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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외국문화탐방/박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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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삼대(第三代)’ 시인들의 새로운 시적 탐색
박남용|한국외대 강사
1. 제삼대 시인들의 등장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중국 현대시는 새로운 젊은 시인들이 나타내며 전위주의적 경향의 선봉(先鋒) 시가들이 창작되었다. 이들의 문학세계를 일컬어 문학사에서는 ‘제삼대’ ‘신생대(新生代)’ ‘선봉시가’ ‘후신시조(後新詩潮)’ ‘후굴기(後掘起)’ ‘후몽롱시(後朦朧詩)’ 등으로 명칭하며 197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앞 세대의 몽롱시파와는 다른 문학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부르짖으며 중국식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가운데 문학 역시 상품경제와의 관련성 속에서 새로운 문학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독자와 시장을 연결해 주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일환 속에서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들이 대도시를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문학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별로 시장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시인 독자들 위주로 극소수의 시집만이 유통되며 읽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큰 서점들을 돌아보아도 시집을 구한다는 것 자체로 불가능할 정도로 소설에 비하면 시는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인들의 시창작 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들 나름대로 동인이나 문학단체를 결성하고 대학가의 시 연구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문학현실을 이해하는 데 제삼대 시인들의 시세계는 상당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제삼대 시인들의 등장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당대의 정치 사회의 변화 속에서 이 시인들의 등장은 필연적인 현상일까 우연적인 현상일까? 1980년대 중반 제삼대 시인들의 문학세계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1990년대 이후 오늘날 중국 시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 시기의 출신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앞 세대와 뒤 세대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직 2000년 이후의 중국 시세계에 대한 정보나 연구가 미약한 상황 속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제삼대 시인들의 시세계를 새롭게 고찰해 보며 1990년대 이후의 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더욱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제삼대 시인들과 그들의 시세계의 주요한 특징을 검토하며 이들 시세계가 갖는 문학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마오쩌둥이 죽고 새롭게 덩샤오핑이 등장한 후, 개혁․개방 정책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른바 마오쩌둥식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국식 사회주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덩샤오핑식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라는 실용주의 노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실용주의 노선 속에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개혁을 실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다시 받아들였다. 5․4신문화운동 때처럼 서구문화의 자유로운 수용이 이루어지며 제2의 신문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하며 문학계에서 소설 쪽에서 상흔소설(傷痕小說), 반사소설(反思小說), 심근소설(尋根小說), 선봉소설(先鋒小說) 등이 등장하며 문화대혁명의 기억과 상처들을 치유하는 문학의 흐름이 나타났으며, 시 쪽에는 베이다오(北島)나 수팅(舒婷) 같은 몽롱시파(朦朧詩派) 등장하여 시를 통한 중국의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며 중국 문학은 새로운 실험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소설이나 시 쪽에서 전위주의 문학들이 등장하며 역사와 자아와 대해 새로운 시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에 대한 강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소설 쪽에서는 위화(余華)나 쑤통(蘇童) 같은 이들이 등장하였고 시 쪽에서는 이른바 ‘제삼대’라는 시인군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제삼대 시인들이 등장한 시문학적 배경으로는 먼저 몽롱시의 퇴조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베이다오나 수팅 등에 의해 전개된 몽롱시 운동이 80년대 초 몽롱시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중국 시에 대한 새로운 시가혁신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몽롱시 운동은 문화대혁명을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예술탐색에 의해 대체되었으며, 역사와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신들의 시적 모티브로 삼았던 몽롱시와는 다르게 개인의 자아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몽롱시에 대한 모방작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한편으로 몽롱시인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시적 욕구들이 나타났다. 제삼대 시인들은 기본적으로 ‘베이다오와 수팅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내걸며 앞 세대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두 번째로 제삼대 시인들은 몽롱시가 주로 베이징(北京)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것과 다르게, 난징(南京)․쓰촨(四川)․상하이(上海)․윈난(雲南) 등의 외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학단체를 결성하여 간행물을 출판하였다. 난징을 중심으로 하는 ‘그들문학사(他們文學社)’, 쓰촨을 중심으로 한 ‘비비주의(非非主義)’, 그리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해상시군(海上詩群)’ 등 수많은 문학단체들이 형성되어 그들 나름의 문학잡지를 발간하며 왕성한 문학활동을 벌여나갔다. 세 번째로 무엇보다도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며 작가와 시, 작가와 현실과의 관계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이를테면 중국 현대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앞 세대의 몽롱시인들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점이다. 이들이 접한 시대현실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뒤로 하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시대현실 속에서 무엇보다도 인류 보편의 문제들인 전쟁의 위협, 생태계의 파괴, 과소비 관념과 물질 요구의 팽창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몽롱시인들과 같은 순교자적이고 영웅주의적 엘리트층의 전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개조하는 수단으로써 시를 강조하며 시의 힘과 인격의 힘을 강조하였다.
