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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문화산책/서정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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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36회 작성일 08-02-29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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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민중가요는 살아있다

서정민갑|대중음악평론가


1. 민중가요에 대해 말한다는 것
민중가요는 남한사회의 민주화운동과 진보적 예술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대중음악 창작물이다. 조금더 자세히 말하자면 한국근현대사에서 자주, 민주, 통일, 평등, 평화 등 진보적이며 공공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집단적 운동 과정에서 창작되거나 향유된 다양한 형태의 음악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가요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노래운동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의식과 전망을 가진 창작자가 존재할 만큼 음악운동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지 않아 기존의 대중가요나 구전가요들이 민중가요로 전유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5․18 광주민중항쟁을 거친 후 급진적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운동의 발전과 맞물려 김호철, 박치음, 문승현, 이성지 등의 전문 작곡가들과 새벽, 노래를찾는사람들, 노동자노래단을 위시로 한 전문 노래집단이 출현하면서 한국사회에서도 노래운동 진영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대중가요가 다루지 않았거나 한정적으로만 소재화했던 한국 사회의 현실과 역사, 인간의 문제를 노래의 소재로 과감하게 끌어들여 직접적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대중가요가 방기하고 있었던 음악의 사회성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노래가 비민주적이며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투쟁들과 적극 결합하여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도구로 활용되기를 열망하였다. 예술가 자신의 내적 고뇌를 표출하기 위해서이거나 예술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음악활동을 하는 것처럼 개인적 성취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발화체로서 음악을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음악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민중가요는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존재의 근거에서부터 큰 차별성을 갖는다
여기서 민중가요는 단순한 음악 창작물로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의 대리물로 기능하였기에 창작 이후의 순환 과정도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현저하게 다른 방식을 보였다. 기존 대중가요가 ‘음반 출시-방송 출연/공연-대중적 성공’이라는 과정을 밟았다면 민중가요는 ‘음악 창작-대중과의 직접적 결합-소통/활용’이라는 과정을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민중가요 진영에서도 음반을 출시하여 판매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또한 웹(web)을 통해 노래를 보급하기도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중가요 진영에서는 검열과 예산 등의 문제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지 못하고 불법 테잎을 제작 배포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방송과 언론을 통해 음악을 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대신 민중가요는 청년학생,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을 비롯한 구체적 조직대중들을 집회, 콘서트 등을 통해 직접 대면해 가며 노래를 알리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 과정에서 구전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도 민중가요의 주요한 특성 중의 하나다. 검열이 철폐된 이후에는 민중가요 역시 대중음악 시장과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상업적 논리와 질서가 갈수록 탄탄하게 구축되어 버린 대중가요 시장과는 별도의 판매/홍보 루트를 가지고 자신들의 음악을 알려왔다. 여기서 민중가요 창작자들 역시 상업적 이윤의 획득이라는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지만, 음악의 성공을 반드시 판매량과 직결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대중가요와는 다른 점이다.
