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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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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언
신기루
당신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한숨 때문에 굴뚝은 올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릴 당신 때문에 또 지하실을 마련해두었다. 그곳에서 사라지는 자들의 한숨이 짙은 담배연기를 만들어낸다. 건축은 올라가면서 자주 허물어지지만 폭격 맞은 뒤에도 옥상은 불안하게 서있다. 누군가를 향해서 머리카락은 자란다. 날이 흐려서 그림자가 밟히는 줄도 모르고 걷는 사람들 틈에 건물이 서있다. 감금당한 건물, 처형당한 건물, 연기로 사라져버린 건물, 남아서 비 맞고 있는 건물의 얼룩진 역사를 뭐라고 부를까. 입에서 가스 냄새가 올라왔다. 당신은 모든 사건을 감당할 수 없지만 입은 자유롭고 손목은 곧바로 연기로 변할 자세다. 그 목소리가 덩치를 알 수 없는 소문을 만들어낸다. 수십만 개의 집 앞으로 사건을 배달하고 수백만 개의 심장에서 동시에 불이 켜질 때 연기는 겨우 하나의 주장을 완성하고 입을 다문다. 그들이 다시 입을 열 때 당신은 공포와 한숨이 뒤섞인 어떤 장소를 방문한다. 여기 사라지고 없는 당신을 방문한다.
변신
나는 말 못하는 행동이 되어줄 수도 있다.
아침마다 그게 안 나와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거의 침묵에 막혀서 변을 늘어놓는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고 엉뚱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읽고 또 읽으면서 아침은 간다. 사무실로 학교로 의자에서 의자로 엉덩이를 옮겨가는 사람들의 몸무게는 연기처럼 무겁다. 꽉 막힌 굴뚝의 청소부를 코르크 마개처럼 비틀고 헤집고 마침내 딴다. 머리가 빠진 목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색
은근한 향을 음미하는 것이 이 포도주의 첫째 예절이다. 오래된 것은 쉽게 구할 수 없다. 깊은 창고에서 날짜를 헤아려가며 어둠과 먼지와 미세한 진동에도 출렁이는 소란을 재워가며 태아의 입은 아득히 열린다. 뚜껑을 열고 연기를 쏟아 붓는다. 우리는 그걸 첫 애의 울음으로 기억하겠지만,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어르고 달래면서 목구멍 속으로 도로 집어넣고 흔든다-이제부터 매일 달라지는 거야.
나는 최면에 취해서 행동을 보여준다. 불길을 따라서 연기는 오르고 뱀은 꼬리를 뒤척인다. 잠자는 쪽으로 허물과 속을 뒤집어서 갈아입는 동굴이 이상하게 음악을 만든다. 가늘고 긴 음악, 끊어져서 토막 나는 음악, 너무 굵어서 소음도 잡음도 안 잡히는 그 악기의 통로가 지하 깊숙이 강을 만든다. 뚜껑을 열면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밑바닥/발밑에또 발을 내리고 자라는 수초/둥둥 떠서 목을 가다듬는 거품의 일렁임/몸부림 심한 연기의 막다른 골목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다시 의자에 앉는 사람은 어딘가 지쳐 있다. 상쾌한 아침에도 기분을 다듬으며 진한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대체로 그렇다. 그들은 어딘가 얼굴이 떠있다. 허공을 향해서 뱀에 지친 인간들이 꼬리를 자른다. 연기에 지친 친구들이 담배를 끊듯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 이 끈적한 이야기는 꼬불꼬불 동굴을 따라 운동과 멈춤과 반죽의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스스로 변이 된다. 당신이 입만 벌려준다면, 이 이상한 소감과 행동을 닦아줄 수도 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고.
김 언
․1973년 부산 출생
․1998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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