2. ‘그들문학사(他們文學社)’ 시인들:역사의 영웅에서 개인의 일상으로
1980년대 제삼대 시인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가 단체는 ‘그들문학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체는 1984년 난징에서 성립된 비교적 규모나 영향력이 가장 큰 단체이며, 1986년 쓰촨에서 형성된 ‘비비주의(非非主義)’ 시사(詩社)와 함께 상당히 중요한 단체이다. ‘그들문학사’는 ≪그들(他們)≫이란 문학잡지를 1995년까지 9기를 발행하였으며, 주로 난징의 한둥(韓東), 쿤밍(昆明)의 위젠(于堅), 푸저우(福州)의 뤼더안(呂德安)…… 등의 시인들이 활약하였고, 소설가로는 쑤통 등이 참여하였다. 이 단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는 한둥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그들(他們)’ 시인의 예술적 주장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즉 ‘시가 자체로 돌아가자.’ ‘시인이 책임져야 할 것은 심미적인 것일 뿐이다.’ ‘개인으로 돌아가자.’ ‘생명의 형식 또는 방식이 모든 예술(시가)가 근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로 볼 때 한둥이 주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인 개인의 자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과 예술 자체에 대한 심미적 경험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단체에서 중시한 것은 일상생활에 대한 경험과 장면을 강조하는 가운데 시가 언어의 구어화와 평민화에 대한 강조였다.
이 단체에서 1980년대 초기 몽롱시의 창작과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과 시를 뽑으라면 단연 한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둥은 1961년 난징에서 출생하였으며, 1982년 산둥대학 철학과를 졸업했고, 난징재무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84년 ‘그들문학사’를 세울 것을 발기하였으며, ≪그들(他們)≫ 시간을 주편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그대는 대해를 본 적이 있지(你見過大海)」, 「대안탑과 관련하여(有關大雁塔)」, 「온유한 부분(溫柔的部分)」, 「그대의 손(你的手)」, 「산촌 사람(山民)」 등이 있으며, 이들 시에서 젊은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시각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둥의 대표작인 「대안탑과 관련하여」 시 전문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대안탑과 관련하여
우리는 또 무엇들을 알 수 있을까
먼 곳에서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 올라가서
영웅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며
어떤 이는 또 찾아와서 두 번
또는 여러 번 영웅이 되고자 한다
뜻을 얻지 못한 사람들
복을 빌고자 하는 사람들
전부 올라가서
한번 영웅이 된 후
내려와서
이 큰거리로 들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용기 있는 사람은 밑으로 뛰어내리며
계단 위에는 붉은 꽃이 피어나니
정말 영웅이 되었다
당대의 영웅이
대안탑과 관련하여
우리는 또 무엇들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올라가서
주위의 풍경을 바라본 후
다시 내려온다
한둥의 이 작품은 제삼대 시인들의 ‘헌장’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시안(西安)에 있는 대안탑은 많은 시인들이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대상이기도 한데, 시인들은 전통문화와 현실과의 관계를 노래하며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격정적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한둥의 시 속에서 대안탑은 어떤 문화적인 함의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개인적 느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비교적 평담하면서도 직접적인 언어를 드러내며 표층적인 구조를 통하여 풍자적인 심층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대안탑을 올라가 영웅이 되었지만 탑을 내려와 눈 깜짝할 사이 거리 속으로 파묻혀 사라지는 일상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시야 속에 지난 몽롱시 세대의 영웅주의적인 모습은 없다.