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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단편/권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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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55회 작성일 08-02-29 02:31

본문

|신작단편|


희망가

권채운


그는 오늘따라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진다. 오른쪽 어깨가 불쑥 올라가면서 덩달아 팔까지 추켜올려지고, 온몸을 한바탕 흔들었다 놓은 다음에야 가까스로 한 발짝이 떼어진다. 나무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까지 가는데도 한나절이 걸릴 것 같다.
“에이, 아침부터 사람을 삶아 먹으려구 드네.”
그는 하늘에 대고 눈살을 찌푸리고 나서도 속이 풀리지 않아 연신 툴툴댄다.
“어째 너는 눈깔만 바라지면 이 에미 속을 긁냐? 요 배라먹다가 개골창에 대가리 처박고 뒈질 놈.”
아침마다 어머니의 욕지거리를 해장술 대신 한 사발 들이켜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욕지거리는 들을 때마다 복장을 뒤집는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귀신은 뭐 하나 모르겠어. 어디 휴가라도 갔나. 저 늙은이 잡아가지 않구.
“야 이놈아. 언제까지 이 늙은 에미가 널 먹여 살릴 것 같으냐. 이놈아, 어여 따라 나서지 못혀?”
어머니는 어떡하든지 그를 좌판에 앉혀 놓고 싶어 안달이지만 어머니하고 나란히 앉아서 달려드는 파리나 쫓고 있을 생각을 하면 속에서 불통이 터진다. 그는 들은 척도 않고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이놈아, 밥이나 처먹고 자빠졌든지 혀. 나는 한약방에 가서 침이라도 맞아야 할 모양이니께. 저놈은 지 에미가 죽어나자빠져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놈이여. 에이 불상놈 같으니라구.”
“잘 아네.”
그는 돌아누우며 한마디 했다.
장현국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도 어머니는 그를 꼭 이놈이라고 부르고 형은 저 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는 평생 동안 그를 절뚝발이로 낳아놓은 어머니를 원망하는 힘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는 그에게 어머니는 되레 네놈이 내 발목을 잡은 거라며 길길이 뛰곤 했다. 어머니는 입에 악담을 달고 살았지만 말과는 딴판으로 시장 한 귀퉁이에 비집고 앉아 진종일 더덕껍질을 벗기고, 도라지 껍질을 벗기느라고 지문이 뭉개지도록 돈을 모아 그에게 열세 평짜리 아파트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그에게는 차례가 닿지 않은 복이었던지 이태 전에 어처구니없이 아파트를 날렸다. 남들처럼 장가들어 알콩달콩 살아보겠다는 가당찮은 소망의 결과였다. 아파트가 남의 손으로 넘어간 서너 달 뒤에 재건축 승인이 떨어져서 아파트 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뛰어 올랐다. 그와 어머니는 밤마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싸움을 벌인다. 한바탕 굿을 벌이지 않고는 오억이니 육억이니 하는 숫자놀음을 가만히 앉아서 보아줄 수가 없다. 어머니가 문을 메어 닫고 나가자 그는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왔던 것이다.
102호의 이삿짐이 탑차에 차곡차곡 들어간다. 탑차에 실리지 못한 장롱과 책상, 세탁기, 냉장고가 쫓겨난 아이처럼 한쪽에 주춤주춤 서있다. 문짝마다 ‘처리’라는 붉은 글씨가 씌어진 채 몇날 며칠이고 비를 맞으며 눈을 거슬리게 할 것이 틀림없다.
“202호 총각, 잘 있수. 총각네는 언제 이사 갈 거유?”
총각 좋아하네. 저놈의 총각소리는 이제 신물이 난다. 아랫집 여자와 눈이 마주쳐서 할 수 없이 허리를 굽혀 잘 가라는 인사를 했더니 여자는 예의 그 측은지심이 가득한 눈길로 작별을 했다. 어디 가까운 데로 이사를 가는지 이삿짐 차가 떠난 뒤에 아랫집 여자는 손가방만을 든 채 할랑할랑 걸어갔다. 저만치 가다가 한번 뒤돌아보는 걸 보니까 좀 서운한 모양이다. 아랫집마저 이사를 가니 통로에는 열 가구 중 다섯 가구만 남게 되었다. 그는 버려진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지저분한데다가 냉장고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칠칠치 못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어떻게 저렇게 더러운 데다 음식을 넣어두고 살았을까.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이사하면서 내다버린 물건들이 지천이었다. 개중에는 쓸만한 물건도 더러 있었지만 어떻게 입때껏 사용했을까 싶은 것이 태반이었다. 아랫집에는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하기는 아랫집뿐 아니라 다른 집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내다버린 구질구질한 세간을 보니 그 집 형편도 짐작이 간다.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어디 반 지하로 월세를 얻어 나간다는 것 같았다. 허섭스레기 같은 세간을 죄다 내다버린 걸 보니 주제에 세간은 새로 장만을 하는 모양이다. 허긴 세간이라도 새 것을 들여 놓고 싶겠지. 그는 공연히 부아가 나서 주먹으로 장롱 문짝을 한번 쳐본다. 아구구…… 절로 비명이 나온다. 괜한 짓을 했다.
