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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문화산책/박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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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74회 작성일 08-02-29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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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왕의 남자>  -박스 오피스의 선택적 친화성과 젠더블렌딩

박부식|영화평론가


<왕의 남자>가 관객 수 1,200만 명을 넘어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던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 치웠다. <쉬리> 이후 그 주기는 점차 짧아져 이제는 불과 3년 만에 새로운 기록이 작성되었다. 이 기록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고 이제는 영화사적 기록을 넘어 일파만파 그 파장을 넓혀, 언뜻 불가사의한 ‘신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바르트가 말했던 ‘현대의 신화’가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기호들의 무한연쇄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왕의 남자> 신드롬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간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서 ‘현대의 신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왕의 남자> 이후 ‘동성애 담론’과 ‘사극열풍’, 그리고 급기야 스크린 쿼터 문제에까지 개입되고 보니 비로소 그 이전에 개봉했다가 대중적 호감을 얻는데 실패한 이명세 감독의 퓨전 사극 <형사>와 전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했던 TV사극들에 대한 인기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특히 <왕의 남자>의 이상스런 반복관람도 뚜렷이 도드라져 보인다.
<왕의 남자>는 흥행추이는 좀 이상한 데가 있다. 개봉 10일 만에 300만 명가량의 관객을 동원하고 보통의 다른 흥행영화의 경우 하락세에 접어들 때인 3주차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그 세를 더 굳건히 하며 500만 명을 넘어설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때쯤 세간의 사람들은 이 영화의 돌풍을 ‘대단히 이례적인 일’에서 ‘놀라운 일’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고 극장 앞을 메우는 장사진 앞에서 <왕의 남자> 현상을 예기치 못했던 영화 관계자들은 갑작스런 ‘신화의 출현’에 당황하며 이 물결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점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영화기자들은 앞 다투어 흥행 추이를 분석하며 1,000만 명 고지를 바라보았고, 흥행원인을 안팎에서 찾아내느라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인 감우성을 인터뷰하면서도 언론의 실제적인 관심은 그를 넘어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 공길 역의 이준기라는 신인급 배우를 갑자기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웠다. 이것이 이제 완전히 동성애 담론이 대중문화에서 열광적으로 환영받았음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우리는 공길이 가진 성 정체성의 이중성이 대중들에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시대의 성 담론의 이데올로기의 보수성과 저항성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중의 공길이 대중영화로서의 <왕의 남자>에서 극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핵심적 장치이기도 하다. 바로 연산군에게는 따스한 모성적 정서를 주는 어머니-공길이자 장생에게는 변치 않는 연인-공길이라는 궁극의 판타지를 체현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 가지 들어가기 전에 이 거대한 문화적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뿌리도 없고 기원도 없이 단지 결과론적 해석만이 가능한 유일한 대안처럼 보이는 이 거대신화의 ‘쓰나미’가 당도한 후에 쏟아진 후일담 내지 결과론적 해석을 넘어서 도대체 무엇이 말해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 많은 영화잡지와 매체들이 이 영화에 관해 가능한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었고 마침내 1,230만 명이라는 한국영화 흥행 최고의 기록을 끝으로 막을 내린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이 말해질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이 남아있기나 한 것인가?
이를 재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는 <왕의 남자>가 개봉된 즈음의 시기에서 지금까지를, 그리고 <왕의 남자>를 둘러싼 영화사적 맥락을 산업적 견지와 텍스트 내부에 대한 해석의 견지에서 두루 다시 살펴야 하며, 나아가 이러한 영화적 흥행의 대기록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까지도 고민해야 하며, 급기야는 이와 비슷한 맥락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른 나라, 혹은 한국영화사의 잊혀져버린 추억들 속에서 견주며, 죽어버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현재의 영화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흥행기록에 대한 맹목적인 비교를 넘어 현재의 너무나 부풀려진 신드롬의 팽창을 조금 추스르며 지긋이 눌러두는 비평적 자세의 숨고르기이자 지금 현재와의 거리를 두며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이 기록 혹은 기억을 둘러싼 성찰의 전망대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면서 점점이 이동하게 되는 어떤 추상적 지점들이며 상상력에 의해 이끌려지는 즐거운 지점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왕의 남자>를 두루 철저히 분석했던 평가들이 가졌던 어떤 전제들에 대한 재검토를 해보려고 한다.