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감으로 개인의 무딘 감정생활에 빠져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탑을 올라갔다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본 후 다시 내려오며 생명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것을 볼 뿐이다. 결코 대안탑과 관련하여 어떤 역사적인 거대한 일을 연상시키고 있지 않다. 한둥이 대안탑을 노래하는 방식은 1980년 몽롱시인 양롄(楊煉)이 격정적으로 노래한 장시 「대안탑」과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둥의 시가 일상생활을 제재로 한 시를 주로 제창함으로써 무엇보다 ‘개인화’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시적 이미지는 영혼이나 생명에서 진지한 사색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시인은 위젠(于堅)이다. 그는 1954년 쿤밍에서 출생하였으며, 윈난대학 중문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들(他們)≫ 잡지를 창간한 사람 중의 한 명으로, 80년대 시문학 조류가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다. 그는 일상생활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며, 구어화된 언어로 사람들의 복잡하고 은밀한 심정을 잘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유방식 속에는 미국의 시인 프루스트의 흔적도 들어 있으며, 주로 윈난(雲南)의 고원, 강물, 도시 세태 풍속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며 자신만의 독특한 서술풍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시들로는 「고산(高山)」, 「아버지께 감사드리며(感謝父親)」, 「작품100호(作品100號)」, 「제로파일(0檔案)」 등의 작품들이 있다. 이중에서 「고산」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산이 그림자를 세상에 비추니
가장 큰 남자도 왜소해 보인다
고산 속에서 사람들은 성실해야 한다
그가 영웅들 앞을 지나가는 것을 사람들은 느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힘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성실 새까만 바위처럼
매 한 마리 침엽의 어린 나무
이처럼 그대는 고산 속에서 살 수 있고
산꼭대기 위에서 걸어갈 수 있다
폭풍우 홍수와 번개
모두 고산 속의 불후의 힘이다
그것들은 고산을 무너트리고
고산도 그것들을 무너트린다
그들은 고산을 창조하고
고산도 그들을 창조한다
고산 위에서 사람들은 고독하다
평지 위에 있어야만 밥 짓는 연기 가득하다
고산 속에서 만일 수병(水兵)의 인내심이 있다면
파도는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항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는 사이에
그대는 산꼭대기로 올라섰고
또는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평생 지평선을 볼 수 없다
먼 곳을 보아야 한다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야만 한다
하지만 산봉우리에서 그대가 본 것은 여전히 산봉우리이고
무수히 더 높은 산봉우리
그대는 침묵한다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고
윈난(雲南)에는 평범한 남녀가 많이 있다
일생중 웅장한 산봉리를 가본 적 있다
마지막에는 그 돌들 속에 묻혀 있다
「고산」이란 시의 전문이다. 이 시는 작가가 자란 윈난 지역의 자연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사람들은 이 시 속에서 “인간과 대자연이 침묵의 교류가 가득하고,” “여기에는 비굴함이 없으며 깊은 자랑스러움만 있다.”고 하였다. 대자연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작자의 ‘현대적 의미’와 중첩된 ‘음악감’이 있고, 그것들은 대부분 단어의 교묘한 조합을 통하여 얻어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윈난의 평범한 남녀를 이야기하며 높은 고산을 올라볼 것이며 마지막에는 그 돌들 속에 묻히리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대한 시적 어조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영웅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는 고산의 대자연의 풍경을 보여주며 평지 위의 밥 짓는 연기를 더 그리워하는 평범한 일상을 대조시키고 있다. 