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3호 신작시/윤은경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36회 작성일 08-02-29 03:06

본문

윤은경


얼후 켜는 남자․1


쇠갈퀴 같다, 삼백예순 뼈마디에 그렁그렁 매달리는 얼후라는 악기, 늙은 구렁이는 죽어서도 운다
자라지 못한 짧은 다리와 음통을 받친 또 한 다리 사이, 떠돌던 길도 쭈그러진 그릇도 습관처럼 칭칭 똬리 틀고 운다 앙상한 손이 지전(紙錢) 몇 장 챙겨 넣고 때 전 구렁이 빈집 열어 보인다 모서리 닳은 젖은 가죽, 몸 훌훌 털어내고 허공에 흩트린 길 다 채워 넣어야 하루 해가 진다 왁자한 시장 한켠 급류를 탄다 컴컴하다 가쁜 숨 몰아쉰다,

닮았다, 이 오래고 단순한 거래, 그도 나도 눈 감는다
늑골 아래 현을 더 단단히 조여 둘까, 급선회하는 고음과 저음의 거친 높낮이를 견뎌야겠다,
내 안 어디서 쩡! 우레 울린다, 한바탕 다시 폭우 쏟겠다


        *중국 양슈오, 서가(西街)재래시장에서 얼후를 켜며 구걸하는 늙은 남자를 보았다.
        *얼후(이호) : 중국의 전통 악기. 우리나라의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로 현은 내현과 외현 2줄이다. 강남 지방의 곡극에 많이 사용하므로 ‘남호’라고도 부른다. 음통의 앞쪽은 비단뱀의 가죽을 펴 씌운다. 뱀가죽은 늙은 구렁이의 가죽을 최상품으로 친다. 2개의 현을 말총으로 만든 활로 켜거나 뜯으며 소리를 낸다.



얼후 켜는 남자․2


칼 긋듯 사내가 활을 긋는다 세간 길이며 빗줄기며, 등걸잠 꿈마다 만발하던 허기며 뚝뚝 베어 넘긴다 그마저도 가랑잎처럼 날린다 허공에 거는 두 줄 현, 지금 나는 내현의 저음과 비브라토의 격렬한 떨림이 필요할 때, 밀듯 당기듯 어르듯 달래듯, 사내가 줄 타며 건너온다 출렁출렁 끌고 온 모진 물음 끝, 사내의 앉음새는 똬리처럼 둥글고, 목발 아래 긴 짐승의 짧은 꼬리가 밖으로 슬몃 삐져나와 있다

소리거울의 선명한 이 안팎, 
현 짚듯 은밀히 맥 짚어본다
귀 곤두세울수록 컴컴하게 빛난다



윤은경․
199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벙어리구름󰡕

추천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