“양파가 왔어요. 감자가 왔어요.”
행상트럭의 마이크 소리가 적막하던 단지를 쩌렁쩌렁 울린다. 거반 빈 아파트단지인 줄도 모르고 들어온 걸 보니까 저 행상도 어지간히 정보에 어두운 인간인가보다. 저 멍청한 인간에게 충고나 한마디 해야겠다.
그가 지척거리며 트럭으로 다가가자 장사치 같지도 않은 남자가 얼른 트럭에서 내린다.
“양파 한 자루에 얼마요?”
“8천 원입니다.”
“되게 비싸네.”
“비싸다니요. 만져봐요, 단단해요. 최상품입니다. 이거 한 자루 들여놓으면 김장할 때까지 끄떡없어요. 한 자루 들여놓으세요.”
“감자는 한 상자에 얼마요?”
“2만 원입니다.”
“에게, 요렇게 자디잔 감자가 이만 원이라니? 이 시들시들한 배추는 한 단에 얼마요?”
“아니, 이 양반이? 살 거요 말 거요?”
“비싸서 어디 사겠수?”
“몇 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양반이 그래 이까짓 야채 값을 갖고 트집을 잡우?”
“몇 억이라니? 당신 북한에서 왔어? 여기 사는 사람치고 제집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다 헛것들이야. 거반 남의 집 사는 신세들이라구.”
“왜 열을 내슈? 안 사면 말 것이지.”
트럭행상이 중얼거리며 트럭에 올라타고 가버린다.
빌어먹을, 그 놈 성질 한번 좋네. 한바탕 싸움질이라도 하고 나면 속이 풀릴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아침마다 고가사다리차의 소음에 잠이 깬다. 앞집도 비었고 윗집도 비었다. 빈집의 현관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철거라고 써 놓았다. 현관문을 열면 그 붉은 글씨가 확 달려들어서 섬뜩하다. 재건축조합에서 아파트단지의 정문에다 걸어놓았던 집채만 한 플래카드를 엊그제 바꿔 달아 놓았다. 연말까지 이주를 해서 조합원의 재산 손실을 막자는 조심스런 문구였던 게 시월 말까지 이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전세 기한을 넘긴 지 석 달이나 지났다며 관리를 맡고 있는 부동산 중개인은 아침저녁으로 집을 비우라고 볶아친다. 그 작자의 말을 빌면 집 주인은 이 동네에만도 아파트를 두 채나 갖고 있다는 거다. 치부에 능한 집 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부동산 중개인만 내세운다. 직접 나섰다가는 하다못해 이사 비용이라도 뜯길 것 같으니까 아예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집을 비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집의 전세 돈으로는 사글세방의 보증금이나 근근이 될 것이다. 4단지를 철거할 때는 집을 비워주지 않고 끝까지 버텼던 사람이 7천만 원을 챙겼다는 소문이고, 3단지를 철거할 때도 8천만 원을 챙겼다는 소문이다. 집 주인들이야 속이 쓰리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몇 년 만에 몇억씩을 손에 쥐게 된 그들에게 그 중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게 무에 그리 나쁠 것인가. 그는 십 년 넘게 노점을 했지만 억커녕 천이라는 숫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몇천이라도 우려내려면 끌어낼 때까지 버텨보는 길밖에 없다. 돈이 생기면 그녀를 찾아 나서야지.
새마을 시장에 과일 좌판을 벌여놓고 있지만 요즘 들어 그는 시장에 얼씬도 하지 않아 늙어 꼬부라진 어머니가 좌판을 지킨다. 올 봄까지 2, 3, 4단지가 모두 이주해서 매상도 형편없다.
방송에서 십 년 만의 더위라고 수선을 떨어서인지 날씨가 더 무더운 것 같다. 나무그늘도 시원하지 않다. 그래도 답답한 집안보다는 낫다. 매미는 악착스레 울어 젖힌다. 저놈의 매미도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 더 그악스레 우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기껏 짝짓기해서 나무 아래에다 알을 낳아 놓아도, 굼벵이로 육칠 년을 땅속에서 버텼어도 말짱 도루묵인 걸 저 미물은 알 턱이 없을 것이다.

