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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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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21회 작성일 08-02-29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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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쓸쓸한 인연


단전이 된 그는 그곳에 폐가로 남았다. 불 켜지지 않는 그에게 쥐며느리와 들고양이의 흔적이 낙인같이 찍히고 따지고 보면 그를 살다간 가장이 제초제 마신 이야기며 그에게 흘러들던 총성이 콩알같이 박히던 세월의 변천사도 담장 밑의 붉은 앵두도 이제는 끊어진 쓸쓸한 인연이었다. 어제는 그의 발치에서 종일 뻐꾸기 울고 그의 뒤란에 우물물이 말라가자 왜 생의 끝은 목이 바싹 말라야 하는지 종국에 이르러 자리끼 한 사발 머리맡에 놓아주는 물기 젖은 손은 없는지 왜 단전 후 또 단수까지 겹치는지 그에게 등 돌리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 수국꽃 환한 여름이며 수취인 부재로 되돌아가는 개울을 건너온 달빛이며 한때는 대문을 살며시 열고 집안을 들여다보던 물안개며 경칩이 울음이며 뽀얀 발자국 소리며 이제는 멀리 떠나가 밤새 이무기로 울어대는 불구의 인연, 다시는 맺지 말아야 할 쓸쓸한 인연이었다.



네가 문득 불었다


오늘은 더운 바람 되어 종일 네가 불었다.
꽃 냄새 맡은 벌처럼 나는 잉잉거리고
속도를 위반해 번져오는 벚꽃 무단 횡단해 오는 꿩 울음 속에서
구멍 난 냄비 같은 봄을 누가 땜질하고 있는지
망치소리 땅땅 논물을 흔들어 놓는데
논 가득 담긴 고요에다
첨벙첨벙 발 담그며 산자락까지 가는데
오늘은 더운 바람 되어 종일 네가 불었다.
부역 나와 무너진 물길을 고치는 버들치
버드나무는 그림자 물에 드리울 때마다
단맛 든 개울물에 흠칫 놀라는데
오늘은 더운 바람으로 불어온 네 속에서
앞발 치켜들고 갈기 휘날리며
나는 힘 좋은 종마처럼 끝없이 힝힝거린다.

달려갈 광야는 어디쯤 있는지
휘두를 칼과 말굽소리로 깨울 새벽닭은 어디에 있는지
개벽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자꾸 궁금해져 오는데
너는 나를 흔들어대며 계속 불었다.


김왕노․
1957년 포항 출생 ․1992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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