높은 고산 위에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평생을 산봉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고산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과 자연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비비주의(非非主義)’ 시사:시적 언어의 일상성 강조
‘비비주의’ 시사도 제삼대 시를 논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가 단체의 하나이다. 이들은 1986년 여름 ≪비비(非非)≫라는 민간 시잡지를 발행 하기 전에, 저우룬여우(周倫佑), 란마(藍馬), 양리(楊黎), 상중민(尙仲敏) 등이 1984년에 ≪이리들(狼們)≫, 1985년에 ≪현대시 내부 교류 자료≫ 등의 잡지를 펴낸 적이 있다. 이 단체의 이름에서 말하는 ‘非非’ 의 의미는 중국 시단에서의 ‘이단’으로, ‘비숭고’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은 ‘非非’ 시에 대한 형상적인 명명이다. 그것은 곧 기성문화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류창조를 탐구하는 본원을 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의식, 감각, 언어를 구속하는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시를 수단으로 삼아 인간을 ‘문화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유방식 속에는 문화와 언어가 ‘분열’된 상태와 더불어 좌익문화나 후기 구조주의적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들 단체의 창작은 프랑스 신소설의 기교를 흡수하고 있는 예를 들면 양리의 차가운 풍경(冷風景), 높은 곳(高處), 저우룬여우의 자유칼럼(自由方塊) 등이다. 비비주의는 시가이론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이자 정신현상이요 현실정서와 태도를 표현하는 특정한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잡지 위에 발표한 중요한 시인들로 양샤오밍(梁曉明), 위강(余剛), 리우샹(劉翔), 하이난(海南), 지무랑꺼(吉木狼格) 등의 시인들이 있다.
저우룬여우는 1952년 사천 사람으로 베이다오와 동시대 사람이지만 제삼대 시로 이름을 날린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큰새를 상상하며(想像大鳥)」가 있는데, “새는 날아야 하는 것/청조(靑鳥)와 남조(藍鳥) 가 아니다. 큰새(大鳥)이다/태산 같은 두터운 깃털이/상상 속에서 분명하게 바싹 접근한다”라며 허구적인 大鳥를 등장하며 실재의 중량감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호탕한 기세가 엿보이며, “아주 아름답고, 아주 찬란한” 신서하고 장엄한 미감을 갖고 있는 사물로서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大鳥는 갑자기 우리를 향해 날아오며/우리의 모든 눈은 멀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실명의 고통을 감수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시적 의미가 태어나고 있다. 그는 비교적 제삼대 시인치고는 조금 더 오랜 인생 역정을 지니고 있기에 시도 비교적 복잡하고 독특하다. 그는 시 속에 숭고와 가치를 표현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그 자신은 시의 가치를 아주 중시하였으며, 그는 비이성을 추구하였지만 그의 사유방식은 비정상적인 이성이었다. 그가 大鳥의 아름다움을 상상했음에도 大鳥의 빛에 눈을 찔렸던 것이다. 그의 장시 「자유칼럼」에서는 “그는 꽃길로 심취해 들어갔고/나는 차를 끓이는데 열중하고/너는 산수에 뜻이 있고/꽃을 꽂는 것은 너인데/차를 품평하는 것은 그이며/나는 산책하러 가며/편한대로 본다/산을 보고/물을 본다”라며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 또한 “너는 현대표준에 따라 다시 자신을 설계하며/종처럼 앉아/한밤중 종소리가 여객선까지 울리며/너는 배 위에 없고/보광사(寶光寺)에서 수를 셀 수 없는 나한(羅漢)을 센다”라며 아주 기이한 미학적 추구를 보여주며 마치 단어가 세상의 주인이 될 것 같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신뢰가 문화적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다.