<왕의 남자>에 대해 명민한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텍스트를 분해하여 다시 재조립하듯 텍스트의 얼개를 몇 가지 캐릭터들이 가지는 대립구도에 맞춰 재구성하는 식의 분석 글들이 눈길을 끌었고, 특히 허문영 평론가의 분석은 흥행코드와 관객의 욕망이 수렴한 무의식적 지점들을 텍스트 내부의 구성, 그리고 그에 걸맞은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 열심히 샅샅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흥행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왜 이 영화는 800만 명이 아니라 1,000만 명을 넘어섰는가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세대별 내러티브 주안점과 해석상의 차이 그리고 관객에게 차별적으로 수용된 지점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1,200만 명이라는 흥행스코어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이것은 애초에 결과론적 유추 혹은 유추적 과정을 통한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흥행의 원인’을 결과론으로서 재구성하는 것의 한계에 어쩔 수 없이 봉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당초 <왕의 남자> 신드롬에 대한 대중들이 원했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그것’은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대들이 이준기라는 미소년에 열광하고, 20대가 공길과 장생과의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관계에 열광하고, 30대 이상, 그리고 그 이상이 연산을 둘러싼 정치 게임을 보았다면 그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해명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텍스트 안에 이처럼 다양한 관계들의 동시적 출현이 가능하다면 이들 관계의 알레고리가 서로에게 어떤 자장관계에 놓여있는지도 역시 말해져야 한다. 이러한 관계들에 따라 좀더 <왕의 남자>의 텍스트 구조와 공간이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알레고리적 관계들에 의해 탈구된 주체들의 분열이 어떤 식으로 텍스트 안에서 접합되고 있는지를 텍스트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함께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공길을 중심으로 하는 삼각관계의 틀 속에서 어떤 모성적 멜로의 불가능한 봉합의 출현과 그것이 가져온 효과들이, 동성애 담론을 대체하는 신비스러운 흥행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공길의 캐릭터가 주목받았던 이유가 단지 ‘예쁜 남자’ 신드롬을 넘어서는 극중의 모호한 이미지에 기댄 바가 큰 것으로 보이며 바로 이 부분이 <왕의 남자>가 가진 플롯의 핵심적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2006년 세밑 극장가 풍경과 관객의 한국영화에 대한
  선택적 친화성
우선 시간을 거슬러 시선을 지난 연말의 극장가로 던져보자. 일단 <왕의 남자>가 극장 개봉하던 즈음의 극장가 풍경으로 슬쩍 돌아가 보면 우선 1,230만 명이라는 거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압도적 숫자의 ‘숭고함’, 그것이 주는 추상성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지폐를 꺼내들고 매표소 앞에 서게 되는, 그 약간은 설레지만 훨씬 구체화된 상황을 되새기며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대중들의 무조건적 열광에서 비껴서 <왕의 남자>와 함께 걸린 여러 다른 영화들도 눈에 들어오도록 한다. 분명 지난 3개월여의 기간 동안 극장에는 <왕의 남자>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걸렸다가 내리지곤 했다는 것을 조금 더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왕의 남자>가 1,00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와 다른 점은, 이 영화를 찾은 1,200만 명을 넘는 관객들 중 일부는 개봉 초기 그다지 많지 않은 개봉관을 찾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강조해서 보고자 하는 이들은, 이 영화가 ‘실화에 기댄’ <실미도>와 ‘남북 정상회담’의 분위기에 편승한 <태극기 휘날리며>와는 다르게 오직 영화 내적인 힘에 의해서 관객 동원을 이룩해 낸 영화라고 평가한다. 그러고 보니 흥행의 추이는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산업적 마케팅의 힘과는 일정부분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객들의 반복관람이라는 특이한 면들이 겹쳐지면서 이것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앞 다투어 이 엄청난 관객 숫자 앞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그에 따라 영화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왕의 남자>의 예외적인 흥행이유는 베일 속에 가려진 채 다가서면 먼 풍경 속처럼 멀어진다. 여기서 나는 이러한 흥행이 가능했던 이유를 실제적인 극장가의 풍경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자본주의적 논리와 영화사적 맥락을 통해 다시 살펴본 후 텍스트 분석에 대한 약간의 변용을 가해보고자 한다.
