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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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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70회 작성일 08-02-29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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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


콩나물국


어머니 콩나물을 다듬으신다. 어머니 또 콩나물을 다듬으신다. 어제는 정신이 곧았던 큰애가 월급봉투를 들고 현관문 앞에서 쓰러졌다. 어머니 콩나물 대가릴 끊어뜨리신다. 어머니 콩나물을 다듬으신다. 식식거리던 둘째가 소주병을 집어던져 거울이 깨졌다. 콩나물이 어머니를 다듬으신다. 어머니 어머니를 다듬으신다. 어제는 막내가 돈도 없이 집을 뛰쳐나갔다. 어머니 주르륵 눈물 흘리신다. 눈물이 어머니를 다듬으신다. 나이보다 속 깊은 막내가 오늘밤엔 돌아올 거라 믿으신다. 어머니 눈물을 다듬으신다. 형제들이 식성은 달라도 콩나물국은 시원하게 잘 먹는다 여기신다. 콩나물국 한솥 끓여 어머니 형제들 국그릇에 가득 퍼 담아 주신다. 뿌연 돋보기 닦아내고 어머니 콩나물을 다듬으신다.



앵벌이


바람이 분다. 어느 누군가 짐을 싸 이사 가고 1204호에서 1205호로 1205호에서 1206호로 1206호에서 다시 1205호로 빈 종이 상자가 스윽스윽 아파트 복도 바닥을 끌면서 떠돌고 있다. 흐린 오후 무심코 듣고 있기에는 거북한 소리다. 현관문이 열린 듯 불쾌한데 또 한편으로는 기억에 없는 기억을 더듬어 기억해 내듯이 바닥과 마찰하는 저 소리 속에서 어느새 모종의 유쾌함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 1205호에서 1204호로 1203호로 빈 종이 상자가 스윽스윽 바닥을 쓸면서 멀어지고 잠시의 유쾌함과 그 해묵은 기억을 수거해 가는 것이다.




김 열․
2003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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