그런데 기존의 대중가요는 개인적으로 음반을 구입해서 음악을 듣거나 방송에서 음악을 접하고 또한 이런 저런 자리를 통해 향유되었다고 한다면, 민중가요의 경우에는 대체로 집단적으로 함께 노래를 듣고 배웠으며 이를 반복해서 부르며 노래를 향유했다는 점에서도 차별적인 모습을 보인다. 민중가요는 개인적으로 노래를 듣고 배우기보다는 집단적인 실천의 과정에서 노래를 학습하고 향유했던 것이다. 여기서 민중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그 음악을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민중가요가 지향하는 세계관에 동의한다는 것이며, 그 노래를 향유하는 집단속에 자신을 위치 짓고 집단의 성원들과 동일한 행동에 참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것은 민중가요가 단순한 음악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였을 뿐만 아니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뚜렷한 하위문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한국에서 1970년대 포크음악이나 1980년대 록음악이 청바지 등의 패션과 결합하여 일부 청년계층의 하위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생산과 유통, 향유의 방식에 있어서 민중가요만큼 분명한 독자성과 차별성을 획득하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민중가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중가요 창작물에 대한 조사․연구․비평과 함께 민중가요가 창작되고 소통된 방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며, 또한 민중가요를 향유하고 확산시켰던 계급/계층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민중가요는 누구나 공감하듯 엄청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결핍 속에서 창작되고 소통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하위문화로서의 총체적 접근에 앞서 음악창작물로서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조사연구는 고사하고 창작물의 보존과 지속적 발표조차도 매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한계로 인해 최근의 민중가요에 대한 분석 역시 창작적 흐름만을 일별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앞으로 민중가요에 대한 조사 연구 작업이 본격화된다면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2. 최근 민중가요의 흐름
최근 민중가요 진영의 흐름을 한마디로 단언한다면 ‘정중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민중가요는 더 이상 현재의 음악이 아니라 과거의 음악일 뿐이다. 민중가요 집회장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최근에 발표된 노래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발표되었던 노래이고 어쩌다 민중가요를 소개하는 언론의 기사에서조차 민중가요는 7080세대의 추억 어린 노래로 취급되고 있다.
사실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민중가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노래라는 장르 자체의 대중적 친화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중가요는 집회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불리며 진보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언더그라운드/인디 음악들과 함께 대안적 질서를 구축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상업적 속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사회운동이 분화/쇠퇴하면서 민중가요는 이전의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10대 위주로 재편된 대중음악시장에서 다양하고 진지한 음악적 접근들은 무참히 묻혀버린 채 저주받은 걸작의 묘비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전투적인 민중성을 생명으로 했던 민중가요 역시 대중음악 환경의 변화와 민중운동의 퇴조, 386세대의 보수화 등에 맞물려 자신들의 활동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제 민중가요는 더 이상 집회장에서 불려지고 전파되지 않는다. 두 번의 촛불시위 과정에서 윤민석의 기동성 있는 역할은 매우 돋보였지만 그것만으로 대안을 채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대안적인 노래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불려지며 순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회장에서 불리는 노래는 20년 전의 노래이며 소위 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민중가수들을 집회장의 들러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운동 진영의 공동 모색과 실천은 대체로 실패하고 중단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민중가수들은 여전히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이 되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단순히 운동의 무기로서만 불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술성과 독자성을 갖는 생명체로서의 노래를 위해 많은 팀들이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더 깊이 고민하고 연습하며 현장과 소통하려 애쓰고 있다. 꽃다지, 소리타래, 우리나라, 희망새 같은 노래패들은 여전히 굳건하다. 가극단 미래, 신나는 세상 같은 노래패들이 새롭게 결성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노래패들의 수보다 더 많은 개인가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음악적인 완성도과 주제의식은 훨씬 더 치밀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나온 민중가요 음반 중에서 문진오의 울림 깊은 보컬과 박창근의 생태주의, 소풍가는 날의 서정성, 손병휘의 도저한 평화주의는 민중가요가 제2의 부흥기를 준비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했다. 특히 연영석의 3집 <숨>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노동진영의 솔직하고 통렬한 문제의식을 잘 벼린 록음악으로 담아낸 뛰어난 작품이었다.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조금 더 언급해보자.

