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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신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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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
역설
동해바다 물결 타고 태평세상
제왕처럼 누리다가
어쩌다 재수 없이 붙잡혀 내장까지 쏙 뽑히고
걸린 연처럼
날렵하던 열 개 다리로 바람결이나 타고 있지만
따끈한 가을 햇살
파리마저 나를 놀리고 있지만
뭣이 두려우랴
가진 것 몽땅 내주고
있는 대로 다 드러내었으니
구경하는 너희들
이마에 새겨진 태평양 큰 파랑
종손
안동 태생 큰 어머니 의성 신평 유일한 대학생에게 시집 잘 온다고 왔는데, 만주에서 춘천으로 대구로 남편 따라 평생 말없이 제사만 지내다가 늙으셨는데, 일년에 열세 번 제사를 지내며 턱을 세우고 사셨는데, 고집 센 영감님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 불평 없이 사셨는데, 대를 이을 맏아들 종손이 영 아니올시다. 제사는 나 몰라, 종손이 부담스러워 일찌감치 부산으로 도망쳤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멋 부리기 좋아하고 딴따라 짓에 정신 팔렸던 수학선생 맏아들, 학생들 수학 가르치기보다 노래하기 좋아하고 큰 아버지 유지에는 도통 관심 없었는데, 어쩌나 그것도 십사 대 종손인데
병술년 설날, 오늘은 종손 형님 집 장날,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둘째형님, 셋째형님, 사촌동생, 형수, 제수, 오촌조카 와글와글, 서울에서 대전에서 대구서 꾸역꾸역 종손 찾아 천리 길 꾸역꾸역, 피난처 부산에 다 모였는데, 이럭저럭 한 마루 가득 독신 할아버지 뿌려놓은 씨앗들이 많이도 모였는데, 차례상 차려 놓고 절을 하는 형님 형님 종손형님, 어깨 무거운 종손형님, 환갑 되면서 철 좀 드셨다는데, 큰어머니 근심이 술잔 하나하나 떡국 그릇그릇에 소복이 담겨 있는데, 오늘따라 형님 어깨가 유난히 둥글둥글한데……
신원철․
200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나무의 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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