2단지를 철거하기 시작하면서 철거반은 먼저 5층 아파트보다 높이 솟은 나무부터 손을 댔다. 더러는 베어내고 더러는 뿌리째 뽑아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며, 미끈하게 죽죽 뻗었던 메타세쿼이아, 봄마다 꽃비를 흩뿌리던 왕벚나무, 노란 산수유, 젖가슴같이 꽃봉오리가 봉긋하던 백목련, 위풍당당했던 느티나무 등이 어디론가 실려 갔다. 그까짓 낡아빠진 아파트야 허물어버리든 말든 하나도 아까울 게 없었지만 청청하던 나무는 내 것이라도 되는 듯이 아까웠다. 그는 나무가 가득 실린 트럭이 단지를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배웅했다. 나무를 뽑아 나를 때는 2단지의 정문을 폐쇄하지 않아서 가끔씩 2단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아파트를 철거하면서부터는 어찌나 꼼꼼히 울타리를 둘렀는지 들여다볼 틈이라고는 없었다. 공사 차량은 한강 쪽의 후문으로만 출입하는 모양이었다. 높직이 솟은 울타리는 그녀와 그의 사이를 완벽하게 가로막아 놓은 듯 위압적이었다.
“휴가 받았수? 젊은 사람이 바다 같은 데루 놀러가지 나무그늘에서 아까운 휴가를 보내나 그래.”
평상의 저쪽 끝에 앉아서 아침부터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뚱히 바라보던 노파가 말을 건넨다. 처음 보는 늙은이다. 자식 집에 다니러온 늙은인가 보다. 아니면 축구공처럼 이집 저집으로 돌림을 당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이십 년 넘게 살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워낙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해서 이 동네 늙은이치고 그를 모르는 늙은이는 없다. 그는 늙은이라면 딱 질색이다. 국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지 말을 붙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는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버린다. 저 늙은이도 분명 그의 걷는 모습에 동정어린 시선을 보낼 것이다. 이제는 늙은이들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눈여겨보지 않고 아이들도 놀리거나 흉내 내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오른쪽 다리를 한바탕 휘둘렀다가 놓으면서 걸을 수 있었는데 나이 들수록 더 걸음걸이가 엉망진창이다. 이제는 지긋지긋하게 뒤를 따라다니며 놀려먹던 개구쟁이들이 그립기까지 하다. 그는 늘 양손에 돌멩이를 쥐고 다녔다. 슬며시 돌아서서 머리통 하나를 정조준해서 던지면 뒤따라오던 놈들은 단번에 흩어졌지만 곧바로 모여서는 뒤따라왔다. 팔 힘 또한 형편없어서 그가 던진 돌멩이는 늘 빗나갔다. 쩔뚝쩔뚝 쩔뚝발이, 하늘도 기우뚱 땅도 기우뚱. 가락을 지어서 부르는 노랫소리는 더 커지게 마련이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2단지 아파트를 헐어내기 시작했다. 3단지는 소리 소문 없이 헐어내어 어느 날 문득 휑한 운동장이 되어 있었다. 1단지와 나란히 위치한 2단지를 철거하는 소리는 생각보다 대단찮은 소음이었지만 그의 가슴을 내려앉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쿵, 우루루루루.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기를 쓰고 내다보면 보얀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고, 바깥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단단히 두른 울타리 위로 솟아 있던 아파트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냥 높아진 하늘만 보였다. 우웅 우웅, 드르륵 드르륵, 쿵, 철커덕. 무너뜨린 시멘트 잔해를 치우는 기계소리는 시름시름 앓는 아이의 칭얼거림처럼 귓가에 달라붙어 하루 종일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오늘 아침에는 239동이 사라졌다. 239동, 그가 사는 1단지보다 239동이 있던 2단지가 철거되는 게 더 그의 심사를 건드리는 건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몸피는 너무나 작아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지만 단호한 시선은 서른을 훌쩍 넘겼을 것 같다가도 상그레 웃을 때는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 같았다. 가느다란 팔에 힘이라곤 없는지 늘 자그마한 배낭을 얼러 메고 다녔고, 과일을 사도 꼭 천 원어치만 샀다. 그는 그녀가 모르게 꼭 한 개를 더 넣어주곤 했다.
그녀는 그 가냘픈 몸으로도 직장을 다니는지 꼭 퇴근시간 무렵에 그의 좌판 앞을 지나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도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처럼 조심스럽고 위태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잡아 그녀의 집을 알아내는 데는 꼬박 일 주일이 걸렸다. 횡단보도에서 미리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도 안에서 기다렸다가 출구를 알아내고, 그는 조금씩 앞서 가서 기다렸다가 그녀가 가는 방향을 알아냈다. 무얼 어쩌자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좌판에 앉아 있거나 가로수에 기대 서 있으면 절뚝발이인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한창 바쁠 퇴근 시간 무렵이면 좌판을 버려두고 그녀가 돌아오는 길목을 지켰다. 그녀는 늘 힘에 겨워보였다. 고개를 갸우뚱 하고 앞뒤 굽이 높은 신을 신은 발을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그 가녀린 입에서 단내가 폴폴 나는 듯도 싶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천원에 사과가 세 개잖아요? 집에 와서 보니까 네 개던데요?”
그녀가 사과 한 알을 내밀었다.
“그럴 리가요. 많은 것도 아니고 딱 세 개 넣었습니다.”