1) 문진오 1집 <길 위의 하루>
문진오의 첫 앨범은 한마디로 청년시절에 진보적 음악활동을 시작했던 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소회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꿈에 대한 진지한 자기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노래를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운 그는 이제 우리가 미워했던 것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가치들에 주목한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세상을 공평히 비추는 햇살이 되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바람이 되기’를 바라며(내 아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골목길을 쏘다니며 단골술집 외상술에 밤 새워 얘기하던 오랜 친구’(마흔이 다 된 나의 친구야)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늘 푸르름으로 사는 나무처럼 푸른 꿈들을 두 팔 벌려 세상에 펼치리’(나무)라 다짐하고 ‘퇴색한 꿈이 빛나지 않을지라도 언제나 내가 그대 곁에 걸어가고 있음을’(마흔이 다 된 나의 친구야) 알아달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민중가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고뇌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많은 꿈들이 나를 흔들고 간다’(비)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수선화에게)이라고, ‘아름다웠던 사랑도 가고 우리네 인생도 흐른다’(세월)고 읊조린다. 왜 아니겠는가? 그와 함께 음악활동을 했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음악활동을 중단했고, 그는 결코 돈벌이가 되지도 유명세를 주지도 못하는 민중음악 전업 창작자로 여전히 남아 있으니, 그동안의 고충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삶의 고통을 결코 과장하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으며 타협하거나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당장 어떤 변화를 꿈꾸지는 못하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생활인의 자세를 견지한다. 이것은 20년 전 세상을 바꿔냈던 386세대들이 지금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며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주인이 되겠다는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 386세대의 세대의식임과 동시에 문진오가 몸담았던 노찾사 음악이 가졌던 기본 철학이었다. 자신이 노동자라거나 투쟁하는 선진적 주체라는 의식을 갖지는 않지만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역사 앞에 올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노찾사 음악의 기본 철학이었기에 노찾사의 음악이 386세대의 노래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불려지는 것이다. 노찾사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386세대인 문진오의 음악 역시 그렇게 건강한 386세대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2) 박창근 2집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기회를>
스스로 작사, 작곡, 편곡, 노래, 기타 연주, 음악감독 등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해서 내놓은 박창근의 2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생태주의적 철학에 기반한 문제제기이다. 기존의 민중가요 진영에서 가지고 있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지나친 개발을 반대하고,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반적 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곡은 꽃다지, 손병휘, 안치환, 한돌 등의 앨범에 담겨있는 몇몇 곡뿐이었다. 그러나 박창근의 2집은 앨범의 중심적인 흐름을 생태주의적 철학에 기반한 노래들로 채운 전면적 생태주의 앨범이다. 그는 “햇볕 따사롭던 어느 날 소녀 손에 쥐어진 소시지”와 “멋진 그녀와의 데이트”에서 먹는 “화려한 조명 아래 스테이크”를 예로 들며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는지, “남의 젖을 몇 통이나 마셨는지” 묻는다. 그는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맞물려 있고 인간의 불행 또한 다른 생명체의 불행을 먹고 산다”며 육식 위주의 삶에 담긴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다. 버림받아 내팽겨진 꽃들을 외면하고서는 이 땅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육식을 탐하지 않고 땅이 키운 곡식을 섬기며 살겠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민중가요의 담론이 인간중심적 진보철학에서 출발한 것이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지금까지의 민중가요는 주류 시민사회운동이 그러했듯 인간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고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철학적, 제도적, 정신적 방법들을 노래로 담아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생태주의 운동이 일정하게 발전하며 공감을 얻어가는 데 반해 기실 생태주의 철학을 노래로 담는 작업은 드문 편이었다. 그러나 지난 1집에서 ‘꽃이 피는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했던 가수 박창근은,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오만에서 벗어나 지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해야 한다고 노래함으로써, 제도적 모순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민중가요 진영에 생태주의 철학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다른 목소리를 내며 민중가요의 영역을 더욱 넓혀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개인 창작자들이 급증하며 나타난 민중가요 진영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있는 것이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 인간의 잔인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민중가요 진영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진영 전체에서도 거의 유일한 생태주의적 문제제기이다.

