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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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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피노키오
오늘은 해가 떴다.
그러니까 오늘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하얀색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얼굴이 되어가지.
모자 속에 눈이 묻히고
총에 맞아도 웃음이 살아남는
인형의 입술이 되고
그리고 진짜 아침을 먹으면
코가 길어지는 것처럼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야.
마술사의 손을 가진 것처럼
피아노를 칠 수도 있을 거야.
그 다음엔 하얀 장갑을 끼고
열 개의 손가락을 가져야지.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클로즈업
나는 얼굴도 들어갈 만큼 큰 입을 가지고 있다.
치과 의사에게 이빨을 맡기고
잠깐 놀러갔다 와도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입술은 자꾸만 얼굴에 있지.
손바닥으로 가리면
보이지 않게 움직일 수 있기라도 한 듯.
참은 웃음들은 어디로 사라질까.
웃음이 터진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 건 어쩌면 성장의 비밀.
칫솔질을 해도 이빨은 움직이지 않고
잠이 들면 나는
맛 좋은 초콜릿을 먹으며 천천히 썩어가는 심정이 된다.
얼굴에서는 누더기 같은 표정이 흘러나오겠지.
얼굴만을 따돌린 채로
나는 쑥쑥 자라는 중이겠지.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
․시집 간결한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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