<왕의 남자>는 2005년 12월 29일 <청연>과 함께 개봉했다. 그러나 윤종찬 감독의 <청연>은 이내 친일논란에 휩싸이게 되면서 애초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흥행기록으로 급격히 추락하고 말았고, 이러한 와중에 앞서 개봉했던 <태풍>과 <왕의 남자> 개봉 이후 시차를 두고 개봉했던 <야수> 역시 기대한 만큼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청연>과 같이 100억 원 이상을 들인 거대영화의 전혀 예상치 못한 실패와 함께 <태풍>, 그리고 <야수>의 부진은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외화와의 격전이라는 대결구도로 상정되는 극장 안 흥행 세 다툼은 은근히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킹콩>과 <나니아 연대기>로 이어지는 할리우드의 라인업을 교란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거의 아무도 예상치 못한 흥행 세의 극적인 대반전이 <왕의 남자>에서 이루어졌다. 왕의 남자의 흥행 추이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극장관객의 정서에 민족주의라는 정서의 획일주의가 스며들었음을 전혀 무시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반복적인 관람행위와 중장년층의 극장동원은 놀라운 것이었다. <왕의 남자>의 흥행추이는 12월 29일 개봉해서 5일 만에 100만 명을 동원하고 다시 3일이 지나 개봉 8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와 더불어 필름2.0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데, 개봉 3주차에 접어들어서 관객 점유율이 전체 개봉관의 41%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소위 ‘입소문’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휘되어 수없이 많은 호의적 관람평이 인터넷을 통해 하나의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 기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때부터 <왕의 남자>가 흥행의 가속도 법칙을 고려할 때 400만 명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 수치를 넘는다는 것은 이미 텍스트의 효과를 넘어서는 어떤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관계의 ‘상상적 기표’로서의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다시금 사회 속으로 되비추는 구체적인 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TV 뉴스였다. TV는 이전의 모든 흥행대박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거쳐 간 공식적 홍보매체로서 이를 기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런데 뜻밖에도 동성애 담론이 아니라 제작자들의 의도에 따른 동성애적 표현의 수위를 제한한 덕분인지 ‘미소년’ 담론(혹은 메트로 섹슈얼), ‘광대극의 정치성’, 그리고 줄타기를 비롯한 전통문화의 재현으로만 모아졌다는 점이다. 사극이라는 장르적 핸디캡을 넘어서기 위해 고안된 퓨전 사극의 장치들이 정교하게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는 민족주의적 정서와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일 것이다.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가공된 이데올로기와 도시인의 교양과 쾌락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기 위한 영화가 그리 쉽게 관객에게 선택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서 관객들의 나름대로 각자의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관계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때론 데이트이거나 모임이거나 친구들끼리의 단체관람 등으로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는 점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현대사회의 문화 소비적 시대에 영화 역시 영화 그 자체의 이미지보다는 영화라는 상품을 두 시간 정도 만족스럽게 소비하도록 강요된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관객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재구획된 극장 공간 안에서 컨베이어벨트처럼 한쪽 문으로 들어와 다른 쪽 문 밖으로 내쫓기는데, 우리는 오직 그 동안의 시간을 성공적으로 소비하기에 알맞도록 온전히 시선과 자세를 갖추도록 권해진다.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에서, 그리고 아도르노 역시 ‘조작된 소비’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소비행위가 정교하게 유도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백화점의 상품 진열과 공간 구성 등에 적용되는 고도의 소비심리 조장행위는 우리가 자유롭게 마음껏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처럼, 한국 영화계가 급격히 멀티플랙스 중심의 극장으로 옮겨가면서 관객의 선택적 친화성은 오직 획일화된 멀티 플랙스들 사이에서 적당히 방황하며 장르적으로 변용되고 관객들의 입맛에 예민하게 맞춰진 그런 영화들 사이에서만 작동한다. 현재진행형의 이 신화에서 내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왕의 남자>가 1,200만 명을 동원할 만큼 훌륭한 영화라는 등식이나 혹은 온전히 영화만의 힘으로 관객을 극장가로 불러 모았다고 하는 위험한 논리이다.