3) 소풍가는 날 1집 <꽃피는 나무의 여행>
서른보다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팀을 결성한 ‘소풍가는 날’은 오랜 준비를 거쳐 내놓은 첫 앨범 <꽃피는 나무의 여행>에서 그들의 나이에 맞는 원숙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건반연주자 신현정이 대부분의 곡을 쓰고 고명원과 유인혁, 조동익의 곡이 한곡씩 들어간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여성적인 서정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민중가요 진영에는 박향미, 손현숙, 윤미진, 전경옥 등의 여성 가수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과 비교해 보거나 혹은 시야를 넓혀 대중음악판에서 활동 중인 여타의 여성가수들과 비교해 보아도 소풍가는 날은 가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로 서정적인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방기순과 신현정이 이전에 함께 활동하던 팀이 작곡가 류형선의 자장 아래에서 가스펠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던 ‘새하늘 새땅’이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음반의 프로듀싱을 맡은 연주자 신현정의 음악적 색깔이 이처럼 섬세하면서도 밝고 부드러운 쪽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현정이 작곡한 다섯 곡의 노래들은 장석남, 이봉환의 시를 매력적으로 살려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쓴 고즈넉하고 평화스러운 노랫말들의 세계를 편안하게 살려낸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그는 ‘불어오는 바람도 이 시간이 가면 오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어떤 나이듦의 깨달음을 담백한 편곡과 잘 어우러진 세 명의 화음으로 들려준다. 또한 ‘꽃피는 나무의 여행’에서는 나무의 입을 빌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여행을 꿈꾸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전의 다른 창작자들의 앨범에 실린 곡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현정이 쓴 곡들에서는 쉽게 절망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요란하거나 번잡하지는 않은 단정한 따뜻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신현정 곡들의 매력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는 누님’의 나이가 되어가는 김영남과 방기순의 서정적인 보컬과 화음을 통해 온전히 살아나 진정성 있게 울리며 소풍가는 날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따뜻한 여성적 세계의 매력은 노찾사 1집에서 조경옥이 선보였던 수줍은 여성성과 통하고, 그 이후 늘 당당하고 힘찼던 민중가요 진영 여성가수들의 세계와도 통하지만 소풍가는 날의 음악은 그 어떤 팀들의 음악보다 여성적이면서도 세련된 서정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어느 팀과도 분명히 다른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4) 손병휘 3집 <촛불의 바다>
손병휘의 3집 <촛불의 바다>는 반전과 평화운동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깨달음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음반이다.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이후 확산된 반미반전운동 과정에서 박성환․안치환․우리나라․윤민석 등 많은 민중가수들이 반미․반전․평화 등에 관련된 곡들을 발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정규 앨범 전체를 통틀어 반전과 평화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가수 손병휘의 앨범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이전에 백창우가 작업한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 앨범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한정된 아쉬움이 있다.) 이는 가수 손병휘가 미선이 효순이 촛불 집회와 탄핵 반대 촛불 집회, 그리고 반전 촛불집회로 이어진 연속적인 촛불집회의 현장을 꿋꿋이 지켰던 행보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민중가요는 그동안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발전과 조응하며 때로는 운동의 의제를 앞서서 제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운동의 의제를 반영하여 형상화하기도 했던 점을 기억한다면 손병휘의 앨범은 바로 한국 시민사회운동에서 주요 의제가 된 평화운동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손병휘 개인의 체험이 생생하게 담겨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병휘의 앨범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먼저 정규 앨범 전체를 아울러 일관되게 평화의 문제를 노래했다는 것에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담아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다른 민중가수들이 발표한 노래들이 대체로 여러 침략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담아냈던 것에 반해 손병휘의 3집 <촛불의 바다>는 평화에 대해 훨씬 폭넓고 근본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먼저 ‘수우족의 기도’와 ‘타고르의 기도’라는 두 기도곡을 통해 앨범의 처음을 열고 끝을 닫으며 평화를 염원하는 이의 정갈한 마음을 보여준다. ‘모든 만물들을 존중하게 하여 주시고, 모든 나뭇잎과 작은 돌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깨닫게 하여’ 달라는 겸허한 자세는, 정치적인 의미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평화가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성찰을 담은 것으로서 ‘평화’의 담론을 근본적으로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한국의 평화운동 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평화 철학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담론이 실제적인 음악으로 형상화되었다는데 있다. 한 예술 장르에서 어떠한 메시지가 형상화되는가 하는 것이 예술의 변화를 측정하고 의미를 평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변별점이라고 볼 때, 손병휘의 앨범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민중음악 진영에 평화의 문제가 본격적인 자기 의제가 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5) 연영석 3집 <숨>