양리는 1962년생으로 비비주의 시파의 중요한 한 사람이다. 그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냉담한 서술과 사물에 접근하는 창작에 있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에 접근하는 일종의 ‘정관(靜觀)의 태도’를 구현하는 시 「차가운 풍경(冷風景)」이란 시를 창작하였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알랭 로브그리예(Robbe-Grillet)에게 바치는 시인데 시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차가운 풍경을 전해주는 너무나 객관적이고 고요한 시이다. 프랑스 루보로망의 영향 아래 영도의 실험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이미 자신의 순수한 그림자를 변화시켰다.”라는 현실상황을 언급하며 냉정한 언어와 실존상황과 인간의 활동을 기계적이고 외재적인 묘사를 가하고 있다. “이 거리는 도시의 중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어두운 밤에 떨어져 내렸을 때/이 거리는 이상히도 조용했다// ……//여기는 아주 길고 긴 거리/양 옆의 모든 집들은/모두 죽은 듯이 닫혀 있는데/여기는 아주 조용한 거리”라고 객관적이고 무목적적이고 정지된 언어의 서술을 보이고 있다. 마치 죽은 듯한 조용한 거리를 비추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속의 세계인지 모호하게 그대로 보여주는데 바로 그것 자체에 시로서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시창작 서술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시로 「사하라 사막의 세 장의 종이카드(撒哈拉沙漠上的三張紙牌)」가 있다.
한 장은 하트K
다른 두 장은
사막 위에 빗장 걸려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세 장의 포카는 아주 새 것인데
그것들의 간격이 얼마나 먼지 모르지만
영원히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갑자기 보인다
마치 아주 편한 것처럼
그곳에서 잃어버렸지만
자세히 관찰하며
심혈을 기울여 안배하고
한 장은 약간 가깝고
한 장은 약간 멀고
다른 한 장은 당연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다른 한 장은 하트K
사하라 사막은
텅 비었어도 부드럽다
햇빛이 얼마나 사람을 자극하는지
얼마나 비추는지
세 장의 포카는 태양 아래에서
조용히 반사되어 나온다
몇 개의 아주 작은
빛의 고리가
이 시는 사하라 사막 속에 있는 세 장의 포카 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다만 시의 언어들이 간결하고 명료하여 지극히 평범한 사물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사하라 사막이라는 낯선 풍경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 황폐화를 노래하며 공허하면서도 부드러운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태양 아래 조용히 반사되어 나오는 몇 개의 작은 빛은 고리를 통해 신비한 느낌마저 준다. 그는 또한 「시지푸스 신화(西西弗神話)」 속에서 “시 한 편을 쓰고 싶다/그것의 이름을/시지푸스 신화라 부른다/하지만 나는 언제나/첫째 구와 뒤쪽의 시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나는 여기까지 쓰며/나는 희망한다/그대를 본 후/시지푸스 신화란/이 아름다운 이름을/기억할 수 있기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 역시 시지푸스 신화에 대한 시를 쓰고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문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는 시지푸스라는 깊이 있는 함의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부르며 의미를 풀고 이미지를 환원하며 영도의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비비’의 창작이론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해상(海上) 시인 루이민(陸憶敏)의 새로운 탐색
제삼대 시인들의 시세계는 이밖에도 ‘해상시군’이나 ‘여성주의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예술적 창작 개성과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인 특징을 잘 결합시키고 있다. 시대 변혁의 흐름에 부응하여 반전통적이고 개성적 표현을 특별히 강조하며 80년대 시가 창작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해상 시인으로 여성 시인 루이민을 들 수 있다.
