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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김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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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산
詩魔
―겨울 낙산사
나는 당신을 불 지른 불길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새까맣게 태운
火魔인지 모르겠습니다
솔밭 만 리
마음의 절간 몇 채 다 태우고도
아직 꺼지지 않고 새빨갛게 이글거리는
잉걸불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
불 냄새가 납니다
나무 탄 냄새가 납니다
당신은 나무 나는 불,
왜 식지 않는 재만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불의 혓바닥으로 사랑을 해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뜨거워 타는지 모르고
아픈 몸을 애무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불행한 일을 이렇게
시로 쓰고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활활 불길이 타오릅니다
쉭쉭 불길이 날름댑니다
범종을 녹이고
동해바다까지 삼키려 합니다 그러나 넘지 않는 곳,
새까맣게 다 태우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내 시가 써지지 않고
내 불길에 타지 않는 곳이
당신에게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詩魔
―죽은 나무
사내들이 전기톱으로 불에 탄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벌써 잘라진 나무들이 토막이나 쌓여 있었다
죽은 나무를 솎아내는 것은 火印의 기억을 잊기 위한 것,
죽은 나무는 죽기 전까지를 떠올리기 싫을지 모르지만
죽은 나무는 선 채로 숯이 되기까지 뜨거웠으리라
김영산․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9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벽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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