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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안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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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그림 속의 저문 강
저문 강을 향해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그림은
거기서 멈춰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어둠이 깊게 내린 강둑
저문 강을 건너면 무엇이 있을까
물 주름이 삽시간에 몰려와 발목을 움켜쥔다
건너가지 말라고 누군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뛰어오는 소리
들린다,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림 속에서 뛰어나온다
그림이 강을 흔들어
내 앞에 안개를 길게 풀어놓는다
손
점쟁이는 내 손금을 보더니 평생 벌어먹고 살 팔자라고 했다
김피부과 원장은 주부습진 걸린 내 손을 보더니 왕비병이라고 했다
내 손엔 보들레르 악의 꽃을 담은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장바구니 속엔 생활의 일부 악악 소리를 치고 있다
나는 골목 모퉁이에 피어있는 작은 풀꽃 앞에 앉아
두 개의 꽃잎을 따 한 손바닥에 올려놓고
힘껏 뭉개버린다
내 손에 이중의 운명이 새겨져 있다는 듯-
문득 나의 손이 만들어온 배신
로댕의 애인이 평생을 머문 정신병원과
그곳을 통과한 빛의 잊혀진 시간 근처,
뒤늦게 그 자리를 지나와서야 피는 꽃들의
향기를 소멸시키고 싶은 광기가
내 속에서 후끈 솟구쳐 오른다
나를,
내가 깨끗이 배신하고 싶어
장바구니를 집어던졌다
뿌리 뽑힌 풀꽃이
침이 묻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욕설하듯
중얼중얼 지껄였다
안명옥․
경기도 화성 출생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시집 소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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