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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권두칼럼/이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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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폭력의 2000년대, 한국문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가 새로운 세기로 들어선 지도 벌써 7년이 지나가고 있다.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라고 할 만큼 학살과 전쟁, 착취로 얼룩진 시대였다. 새로운 세기에는 20세기와 같은 시대가 계속되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초반의 상황은 우리가 결코 낙관적인 전망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9․11은 새로운 세기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등, 짧은 몇 년 동안에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세기의 전쟁은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크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고 공언하는 침공 당사자들은 민간인 속에 적이 있다고 간주하여 무차별 살육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이 새로운 전쟁 형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전후방이 따로 없이 전장은 전 지역에 걸쳐 있게 된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욱 참혹한 세계를 나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뿐만이 아니다. 냉전 구도가 허물어지면서(물론 아직 한국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20세기가 그래도 만들어놓았던 경제적 폭력의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자유롭게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일종의 대세처럼 21세기를 질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더욱 빈부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은 파괴되고 있으며, 뻔뻔스러운 천민자본주의 논리가 모든 문화와 윤리를 무력화시키고 천박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포스트모던이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던은 지옥으로, 또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이러한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횡행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더욱 심화 확장될 것이다. IMF 이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취업난과 실직, 크게 벌어지고 있는 빈부의 격차와 같은 사회 문제는 이제 통상적인 사회 현상인 것처럼 되었다. 계속 심화되고 있는 이 사회 문제들은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 이외에 다른 일에 신경 쓰질 않는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준비 기관이 되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일종의 사치로 여겨진다.
반면 심신에 가해지는 사회의 압박을 달래주는 대중문화에 더욱 사람들은 매달리게 된다. 이로 인해 대자본은 대중문화에 침투하여 막대한 수입을 얻으려고 하고, 그리하여 대중문화는 점점 거대해지면서 문화의 핵심이 되어간다. 대중문화는 그 속성상 삶과 사회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여 보수적인 대중을 형성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폄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문화는 삶을 가두고 있는 현 상황의 문제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신민화와는 다른 삶을 대중들에게 제시할 가능성을 분명히 갖고 있다. 하지만 자본이 대중문화를 포섭하는 정도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 상황이다.
대중들의 삶은 예전보다 더 힘들다. 하지만 행복을 가로막는 적은 예전과 같이 뚜렷하지 않다. 그리고 대중문화에 탐닉하는 대중들은 정통 문학에 무관심하다. 2000년대 한국문학은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국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활발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과연 현 한국의 상황과,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는 문학과의 상관성은 무엇인가, 그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문학은 과연 어떻게 나아갈 것이고 나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진단과 평가, 전망 도출 작업이 요구된다. 본지가 「2000년대 문학의 향방」으로 특집을 마련하게 된 것은 그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다.
최강민은 이광수의 문학관부터 현 ‘문학주의’ 진영의 문학관까지를 염두에 두면서, 폭넓은 시야 아래에서 2000년대에는 문학을 어떻게 호명해야 하는가 숙고하고 있다. 특히 그는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90년대 ‘문학주의’가 또 다른 문학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하고, “본격문학이 자행한 대중문학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주의와 배타적 폭력성을 종식시켜야”한다면서 2000년대 문학이 “대중문학을 통해 또 다른 길의 모색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재림은 김윤영, 박민규, 김애란, 전성태의 소설을 검토하면서 “2000년대 한국문학의 의장은 새로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 젊은 문학의 거울에는 현실이 반영되어 비”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유희는 한국 소설이 영화화된 여러 케이스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자본의 논리와 수용자의 기대 지평 안에서 형성되는 현재 문화 콘텐츠의 본질과 성격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이들의 진단과 평가, 그리고 전망은 현 한국문학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현 문학적 정세에 대한 지도 그리기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좀더 다각적인 접근과 심층적인 분석, 그리고 전체적인 시야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거대 서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이후 넓은 시야에서의 접근은 무책임하고 분석 도구로 쓸모없다는 취급을 당하곤 했다. 하지만, 점점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기능과 윤리에 대한 재점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세계 전체와 한국 문학이 현재 어떻게 관련되어 있고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종종 이야기되는 ‘문학의 죽음’을 넘어, 어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가는 전망을 한국문학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지의 기획이 이러한 필요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길 바란다.
―이성혁(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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