“에이, 아저씨. 열까지도 못 세면서 어떻게 장사하세요?. 이렇게 장사하면 뭐 먹고 살아요?”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생긋 웃는 그녀의 천진스런 모습에 그는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그예 사과 한 알을 놓고 갔다. 그는 그녀가 놓고 간 사과 한 알을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작년 여름, 12월 말까지 이주하라는 플래카드가 2단지 정문에 걸린 날부터 그는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올봄까지도 그의 좌판에서 과일을 샀다. 그가 봉지에 담기 전에 자기가 천 원어치를 꼭꼭 세어 봉지에 담아들었다. 그리고는 상긋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좌판으로 다가오는 발짝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좌판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발짝 소리 중에서 약간 끄는 듯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그녀의 발짝 소리는 하도 가벼워서 여간 집중하지 않고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발짝 소리는 그의 좌판 앞에 멈추기도 하고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놓칠세라 조바심을 했다. 언제 이사 가세요? 손님들에게 의례적인 인사말로 건네는 그 말이 그녀 앞에서는 입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 말을 하는 날에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입에서 내일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벚꽃이 한창일 무렵에 몸살기가 있어서 한 열흘 꼼짝 못하고 앓고 나왔더니 벚꽃은 간곳없고 라일락이 향기를 뿜고 있었다. 그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허겁지겁 그녀의 집으로 가 보았다. 그녀의 집 창문에도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사 간 사람들은 살던 동네를 못 잊어 하며 한동안 새마을 시장으로 장을 보러 왔다. 그렇지만 장보기가 여기만 한 데가 없다고 하면서도 차츰차츰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는 도통 좌판에 앉아 있을 기력이 없다. 어머니의 등쌀에 한나절 앉아 있어 보지만 귀에는 온통 그녀의 발짝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야, 이놈아. 정신을 워따 빼놓구 앉았어? 아적까지 만 원어치도 못 팔은 겨? 등짝을 냅다 후려치는 어머니의 손길에 움찔 눈을 뜨면 정신이 더욱 몽롱해지는 것이었다.
방싯방싯 웃으면 오금이 저리던 여자에게 함빡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의 좌판 건너편에 자리한 화장품가게 점원이었다. 그의 다리가 되어주겠다던 여자에게 홀려서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을 다 털렸다. 뿐만 아니라 철썩같이 결혼 약속을 하는 바람에 보증까지 서주었고 종당에는 아파트가 날아갔다. 주제에 언감생심 여자라니…… 다시는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괴팍해지는 성질이 소문나서인지 빈털터리라고 소문나서인지 그에게는 사기꾼마저 붙지 않았다. 내일 모레면 사십인데, 어쩌자고 이리 마음이 허둥대는지 모를 일이다.
굼벵이가 몸에 그리 좋다는데 굼벵이나 잡아볼까. 어차피 내년이면 모조리 파헤쳐져서 죽을 판인데 기왕에 죽을 목숨이라면 없는 사람 돈벌이나 시켜주는 것도 좋지 뭐냐. 그는 꼬챙이를 찾아들고 나무 밑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기저기에 매미 사체가 즐비하다. 꼬챙이로 눌러보니 바스러진다. 기를 쓰고 울어쌓더니마는 이렇게 죽으려고 그리도 울었나보다. 꼬챙이로 나무 아래를 쑤셔 보지만 굼벵이는 그림자도 없다. 나무 밑에서 7년씩이나 산다더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엉덩이를 끌지 않고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나 같은 등신한테 날 잡아가슈 하고 있을 굼벵이는 없나보다. 그는 꼬챙이를 집어 던지고 나무 둥치를 의지해서 일어섰다. 잠잠한가 싶던 매미가 일제히 합창을 한다. 귀청이 찢어지는 것 같다.
102호 현관문에도 붉은 동그라미가 쳐졌다. 페인트 냄새가 역하다. 철거라는 글씨에서 피가 뚝뚝 듣는 것 같다. 현국은 진저리를 치면서 층계를 올라가려다가 102호의 작은방 연탄아궁이 문을 열고 손으로 더듬는다. 열쇠가 잡힌다. 현국은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래층 여자가 툭하면 열쇠를 맡기러 오곤 해서 누굴 집 지키는 강아지로 아느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다시는 열쇠를 맡기러 오지 않았다. 열쇠를 복사해서 식구들마다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녀석이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문 앞에서 징징거리고 서있는 걸 몇 번 봤는데, 그 뒤부터는 그의 집처럼 그 집도 연탄아궁이 문 안쪽에 못을 박고 열쇠를 걸어두는 것 같았다. 그 집이나 이 집이나 도둑이 든다 해도 욕이나 한바가지 퍼붓고 갈 집이지 무엇 하나 집어갈 게 없는 집인데도 문은 꼭 잠그고 다녔다.

