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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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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75회 작성일 08-02-2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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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초식동물의 피


내 선조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염소처럼 작고 조그만 눈, 토끼처럼 크고 두툼한 귀, 수탉처럼 헐떡이는 작은 가슴……, 등이 유전자에 박혀 있는 것을 보면, 내 선조들 또한 산천촉목을 호령하던 사자나 호랑이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들 또한 마을 주변을 맴도는 기껏해야 초식동물 따위! 자분자분 들판을 일구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해왔으리라.

이런 선조들의 후손인 나는 지금
무릎을 다쳐 절룩거리며 걷고 있다
단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뿐인데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 몸의 유전자가
자꾸만 상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입고 있는 옷도 남루해 보이고
벗고 있는 마음도 남루해 보인다
절룩거리는 다리도 남루해 보이지만
이 모든 것, 시간이 만드는 일이라는 걸
내 어찌 모르랴 마음이 만드는 일이라는 걸

초식동물도 동물인 만큼 내게도 와락 더운 피 돌 때는 있다 설움들 별빛으로 가슴 가득 쏟아져 내릴 때는 있다 더러는 그리움의 낯빛을 하기도 하는 저 별빛들……, 그래도 용케 잘 견뎌내고 있는 나는, 초식동물 따위의 피를 받은 것이 늘 고맙다 황금 부스러기 달빛을 밟으며 출렁이는 강

물 따라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선조들을 생각하면 오래도록 아랫배 뻑뻑해지는 것이다.



차 몰고 나주호 한 바퀴


차 몰고 나주호 한 바퀴 돌아 들어간다
산벚꽃들 흐드러져 마음 자꾸 어지럽다
삼림욕장 주차장에 차 세운 뒤
산책로 따라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간다
연분홍 복사꽃더미 끌어안은 채
나주호 물결들 한참 짓이 나 있다
저 짜샤, 샛노란 민들레꽃들까지
무수리로 거느리고 싶은 모양이다
이 모습 지켜보던 보랏빛 제비꽃들
기가 막힌 듯 고개 외로 꼰다
문득, 둥글고 환한 얼굴 하나 떠오른다
나 혼자 라면으로 점심밥 이울 때도
퍼뜩, 떠오른 늙은 억새꽃이다
너무 바빠 언제나 종종대는 늙은 억새꽃
그녀와 함께 이곳 둘러보기까진
한참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산벚꽃들 흐드러져 발걸음 너무 어지럽다
차 몰고 나주호 한 바퀴 돌아 나온다
거기 나뒹굴고 있는 외로움 몇 덩이
고개 갸웃대며 내 마음 함부로 엿보고 있다.


이은봉․
1953년 충남 공주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
․시집 󰡔길은 당나귀를 타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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