이 논리가 허위임을 증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역으로 <왕의 남자> 혹은 이전의 관객 천만 명 동원의 신화적 아우라를 품고 있는 영화들이 가져온 부정적 이면들에 관해 질문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러한 영화의 양적 질적 팽창 시대에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왕의 남자>는 1,200만 명의 관객들이 찾은 반면,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영화는 채 10만 명도 찾지 않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무식하게 질문해 보자면 <왕의 남자>는 김기덕이나 홍상수 영화들보다 120배 더 재미있다거나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점이다. 영화 산업에 관한 근본적인 조정인 스크린쿼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배급의 문제인 것처럼, 영화 흥행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텍스트 그 자체의 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탈구된 고리missing link’들이 바로 이 신화의 비밀을 상당부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왕의 남자>를 본 그 수많은 관객들에 대한 소비행위라는 것의 원인은 텍스트 안에서 찾아지기보다는 당시 극장 앞 풍경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제작자와 배급업자의 욕구가 수렴하면서 관객들의 능동적 소비를 점점 상대적으로 쾌락의 질을 보장하는 <왕의 남자> 쪽으로 기울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은 스스로가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서 남들 다 보는 영화를 보기 위해 강박적으로 극장가를 찾고, 또 스스로를 위무하는 집단적 의식ritual에 동참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관객동원이라는 것이 사실은 <청연>과 <태풍>, 그리고 <야수>가 채웠어야 할 스크린이 점점 <왕의 남자>로 채워졌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 속에서, 점점 2006년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의 기록을 세우도록 추켜세워진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왕의 남자>가 관객들의 호응 속에서 그 파급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는 뜻이지 인위적인 조작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개념이 유용한 것은 단선적인 원인과 결과의 대응이 아닌 보다 복잡한 다차원의 현상에 대한 해명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 있다. <왕의 남자>의 기록적인 흥행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은 영화 그 자체의 흥행 원인이라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 자체의 매력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떠받치고 있는 한국 영화 산업을 통해 <왕의 남자> 신화의 이면에 놓인 관계들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2. <왕의 남자>와 ‘다층적 독해’와 공길의 젠더블렌딩
촘촘히 계산되고 예측가능해진 마케팅과 사전 제작 단계의 포석은 현대의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영화가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드러내도록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가주의 영화의 소수지향의 영화보다는 대중영화의 흐름 속에서 더 쉽게 발견된다. <왕의 남자>를 이렇게 비판적 입장에서 살펴볼 때조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1,200만 명이라는 숫자가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 ‘천만 관객’의 신화가 관객들의 집단적 무의식과 접속하게 된 지점들이 한국사회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상적 관계’를 드러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지점이 어디였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또한 그것대로 필요한 일이다. 여기서 다시 시간을 좀더 충분히 거슬러 올라가 이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극장가로 이끌었던 지난 한국영화사의 고전적 영화들의 목록들을 살펴보자.
영화사적으로 볼 때 지난 60년대 총인구수가 2,500만 명 정도에 불과할 때 관객 수 연인원 1억 명 이상을 동원할 때의 ‘황금기’를 지금과 대비해보거나 당시 5만 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으로 생각되던 시기에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74)이 25만 명 이상의, 당시로선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이나,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75)가 36만 명 이상을 끌어들이며 곧이어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운 것, 그리고 또 이어서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77)가 결국 한국영화의 최고 흥행기록을 갖게 된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때의 기록들은 서울에서의 단관 개봉 기록만을 집계한 것이므로 전국 개봉 관객은 훨씬 더 규모가 컸을 것이며, <결혼이야기>(’92)가 나올 때까지 깨지지 않다가 마침내 <서편제>(‘93) 100만 명 이상의 기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 현재 보편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70년대 ‘호스티스영화’의 출현과 그 전성기로 통칭되어 개념화되어 있다. 대중적 영화가 위대한 점은 비록 당시에 이 호스티스 영화들이 때론 천박하고 부박한 경향들을 쫓는 영화들로 보였지만, 호스티스 영화의 상처입고 버림받은 ‘여자’들이 바로 시대의 수난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재현해내는 아이콘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왕의 남자>가 접속한 대중들의 무의식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분명 섹슈얼리티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메트로 섹슈얼한 이미지에 의존하는 대중문화 전반의 ‘꽃미남’ 열풍과 관계되어 있다. 추앙받으면서 동시에 물신화된 여성적 속성을 강조하는 꽃미남 말이다.