그는 요 위에 널브러져 잠든 어머니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손가락이 안으로 살짝 오그라들어 있다. 손바닥의 잔금은 아주 착색이 되어버린 검은색이다.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불리고, 돌멩이로 박박 문지른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을 듯 그 검은색은 견고해 보인다. 얼굴에도 검은색이 골진 주름마다 착색되어 있다. 파랗다 못해 거무스레한 입술은 이미 숨을 멈추어버린 것만 같다. 배는 푹 꺼져서 허리는 한줌도 안 될 것 같고, 툭 불거진 무릎이나 말라비틀어진 다리나 뼈가 드러나 보이는 발은 이 세상사람 것 같지가 않다. 발톱은 모지라져서 발톱이 있었던 흔적만큼 검은색이 테를 둘렀다. 자글자글하게 굳어버린 검은 주름으로 덮인 발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노점을 닫고 들어와 누운 걸 보니 어머니가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다. 하기는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나다니는 것만도 노친네에게는 버거운 일일 것이다. 끈질긴 목숨이다. 나하고 같이 죽자. 그의 허리춤을 단단히 거머쥐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 삭을 대로 삭아버렸다. 그는 어머니의 발을 살며시 잡았다가 놓는다. 마른 장작개비 같다. 앓는 소리를 내며 어머니가 돌아눕자 풀썩, 더덕 냄새가 풍긴다. 그는 방을 나온다. 무심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아랫집 열쇠가 손에 잡히자 그 집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쇠는 잘 맞았다. 그는 운동화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는 텅 빈 안방에 큰대자로 누워본다. 기분이 묘하다. 방바닥이 서늘하다. 창문에 그려진 붉은 동그라미와 가로지른 가위표가 섬뜩하기는 하지만 어디 멀리 휴가라도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벽지에 그려진 긴 네모는 아마도 거울이 걸렸던 자리 같다. 작은 네모는 가족사진이라도 걸어두었던 자리였을까. 장롱을 놓았던 자리는 방바닥도 다른 색이고 벽지 역시 다른 색이다. 장롱을 그냥 둔 채로 도배를 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남루함은 빈 자리임에도 역력히 드러난다. 이런 아파트라도 한 채 있었으면 그녀에게 말이라도 꺼내 볼 용기가 생겼을는지도 모르겠다.
지난겨울, 몸서리나게 춥던 날이었다. 노점을 닫고 들어오다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여간해서는 집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날은 종일 노점에서 언 몸을 녹일 겸 한두 잔이야 어떠랴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웬걸,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결국 지하도에서 한 바퀴 굴러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디를 호되게 부딪쳤는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얼마를 그렇게 거꾸러져 있었을까.
“아저씨, 일어나세요. 여기서 주무시면 어떡해요?”
그녀였다. 그녀가 근심어린 얼굴로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 일어나세요.”
그녀는 작고 하얀 손을 내밀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냥 가요. 넘어진 김에 좀 쉬었다 갈게요.”
“아저씨두 참, 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는 게 쉬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일어나세요.”
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내처 일어설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내 알아서 갈 테니 아가씨 먼저 가요.”
“아저씨도 한 고집하시네요.”
그녀는 몇 발짝을 떼어놓다가 뒤돌아보며 한번 상긋 웃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그는 그 자리에 다시 눕고 말았다. 그녀와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었는데…… 그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녀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는 하릴없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따스하고 말랑한 손을 다시 한번 잡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양손을 마주 잡아 가슴에 품는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는 살며시 일어나 조심조심 현관문에 귀를 대어본다. 다행히도 이 집은 아니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는 걸 보니까 누군가 그의 집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없어요? 안에 있는 거 알고 왔으니까 좀 나와 봐요.”
부동산 남자 목소리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난다. 그는 살며시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니, 아저씨. 여기 살아요?”
그녀다. 그녀가 눈앞에 서있다.
“아, 예.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그는 말을 더듬는다.
“요기 윗집이요. 거기가 우리 집이래요. 전세 기한이 지났는데도 세 사는 사람이 집을 비워주지 않아서 엄마가 담판을 짓는다고 왔는데, 저는 좀 무서워서요.”
“무서워요?”
“제 이름으로 엄마가 사놓은 집이라고, 그래서 제가 꼭 와야 한다고 해서 오기는 왔는데 저는 좀 그렇거든요. 어머, 집이 텅 비었네. 아저씨네는 이사했나보네요.”
“아, 예. 올라가 보셔야지요.”
