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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김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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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756회 작성일 08-02-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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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도장골 시편
―감자꽃


꽃을 따주어야 열매를 더 튼실히 익히는 꽃이 있다
흙 속에서 울퉁불퉁 징소리가 울릴 듯한 구근을 매다는 꽃이 있다
그 꽃은 소박하다. 흰 베옷을 입은 듯 담백해 보인다
이미 자신의 구근에 씨눈을 감추고 있어, 受精의
매개체에게 눈길을 줄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일생을 밭이랑을 흐르며 살아 온 아낙의 머리에 얹힌
흰 수건 같은 얼굴이어서, 하루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벌써
지어 놓은 草墳 같은 얼굴이어서, 그 꽃대는 길고 가늘다
낮은 바람결에도 쉽게 꺾일 듯 부드럽다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툭툭 털면 한생애가 가는
그 순응이, 스스로 목이 꺾이고 싶은 의지처럼 보여
제 손으로의 摘花이듯 비장하게 보여
때로 꽃을 꺾는 손길을 주춤거리게 하지만, 멈추게 하지만
누구의 손끝만 닿아도 자진이듯 꽃대를 꺾는 황홀들로 만개해 보이는
꽃밭, 가닿는 손길마저 눈부시게 하는 감자꽃
오늘, 그 감자꽃밭에서 감자꽃을 딴다
세상에는 이렇게 꽃을 따주어야 더 굵은 열매를 익히는 꽃이 있어
그렇게 꽃을 꺾어주는 손길이 受精의 매개체인 꽃도 있어



도장골 시편
―다시, 감자꽃밭에서


까마득하다

감자꽃밭에 서면

언젠가 내 몸에도 감자꽃이 피었을 거라는 느낌

열매가 씨앗이고 씨앗이 열매인 꽃이

몸의 이랑마다 가득 피었을 거라는 느낌

몸의 이랑마다 가득 피어, 흰 베옷을 입은 듯 담백히

꽃을 꺾어주는 손길을 기다렸을 거라는 느낌

그러나 제 손으로 摘花해주지 못한 그 꽃이

구름으로 부풀어 올라, 유월 햇살 아래

눈부시게 흰, 구름송이들로 부풀어 올라

몸의 물기란 물기 다, 그 구름의 채색으로 허비해

이제는 야위고 마르고 비척해져서

겨울 벌판의 갈대처럼 서걱이고 있다는 느낌

그 갈대의 눈시울에 노을만 젖고 있다는 느낌

까마득하다

아니, 바로 오늘의 일 아닌가?



김신용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환상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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