루이민은 1962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1984년에 상하이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그녀는 20세기 말 약 20년 동안 비록 시집을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시의 창작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며 새로운 탐색을 벌여온 중요한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시는 간결하고 조용하고 우아한 문체로써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녀 시의 풍격 형성은 그녀와 세계의 관계, 그리고 언어에 대한 태도에 기초하고 있다. “자아의 조우와 운명을 자주 연출되는 일종의 역사로 간주되었지만,” "제어된 듯한 제한된 계승은 존엄에 대한 옹호로 간주되었다." 또한 그녀 시에서는 죽음에 관한 시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1980년대 중반 죽음과 관련한 시를 썼는데 그것을 이른바 ‘여름날의 우울과 슬픔(夏日憂傷)’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녀는 「꿈(夢)」에서 “나는 죽음 뒤에 고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그곳의 땅이 마르고/해마다 햇빛이 있어도/내 영혼의 호흡을 방해하는/날아다니는 벌레도 없으며/나의 죽음 가운데로 죽으러 올/사람도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시는 대부분 개인의 일상에서 제재를 취하며 개인의 생명과 관련 있는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였다. 이후 그녀는 「실내 1988(室內 1988)」 연작시들을 썼으며 수량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 중에서는 「미국여성잡지(美國婦女雜誌)」라는 작품이 제일 유명하다.
이 창문에서 바라보면
당신은 알 거예요, 모든 것 다 있다는 것을
꽃 없는 나무 아래, 당신은 좀 바라보세요
저 생동한 사람들을
변발을 오른쪽 살쩍에 두르고
머리카락이 얼굴뺨을 어지러이 뒤덮고
눈빛은 경직되거나, 비웃는 여자
당신은 그 사람들을 알아보겠지요, 한 사람 한 사람
누가 나였지요
누가 나의 하루였고, 가을날였는지
누가 나의 봄 하나와 봄이 몇 개였는지
누가? 누가 나였지요
우리는 불시에 먼지에 치우치거나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고
사전을 끼고, 이 죽음이란 페이지를 넘기면
우리는 이 단어를 오려붙이고, 이 글자를 자수 놓는다
그것은 아홉 필획을 분해한다
사람들이 바쁜 것을 보며
몇 세기를 보았다
그들은 우리가 잘한다고, 용감하다고, 침착하다고 과장했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당신은 저 사람들은 알아보고
누가 나였었지
나는 당신 옆에 서서
나쁜 짓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루이민의 시는 그렇게 낯선 이미지나 시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며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베란다, 먼지, 식탁, 화원, 담장, 지붕 등에서 시적 제재를 취하고 있다. 위의 작품은 전 지구적 차원으로 시적 시공간을 확대하며 시인의 생명체험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여성잡지'는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창틀과도 같은 것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행위는 또 다른 세계, 즉 생명과 생존형태를 체험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하여 삶과 생명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1980년대 중반 제삼대 시인들의 시세계를 한둥, 위젠, 저우룬여우, 양리, 루이민 등 몇몇 시인의 대표시를 가지고 대략적이나마 살펴보았다. 제삼대 시인들은 기본적으로 몽롱시파의 베이다오와 수팅을 타도하자라는 기치 아래 그들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성찰적인 시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시적 자아를 노래하며 일상적 보편 세계에 대한 관심을 더욱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비교적 후세대에 속하며 영웅적이고 귀족적인 몽롱시인들에 대한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시적 욕망 속에 앞 세대 몽롱시를 회의하고 부정하고 도전하는 시의 길을 걸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이고 반영웅적이고 반숭고적인 가치 관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반이미적이고 반우아적인 예술 관념을 그들의 시가의 기본적인 가치로 삼았던 것이다. 제삼대 시인들의 이러한 시적 노력을 통한 새로운 시적 성과들은 중국 당대 시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변화하는 중국 현실을 맞이하여 이들 젊은 세대들이 선택한 새로운 시의 길을 검토하며 우리 시단 역시 비슷한 상황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 최근 우리 문단에서 젊은 ‘미래파’ 시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젊은 시인들이 창작하는 새로운 시적 경향의 시들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각에서 멀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움을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적 욕망이 장차 어떤 성과를 맺을지 좀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시단을 이끌고 있는 제삼대 시인들이 지금 어떠한 시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지 더 검토해 본다면 앞으로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남용․
1968년 충북 옥천 출생
․1998년 ≪시세계≫로 등단
․한국외대 중국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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