그는 현관문을 닫았다. 다리에서 주르륵 힘이 빠졌다. 그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서 도로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눈을 감으니 부동산 남자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통사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이 큰 죄다. 늙어 꼬부라진 것도, 불구인 채로 살아있는 것도, 다 죄다. 이 화창한 세상에 얼마나 볼썽사나운 몰골인가. 우리 모자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은 박수를 칠 것이다. 세상까지 알아볼 것도 없다. 형이 제일 먼저 큰 짐을 덜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누구 좋으라고 사라져 줄 것인가.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가 도로 누웠다가 생 몸부림을 쳐보지만 답답한 가슴에서는 더욱 불이 날 뿐이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밤이다.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빈창자가 그를 흔들어 깨웠나보다. 갑자기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벽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달려든다. 왈칵 무섬증이 인다. 나뭇가지 그림자인 걸 번연히 알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밥상 위에 김치 한 보시기를 달랑 올려놓고 어머니는 노랫가락을 뽑아 젖히고 있다. 어머니의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성지다. 말라빠진 몸뚱이 어디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소주병이 밥상 위에 넘어져 있다. 그는 묵묵히 어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야 이놈아, 너도 노래 한자락 뽑아봐라.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어머니가 소주병이 넘어지듯 툭 넘어간다.
그는 밥통을 끌어안고 밥을 푹푹 퍼먹는다. 희망이고 지랄이고 간에 먹어야 산다. 밥솥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밥알까지 물을 부어서 싹 먹어치우고 나니 마음까지 불룩하다. 웅크린 채 웅얼거리던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그는 밥상을 윗목으로 밀어버리고 어머니를 마주보고 눕는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눈물이 말라붙었다. 우리 모자가 이대로 영원히 눈을 뜨지 말았으면…… 오늘은 어쩌자고 이런 생각만 드는지 모를 일이다.

“야 이놈아, 그만 처자빠져 자구 일어나. 에미가 죽어 나가든 말든, 내 쫓기든 말든 나 몰라라 하구 잠이나 퍼대구 자면 대수냐?”
벌써 날이 밝았다.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아침부터 푹푹 쪄대는 걸보니 오늘도 엄청나게 더울 모양이다. 그는 그러잖아도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날 참이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밥상을 봐놓았다. 밥상에는 북어국이 올라와 있다.
“몸 하나는 지극정성으로 챙기셔.”
“뭐가 어쩌구 어째? 이놈아, 니 놈이 언제 에미 술 한번 받아주고 그런 소릴혀?”
“왜 그러슈? 언제는 내 덕 안 볼 거라구 큰소리치더니. 아침부터 푸닥거리 그만하구 밥이나 먹읍시다.”
“허긴 니 놈하구 지껄여봤자 내 입만 아프지 뭐. 그래두 헐 말은 혀야 겄다. 어제 집쥔 왔다 갔다. 당장 집을 비우랜다. 집 한 채 있다구 워떻게나 으스대는지, 원 드러워서. 니 놈이 그년한테 홀려서 간이구 쓸개구 다 빼주지 않았으면 늙은 게 이 수모를 당하겄냐?”
“다 지난 얘기는 왜 또 들춰내서 남의 복장을 뒤집어요? 엄니도 그년이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살랑거리니까 신바람이 나서 돌아쳤잖아? 이제 와서 어쩌라구.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릴까?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지?”
“요 배라먹을 놈이. 그래 한번 뛰어내려 봐라. 죽나 안 죽나 어디 한번 뛰어봐.”
“에이, 밥상머리에서 잔소리를 안 하면 소화가 안 되지. 밥 한번을 편하게 먹어본 적이 없네.”
그는 밥상을 밀쳐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TV를 켠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잔뜩 멋을 낸 여편네들이 나와서 말 같지도 않은 말만 재재거리고 있을 뿐이다. 뭐 재미난 거 안 하나. 에이, 씨팔. 덥기는 왜 이렇게 더워.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가 그에게 바싹 다가앉는다.
“얘, 현국아.”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는 수상하다. 그에게 단단히 환심을 사려는 게 틀림없다. 어머니의 수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거라도 신청하자.”
“뭘?”
“장애인 임대아파트…….”
“싫어, 죽으면 죽었지 거긴 안 가.”
“아주 편리하고 임대료도 싸다더라. 이사를 가기는 가야 할 거 아니냐.”
“전세 얻어 나가면 될 거 아냐.”
“돈이 돼야지. 이 동네는 전세금이 다락같이 올라서 이 집 전세금으로는 지하실 월세밖에 못 가겠는걸. 거기 들어가면 나가라 들어가라 소린 안 한다더라. 그러지 말고 오늘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해라.”
“그렇게 소원이면 엄니나 가서 사슈. 난 안 가. 아니 못 가. 나는 병신들이랑 얼굴 맞대고 사는 거 싫어. 내 꼴 보는 것만두 지긋지긋하다구. 게다가 내가 이 몸으로 전철 갈아타면서 출퇴근할 수 있을 것 같우? 어쨌거나 이 동네서 벌어먹고 살아야 할 것 아뉴. 나는 이 동네서 한 발짝도 못 떠나.”
“그럼 형한테 하라고 할까?”
“됐다는데 그러네. 형이 얼씨구나 좋아라 하겠네. 아직도 형을 몰라? 엄니나 나나 형한테는 벌써 남인 거 몰라? 죽은 셈 치구 안 보구 사는 게 서로 도와주는 겨.”
“그려? 그게 다 니 놈 탓이지 그래 형 탓이여? 이놈아, 니 놈 맘대루 혀. 나야 살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께.”
