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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이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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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비를 관람하다
1.
둥~둥~둥
물받이 홈통이 울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집이 젖는다
‘잃어버린 생각들이
저 혼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는
말이 젖는다
젖은 집 속의 나는 마른 채로
웅~웅~웅
물받이 통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런 날엔 잃어버린
시간들이 자꾸 날 오라 부른다
물홈통을 타고 내린 축축한
말들에 취해서 둥둥 떠내려간다
2.
우산살 사이를 두드리는
비의 말들이
둥~둥 떠내려간다
옥수수 잎이
종일
학대받듯 서있다
3.
비가 묻는다
저 죽은 나무… 기둥을 오르는 담쟁이 우듬지까지가
…삶입니까
저 구르는… 차바퀴의…원주율이
…삶입니까
바람 부는 날의 인상화
나뭇가지 틈새로 들락거리며
맑은 구멍이 바흐의 칸타타를 연주하고 있다
잎 사이의 빈자리로 제 몸을 밀어 넣으며
은행열매가 제 잎새보다 더 노랗게 물드는 사이
그의 입김에 가지들은 침묵하고
침묵이 무거운
새들은
빈 하늘을 지고 날아오른다
그는
흔들림만으로
저쪽 세상의 안부를 묻는다
이재순․
서울 출생․2003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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