 하나, 재수록할 만한 명분이 뚜렷하지 못하다. 전자는 「강성대국 건설과 우리식 평론-2000년대 북한의 문학평론」의 이해에 연결되는 글이라는 점에서 재수록한 것이겠지만, 그것과 관련된 다른 글이 더 이상 없고 3부의 다른 글들과도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각각 183쪽과 218쪽에서는 '문학예술사전'에서 ‘평론’을 정의한 같은 부분을 직접 인용하는 가운데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된다. 4부에는 단 두 편의 글을 게재하고 있을 뿐인데, 곽재구의 시를 다룬 재수록 비평과 「어느 스타일리스트의 시적 모험-이승훈의 비대상(非對象) 시론」은 시에 관한 논의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지 퍽 이질적인 글이다. 결국 구색 맞추기로 재수록이라는 편법을 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어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전혀 그답지 않은 부분이었다.
임영봉의 평문을 접하면서 나는 글쓴이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견지하고 있는 문학 이념에 대한 자신의 열망이 무엇인지가 평문을 통해 그다지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는 물론 차분하고 중용을 견지하는 비평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자칫하면 무미건조한 글쓰기로 흘러버릴 우려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줄 안다.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사항에 대해 그는 “감수성과 논리적 인식 능력, 그리고 개성적 표현”(174쪽)이라고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임영봉 자신에게 적용할 경우 다른 능력이 뛰어난 데 비해 개성적 표현에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면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간혹 모호한 태도로 연결되기도 한다. 조해일의 소설 「아메리카」에 대해 평한 「씀바귀 같은 그녀들의 삶」의 아래와 같은 언급은 그의 모호한 측면을 드러내는 일례가 되리라고 본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 SOPA 협정은 한국과 미국이 아직도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미국에 대해 보다 ‘적절한’ 관계를 요구하고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아메리카」의 진짜 주인공들인 기지촌 직업여성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양공주’라는 낙인 아래, 우리 자신에 의해 그녀들이 이 땅에서 버림받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148쪽)

밑줄 친 부분의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언론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의 사설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틀린 말이야 아니지만, 하나마나한 말이요 지극히 평이한 말이 아닌가. 이런 표현에서 우리는 글쓴이의 분명한 지향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진술을 반복하는 것이 문학적 글쓰기에 얼마나 유용한지 나를 포함한 비평가들이 함께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소설의 소멸인가, 소설의 재생인가」에서는 생태소설의 장르설정의 문제를 지나치게 인식하는 게 아닌가 한다. 생태소설 고유의 내적 형식을 강조하다보니 김영래의 '숲의 왕'이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숲의 왕'은, 저자도 지적하다시피, “자신이 근거하고 있는 생태학적 세계관의 강력한 이념성으로 말미암아 현실초월적인 신비주의나 종교의 성격을 띠게 될 가능성”(52쪽)이 큰 작품이다. 생태소설이 고유의 내적 형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생태주의적 사고가 사회변혁의 문제에 결부하여 역동적으로 추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지 않았을까.
「문학과 정치」는 비전공자들에게 문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좋은 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김지하는 1980/90년대를 통틀어 독재정권을 비판했던 가장 유력한 저항시인”(86쪽)이라는 언급은 부분적으로 잘못되었다. 저항시인으로서의 김지하는 오히려 1970년대에 빛나지 않았던가? 1990년대의 그는 이미 생명사상 쪽으로 기울어졌지 더 이상 저항시인은 아니었다. 분신정국에서 빚어졌던 김지하 칼럼 사건을 잠시 간과하고 쓴 것인지, 단순한 실수인지 모르겠다.
「어느 스타일리스트의 시적 모험」에서 이승훈의 문학을 말하면서 말미에 “그가 지닌 독특한 산문정신”(276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이승훈을 대상으로 ‘산문정신’을 운위해도 괜찮을까? 산문정신이란 외형적 규범이나 낭만적 감상, 시적 감각을 배제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하여 자유로운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문학상의 태도가 아닌가. 특히 현실비판의식이 전제되는 것이 산문정신일진대 이승훈의 면모에서 그런 부면을 찾으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시도인지 의문이다.

4.
임영봉의 '생성과 소멸의 언어'는 이 시대의 문학이 직면한 현실을 걱정하고 그 올바른 지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필독해야 할 평론집이다. 특히 비평의 언어가 진중하고 냉정해야 함을 믿는 독자에게는 은은한 맛깔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줄 것이다. 신세대 작가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창작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 믿는다.
임영봉은 참으로 정갈한 비평을 써 나간다. 침착하고 차분한 어조를 바탕으로 단정한 평문을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그 울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임영봉은 또한 불편부당한 비평가인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불필요한 편 가르기를 하지도 않고 과도하게 논쟁에 빠져들지도 않는다.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주례사 비평에 나서지도 않는다.
이 시대 젊은 비평가로서 임영봉과 같은 경우를 만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용한 중용적 비평가로서의 그의 길은 외로울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길은 누군가는 반드시 걸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길이다. 독자적인 세계를 탄탄히 구축해 가는 임영봉의 위상은 이 시대 한국평단에서 유의미하게 자리매김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김동윤․
1964년 제주도 출생
․2001년 ≪리토피아≫를 통해 평론 활동 시작
․저서 우리 소설의 통속성과 진지성 등
추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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