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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신작시/서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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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어떤 애인
내가 아는 시인의 자동차는 희한하다. 뒷문을 열면 삐걱 소리를 내며 여자처럼 엉덩이를 들었다 놓는다. 차문을 열 때마다 사람들 놀림에도 잘만 굴러가면 된다라며 끄떡도 않는다. 이래 뵈도 이 차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야. 학교로 학원으로 애들 퍼다 나르고, 아픈 노인네 태우고 응급실도 달려가 주고, 어쩌다 늦잠 잔 식구들 지각 면해주고, 일 년 열댓 번 종갓집 제사상 어깨 빠지는 시장 짐도 들어주는 애인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쭉쭉 빵빵 잘 빠진 신종차보다 아픈 주인 대신 삐걱삐걱 소리도 질러주고, 툴툴거리며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낡은 애인이지만 그래도 최고란다. 의자도 되었다가, 여행길 침대도 되어주며, 혼탁한 영혼까지 삐걱거리며 걱정해주는 이만한 애인 있음 나와 보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는 그 시인은 참 복도 많은 놈이다.
냉천탕 이야기․1
―업둥이
오늘은 싸우나가 뜨겁지 않구마이라. 안양대 앞 냉천탕 터줏대감 김 여사가 싸우나 탕에 들어선다. 아따, 오늘은 봄꽃들이 흰 눈처럼 환장하게 날려야. 쩐에는 봄이 참말로 뜨셨는디 워째 요즘 날씨는 미친년 널뛰듯 헌당께.
그러고 봉께 생각나는 게 하나 있소. 한 이십여 년 됐을랑가. 내가 세 살던 건넌방에 젊은 애기 둘이가 살림을 차렸는디, 여자는 대학생이고 남자는 노가다판 전전하는 불알 두 쪽이 전부인 넘이었지라. 여자가 미친년이제. 야들이 애를 낳았는디 남자는 쌈질하다 교도소 잡혀가 뻔지고 핏뎅이는 목이 터져라 울어쌓고 참말로 사람 눈으로는 못 볼 것이데. 답답한 참에 내가 여자 집에 전화를 넣었제. 그 집 어메한티 이 핏뎅이는 내가 알아서 할랑께 팔자 펴고 살라고 보냈제. 지금 생각허면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야. 나도 미친년이제.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 때문이제. 곰곰 생각허다 막걸리 한잔 퍼마시고 동네 애 없는 집 앞에 내려놓았제. 그날도 봄꽃들이 눈처럼 펄펄 내렸어야. 그 업둥이가 이 목욕탕도 가끔 와불어. 대학생인디 얼굴도 이쁘장하다지 않소. 그란디 아까 오다 봉께 남탕에 들어가던 사내와 눈이 떡 마주쳤는디 바로 그 교도소 들어갔던 아범이여. 내가 뒤로 자빠질 뻔했당께. 세상이 겁나게 좁아 불어. 핏뎅이를 업둥이로 건네주고 일 년인가 지났나. 애 낳은 색시가 날 찾아와 부렀어. 봄꽃만 피면 교도소 갔던 사내놈이 찾아와 애 내놓으라며 집을 불싸지른다고 술먹고 행패를 부린다는구만. 내가 눈 딱 감고 그랬제. 아그야
핏뎅이는 폐렴결려서 그해 봄 죽어뻔졌다. 다시는 애 찾지 말고 가슴에 묻어부러라. 봄꽃이 피면 그 사내놈이 꼭 그 지랄을 한다드만. 못사는 넘들에겐 꽃도 매정한 법이여. 아까 그 남정네가 나를 보더니만 금세 두 눈에 벌건 눈물이 고여불데. 봉께 그 아범이란 작자는 아직도 교도소를 들락거린다고 하데. 사회가 받아줘야 애비노릇을 할 게 아닌가베. 봄꽃이 피면 난 참말로 펑펑 울고 싶어져야.
서안나․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플롯 속의 그녀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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