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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신작시/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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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영
아버지의 안전벨트
아버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길을 끌어다 덮고 있었다
시멘트 똥이 묻은 작업화를 베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낀 누런 종이봉투 속에는
식은 국화빵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녹슨 가시관을 쓴,
속병 깊어진 후,
삶이 부도가 난,
아버지 얼굴에서 땅에 처박힌 늙은 예수를 보았다
-이눔아, 딴 맘 먹지 말고,
돈 벌러 가야 한다-
사타구니에 검은 가시가 돋기 시작한 뒤부터
말씀이 늘 말쌈으로 들렸지만
말로는 도저히 말씀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결국 상고에 갔다
짐칸에 실린 아버지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노끈으로 칭칭 묶고 자전거를 끌었다
페달이 닿지 않아서 낮은 언덕배기도 넘기가 힘겨웠다
마음만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당신 그림자
당신 그림자
고이 간직하기 위해
나는 지금
젖은 땅바닥을 깁니다.
당신 없인
도저히 견딜 수 없기에
당신 그림자 속에
머리를 박고
입술을 포개어
숨결을 핥고 있습니다.
당신 그림자 다 마르기 전에
당신 그림자 다 떠나기 전에
고 영
․1966년 안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200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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