연영석은 자신의 세 번째 앨범 <숨>에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악전고투하며 싸우고 있다. 그는 ‘돈벌러 나왔’지만 일하기보다는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내 돈을 돌려주세요.’라고 울부짖어야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처절한 ‘코리안 드림’을 절규하듯 노래한다. 신용불량자로 내몰려 ‘도망칠 수 없’는 이들과 ‘시급이 3천원’인 아르바이트의 설움, 그리고 ‘지하도 안 바닥에 신문을 깔았’던 노숙자의 삶이 그의 거친 목소리를 통해 생짜로 살아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똑똑히 알게 해 준다. 소득 2만 불 시대의 장밋빛 환상에 가려진 이들, 우리가 ‘민중’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삶이 지금 과연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로서 연영석의 3집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당대의 낮고 절박한 민중들의 삶을 노래로 만든다는 민중가요의 정신은 21세기에도 올곧게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연영석은 이들의 삶을 어떠한 집단으로 통칭해서 노래하기보다는 각각의 개인적 삶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 비극성을 온전하게 전달해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이 민중의 현실을 고발하고 투쟁을 선동하는 노래들이 대체로 군가풍의 노래로서 획일화되었던데 반해 연영석은 당대의 질감을 잘 살린 록사운드를 구사함으로써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민중가요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팔을 흔들며 따라 부를 수 없다고 해서 좋은 민중가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문제를 완성도 높게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이미 고명원과 함께 작업한 2집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을 빼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룩했던 연영석은 3집에서도 연영석만의 개성이 넘치는 사운드를 멋지게 선보이고 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에 효과적으로 사용된 이펙트는 연영석의 거친 보컬에 담긴 분노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몰아치는 와와사운드가 인상적인 “코리안 드림”과 테크노스러운 이펙트가 성공적으로 결합된 “떼레비”, “나약해” 등은 이 앨범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랙으로서 21세기 민중가요가 이뤄낸 중요한 예술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들은 박창근이나 손병휘, 유정고밴드 등이 이뤄낸 작업들과 함께 민중가요가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연영석의 음악은 기존의 민중가요의 어법과는 달리 인디록의 어법과도 통하는 면이 많아 더욱 흥미롭다.

3. 나오며
이처럼 민중가요 진영에서 수작이라 할 수 있는 음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은 민중가요가 그만큼 탄탄한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또한 치열한 예술적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예로 들었던 다섯 팀의 민중음악인들 중에서 연영석은 2006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수상할 정도로 평단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에 새롭게 나왔거나 나올 예정인 오지총, 이지상, 윤미진 등의 새 앨범도 녹슬지 않은 솜씨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완성도 높은 민중가요 새 음반이 나오는 한켠에서는 <5․18 기념 음반>이나 안치환의 같은 트리뷰트 성격의 음반도 나왔고, 또한 <민중가요 컴필레이션 음반>도 기획되고 있다. 한마디로 신구가 조화를 이루며 민중가요의 역사적 총체성을 복원해가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준비 중인 민중음악 관련 기본 컨텐츠 조사 사업이 충실하게 진행된다면 민중가요의 조사연구사업도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민중가요 음반 유통망이 무너지고 창작자들은 여전히 어렵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지만 희망의 근거마저 무너지지는 않았다. 가수 연영석의 말처럼 ‘끊임없이 창작적 영감을 주는 엿 같은 세상에 감사하며’ 자신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 다시 치열한 오늘을 살아가려 하는 이들의 노래가 예전처럼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한다 해도 좋다. 진심을 담은 노래는 결국 언젠가는 만인의 가슴에 닿게 될 것이다.



서정민갑․
2005년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5․18 기념 음반을 프로듀싱

추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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