“에구, 맘에도 없는 소리 작작하셔. 천년만년 질깃질깃하게 살 거면서.”
“저놈의 주둥아리는 벌렸다 하면 악담이여.”
“왜 그러슈? 오래오래 사시라는데?”
“그래, 이놈아. 우리 어디 한번 천년만년 살아보자. 살다보면 끝이 있겄지. 어여 앞장서. 사과 몇 알갱이라도 팔아야 입에 풀칠할 거 아녀?”
어머니가 오늘은 기필코 그를 좌판에 앉혀 놓을 기세다. 그는 어머니에게 몰려 집을 나선다.
“이제 나오나?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자리를 지켜야지.”
옆 자리에서 양말을 파는 영감이 그의 좌판까지 열어놓고 한마디 한다. 그는 그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의자에 털퍼덕 앉는다. 물건을 새로 해다 놓지 않아서 진열해 놓은 과일은 새들새들하다. 떨이로 처분해야겠다. 5개 1,000원이라고 써서 사과 무더기에 꽂아놓자 어머니가 펄쩍 뛴다.
“아 이놈이 장사를 하는 겨 마는 겨?”
“엄니 같으면 이걸 그래 제값 주구 사겠수? 이렇게라도 팔아 치우지 않으면 고대로 썩어나갈 판인데. 뭐, 그러든지.”
“하여간 말본새하구는. 오늘은 꼼짝 말고 붙어 앉아서 장사해라. 나는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
“또 어딜?”
“집 좀 봐야 할 거 아녀? 누구라 여기 와서 살아주슈 하고 찾아올 것 같냐?”
“뭐가 그리 급하다구 이 복중에 집을 보러 다녀요? 공연히 기운 빼지 말구 침이나 맞구 오슈.”
“쥔이 당장 나가래잖어.”
“나가란다구 순순히 나가요?”
“그럼 어쩔 건대?”
“어쩌긴 뭘 어째. 끌어낼 때까지 버티는 거지. 설마 사람 두구 집을 까부시겠수?”
“그놈 배짱 한번 좋네.”
어머니는 슬그머니 그의 옆에 주저앉더니 더덕 자루를 푼다.
“그건 좀 그만 하슈. 엄니 손이 그게 원숭이 손이지 사람 손이유?”
“노는 손에 껍질 벗겨 놓으면 먹는 사람두 좋구, 후딱 팔아 치워서 좋구, 시간 잘 가서 좋구, 누이 좋구 매부 좋구 온 동네가 다 좋은 일을 왜 안 하냐? 멀뚱히 앉아 있으면 누가 돈 준다던? 왜 내동 않던 잔소리까지 하는 겨. 쓸데없는 참견 말구 니 일이나 잘혀. 근디, 밥 잘 먹구 나왔는데 왜 이렇게 어지럽냐?”
어머니는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는다. 평생을 무슨 수형을 치르듯이 그렇게 살아왔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더덕이 향기를 내뿜는다. 어머니는 어지러운지 자꾸 고개를 흔든다. 하기는 땡볕에 집을 보러 다닐 생각만 해도 어지러울 거다. 게다가 다 늙어 꼬부라진 늙은이가 집을 보러 가면 어느 집 주인이 집을 내줄 것인가. 집을 얻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형이 나서야 할 것이다. TV만 봐도 뻔한 세상인심을 굳이 직접 몸으로 부딪칠 필요까지 있나. 부딪칠 때 부딪치더라도 우선 피할 수 있는 건 피해 가는 거다.
오랜만에 좌판에 앉아 있으려니 그는 또 그녀 생각이 난다. 어디 사나 물어볼걸.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거다. 이사를 하지 않고 버티면 다시 오겠지. 흥정이야 그녀 어머니와 하게 될 것이고.

여름이 다 가도록 주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악스레 울어 젖히던 매미가 조용한가 싶더니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부터는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돈다. 추석이 지나자 남은 집들도 서둘러 이사가버리고 101동에는 506호와 그의 집만 남았다. 밤늦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드문드문 불이 켜진 창문을 세어보는 게 일과가 되어버렸다. 말로는 끌어낼 때까지 버텨보리라 했지만 벌써부터 으스스한 게 영 사람 사는 동네 같지가 않아서 인적이 끊기고 나서도 그는 오래도록 노점에 앉아 있곤 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아파트 단지는 공동묘지 같다. 텅 빈 놀이터에는 무심한 참새들만 한 번씩 날아왔다 갈 뿐이다. 나무가 베어지면 거기 깃들여 살던 새들은 어디로 가나.
그는 하루에 한 번씩 아랫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누웠다가 나온다. 창문에 쳐진 가위표가 밖에서 빗장을 가로지른 것만 같아서 꼭 갇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TV소리마저도 없는 완전한 적막 속에 홀로 누워서 그녀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더할 수 없는 충족감을 준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녀의 반듯하고도 하얀 이마, 상긋 웃던 입매, 똑바로 쳐다보던 까만 눈……,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그의 이마에서 콧등을 지나 입술을 건너고 턱 선을 훑어 내린 뒤에 가슴에 다다른다. 그는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는 것 같다.
