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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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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73회 작성일 08-02-2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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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다른 곳


어미는 마트 가고
아들은 직장 가고
딸은 학교 가고
나는 청소를 한다

방마다 다니다가
생리대를 치우고
머리카락을 쓸고
속옷을 개킨다

아내가 임신하는 대로 더 낳았다면
아직 자식을 유모차에 태우고
놀이터에 앉아 있고
일찍 아들이 장가를 가고
딸이 시집을 갔다면
벌써 손자를 목말 태우고
골목을 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식구 모두가 가임(可姙)의 나이라니
가임의 나이로 나다니고 있다니
다산성이 내림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많이 미루어져 있다면
이 집은 이 세상과 다른 곳이다

나는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로 나와서
걸레로 탁자를 훔친 뒤
수반에서 촘촘히 잎사귀를 낸
행운목에 물을 뿌려준다




매매


목돈이 필요한 중년사내가
마침내 흥정을 끝냈는가 보다
누군가와 인사하고 나가다가
병원 정문에서 마주치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구매자가 되지 못했으므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중년사내는 끼니 굶을 처자식 생각하면
몸이 편치 않다고 했고
간이 다 들어 있다 해서
콩팥이 다 들어 있다 해서
배가 부르는 것도 아니라고
힘이 나는 것도 아니라고도 했고
끝장까지 세상 살아가려면
최소 필요 장기만이라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덜 필요한 장기를 팔아서
먹어야 한다고도 했지만
나는 온전해서 사줄 수 없었다

그의 장기로 생애를 길게 늘린 사람보다
중년사내가 더 살지 덜 살지는 모른다
다만 그런 그가 자꾸 생겨나 더욱 가난한
그들이 될 거라는 것만은 안다
(강대국 국민과 빈국 국민이
지금 매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리로 나간 중년사내가 인파에 묻혔다
그도 한때는 나와 마찬가지로 병문안 다니며
남을 걱정하던 가장이었을 테다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님 시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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