<왕의 남자>의 공길이라는 캐릭터가 대중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초부터 장생과의 연인 사이로 등장하지만 결코 동성애자로 변화하는 시점과 계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과 직접적으로 성애적 장면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생이 말한 ‘비역질’이 극중에서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한국에서 그다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점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왕의 남자> 팬 카페의 글들을 보면 다수가 공길의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를 참지 못하며, 이를 영화에 대한 도발적 모욕의 행위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더 확실해진다. 이는 공길의 역할을 예쁘장한 외모를 지니긴 했지만 분명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장생의 의리 있고 속 깊은 친구로 규정짓게 하고, 동시에 연산에 대해서도 애정과 연민을 갖고 비록 왕이지만 그를 어루만져주려는 어머니와 같은 캐릭터로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적 요소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극도로 줄어들게 된다. 장생이 비록 ‘비역질’이라는 단어를 직설적으로 입에 올리며 반역적 행위를 하지만, 그것은 결국 평생의 친구이자 광대 판의 동지인 공길을 잃은 한풀이처럼 여기게 하는 정도이지 왕과 장생을 둘러싼 삼각관계의 애정전선으로 읽어내길 어렵게 하는 것이다. 공길이 분명 장생과 연산을 매개하지만 그 매개로서의 공길의 역할이 사실상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을 끌고 가는 캐릭터이자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녀를 어떻게 읽어내는가에 따라 <왕의 남자>는 전혀 다른 텍스트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왕의 남자>에 대한 독해가 분명 남/녀 사이의 성적 정체성을 구분 지었던 그런 전통적인 가치관과 달라 보이게 하는 그런 텍스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전통적 남/녀 성적 구분을 흐리게 하거나 새로운 젠더 정체성을 출현시킬 폭발력이 내재된 이 텍스트가 매우 교묘하게 대중영화의 장르적 방식으로 희석되며 매우 보수적으로 용해되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왕의 남자>의 가장 핵심적인 코드는 왕의 ‘남자’가 성적 코드로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정체불명의 이질적인 젠더의 등장과 함께 반복적 관람의 패턴으로 주목을 끌었던 관객들의 반응에 따른 텍스트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거기에서 나는 공길의 이질적인 젠더로서의 역할과는 달리 지극히 그의 여성적 측면이 장르적으로 변용되면서 어떤 모성적 멜로의 가능성으로 드러났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꽃미남의 외양에 모성적 안식과 든든한 우정들 사이의 불가능한 ‘연대’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선 일단 이 ‘읽기’의 행위에 주목해서 일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가정된 관객 정체성을 봉합하여 보자.