아랫집을 향해 갈 때면 그 집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그는 발걸음이 더욱 뒤뚱거린다. 언젠가처럼 문밖에 그녀가 서있을 것만 같아서 서둘러 현관문을 열어보고서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 바람났냐?”
어머니가 그의 안색을 살피며 은근히 묻는다.
“왜 또 이러슈?”
“아까 낮에 슬그머니 어디 갔다 온 겨?”
“가긴 어딜 가. 갑갑해서 한 바퀴 돌고 오는 거지.”
“아닌데? 벌써 한 달 넘게 그 시간이면 슬그머니 댕겨오잖어. 누구여, 응?”
“엄니는 아직두 눈 뜨구 꿈꿔유? 내 꼴 안 보여? 엄니가 보기에 어떻수. 그래, 맘이 땡겨?”
“그럼, 내 아들이 인물이야 훤하지. 걷는 게 좀 남달러서 그렇지 워디가 워뗘서? 요즘 지집년들은 죄다 눈깔이 올라붙어서는 사람 볼 줄을 몰러. 너한테 시집만 와 봐라. 다른 건 몰라두 평생 사랑받고 살 겨. 니가 겉으로는 툭툭거려도 얼마나 속정이 깊은 앤데…….”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들을 짝 지워 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가 보다. 어머니는 아직도 헛꿈을 꾼다. 하기는 술이 들어갔다 하면 희망가를 부르는 판이니 숨이 넘어가기 전에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게 틀림없다. 그도 어머니의 희망에 휩쓸려서 이만큼이나마 살아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천하태평이네. 도대체 집은 언제 비울 거예요?”
느닷없이 내지르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난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여자 옆에 그녀가 서있다. 지레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외국에 나갔다 오느라고 안 와봤더니 그래 여태 집을 안 비우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어머니 역시 입이 붙었는지 아무 말도 못한다.
“아유, 답답해 죽겠네. 말 좀 해봐요.”
“그게 글쎄, 방을 못 구해서…….”
“이때까지 사정 봐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봐주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양심도 없어.”
그의 입에서 내질러지듯이 소리가 튀어 나왔다.
“양심이 없다니? 집 가지면 다야? 어디 남의 장사하는 데 와서 행패요, 행패가?”
“어머, 어머.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됩다 소리를 지르구 난리예요?”
“난리라니? 말 한번 잘 했네. 그래, 당신이 쳐들어 와서 소리부터 질렀지. 우리가 먼저 소릴 질렀수? 돈푼께나 있다고 사람이 눈에 안 보이는 모양인데, 어디 한번 힘 좀 써보슈.”
“어머, 어머, 뭐야? 싸우자는 거예요?”
오가는 사람들이 구경났다고 둘러섰다.
“아유, 창피해서 내 원. 하여간 이 달 안으로 집 비워요.”
여자가 그녀의 손을 잡고 서둘러 가버린다. 그녀는 손을 잡혀 가면서도 자꾸 뒤돌아본다. 그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에이, 씨팔. 벌떡증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는 편의점에서 소주 다섯 병을 샀다. 102호로 들어가자마자 병째로 한 병을 들이켜고 나니 속이 홧홧해지면서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 망할 놈의 여편네, 지랄났다고 딸은 끌고 다녀? 다 틀렸다. 어떡해서든지 그녀와 하룻밤을 지내고 싶었는데,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는데, 다시는 그녀가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자꾸 갈증이 나서 한 병, 또 한 병, 술은 술을 불렀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다. 그는 가까스로 눈을 뜬다. 벽에서 나온 괴물이 달려들어 목을 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희망가를 부를 것이다. 술 한잔에 노래 한자락. 이눔은 또 워딜 간 겨? 암만 해두 바람이 난 게여. 오늘도 어머니는 TV를 틀어놓은 채 고꾸라져서 잠이 들 것이다. 잠결에 한 번쯤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재건축으로 부자의 반열에 끼게 된 사람들은 TV뉴스를 눈 빠지게 기다리겠지. 정부에서 아파트 값을 잡겠다고 할 때마다 뛰어오르는 아파트 값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잠이 들 것이다.
누가 송곳으로 뱃속을 콱콱 쑤셔대는 것 같다. 아, 어머니. 나 좀 살려줘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가보다.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파트가 허물어질 때, 시멘트 덩어리에 섞여서 건축물 폐기장으로 가겠지.
쿵, 쿵, 우르르르르.
안 돼!
현국은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켜본다. 꿈쩍도 않는다.
자, 내 손을 잡아요. 그녀다. 그녀가 방긋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저 손을 잡아야 한다. 아, 저 손. 저 흰 손.


권채운․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겨울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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