관객의 반응에 있어서 <왕의 남자>에 대한 상당수의 비평이 반복적 관람행위를 강조하였고, 세대 혹은 연령에 따른 서로 다른 해석을 강조하였다. 10대와 20대 초의 연령대 사람들이 공길을 중심에 두고 보았고, 20대 이상 30대가 장생을 중심으로 보았다고 했으며, 그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은 지난날 연산의 신화적 모티브에 익숙한 이야기로 <왕의 남자>를 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분열된 각자의 영화 읽기는 정녕코 분열된 채 파편화된 영화로만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각자의 주안점이란, 그들이 이러한 분열적 양상들을 모종의 매개들과 봉합의 수단들로서 텍스트를 모아서 각자의 종합을 이루어내는 방식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텍스트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의 가능성들이 잠재적으로 현실화되는 계기를 의식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담론들, 여러 주인공들을 동시적으로 읽어내는 이런 다층적 텍스트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그것은 텍스트 공간 구성의 서술방식과 함께 읽어내는 영화 읽기의 과정에서 관객의 능동적 행위와 연관된다.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제한적인 텍스트 공간 안에서 의미화 된 이데올로기가 관객들의 능동적 읽기 행위는 환상처럼 개입되는 이 ‘스크린 앞에 선 관객’의 읽기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여러 캐릭터들에 대한 감정이입의 과정이 분열된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텍스트를 봉합하는 기제는 <왕의 남자> 그 자체에 대한 전체적 해석의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의식적으로 이 과정들에 대해 ‘낯설게 하기’의 성찰적 행위를 통하지 않으면 거의 인지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면 이 분열된 각각의 담론들을 봉합하는 가장 강력한 정서적 동인이자 <왕의 남자>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공길’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이며, 관객들이 각자 ‘읽어내었다고 주장하는’ 담론은 공길을 중심으로 한 채 연산-장생을 삼각축으로 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공길은 연산군을 ‘모성’으로서 어루만지는 어머니-공길 그리고 또 한축으로는 장생과의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여성적 이미지의 남성-공길, 이 둘을 연합하는 ‘놀이판’의 정치적 연희꾼으로서의 공길에 중요한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 그리고 대중들의 거부감 없는 감상을 연희판의 흥과 결합시키는 아크로바틱한 기예가 배제된 동성 간의 성애장면을 대신했다. 그 결과 공길은 대중적으로 독해를 혼란에 빠뜨리게 할 ‘트라우마’가 아닌 메인 캐릭터로서 영화의 주요한 지렛대로서 떠올랐다. 그래서 연산에게 공길은 장록수가 채워주지 못했던 연희형식의 극을 통해 모성애의 결핍을 배상받도록 해주었고, 장생에게는 변치 않을 연희극의 동지이자 궁극적으로는 그와 함께 영원할 수 있는 죽음을 초월한 연인의 이미지로 남았다. 그것은 동시에 극의 마지막에 하늘 위로 솟아오른 정치적 저항이자 영원한 (정신적) 사랑의 완성 그 자체의 순간적 현현으로도 나타났다. 이러한 공길의 역할은 크리스테바가 어머니-아이 관계에서 모성은 전 외디푸스 단계에서 비천해지는 동시에 숭고해지는 법이라는 통찰력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한 어머니-아이의 이자적 관계가 아니라 연산-장생-공길이라는 삼각관계에서 공길의 지렛대 작용은 연산의 무자비함을 모성적 관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동성애 관계가 아니라 연산에게는 어머니-공길의 이미지로 겹쳐졌으며, 장생에게는 동지이자 연인인 관계로 이미지화되었다. 이러한 서술의 구조가 바로 동성애의 트라우마를 덮은 내러티브 장치의 대중적 재배치와 성적 담론의 급진성을 은폐하는 기술로 보이는 것이다.

3. <왕의 남자> 신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일견 매우 천박해보일 때도 있고 신비한 아우라를 감추기도 한다. <왕의 남자> 현상을 두고 일단 1,2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위압감에서 벗어나서 볼 때 이 현상은 알튀세르가 말하는 혁명처럼 매우 ‘우발적인 계기’를 통해서 드러났지만 그 효과는 매우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분명 한국 기획영화의 대작위주의 풍토와 물량공세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왕의 남자>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들은 ‘이질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이중적 태도일 것이며, 특히 분열된 것을 봉합하는 동시에 섬세하게 읽어내는 관객들의 새로운 능동성이다. 어쩌면 <왕의 남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1,200만 명을 동원했다는 것보다는 집단적 읽기의 행위가 보다 풍요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그것이 흥행의 원동력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첫 영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극장가의 의도치 않은 공백을 메운 선택적 친화성에 의거한 우연적 신화일지라도 말이다.



박부식․
2001년 제1회 프리미어주최 영화 평론상 우수상 수상
․컬티즌에서 펴낸 󰡔내 인생 최고의 최악의 것들󰡕이라는 책 중
  「내 인생 최고 최악의 극장」편을 씀

추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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