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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신작시/이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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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담
타이어
자꾸 유혹하며 달려드는 고속도로
뿌리치지 못했다
마라톤선수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만큼 오뚝한 이목구비는 닳아갔다
탱탱한 젊음은 못에 찔린 순간
허망하게 빠져나갔다
한 번도 쳐다보지 못했던 달을
잡풀들 위에 누워 바라보았다
조용히 세상을 끌며 가는 달빛에게
처음으로 온몸을 맡겨본다
풍만한 여인의 승용차에 실려
집들이 모여 사는 담벼락에 부려졌다
네모 주차선 속에서 상징처럼
소통을 향한 기호문자가 되어
둥글게 살자고 동그라미가 되어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표가 되어
어엿한 경비원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빈 몸뚱어리 속으로 달이 들어차면
네모 칸 밖으로 퇴근을 했다
고급승용차가 네모를 침대 삼아 편히 잠들면
나는 다시 담벼락에 기댄 채
잠을 청했다 하늘에선 길조처럼 별똥이 떨어지고
땅에선 담벽을 타던 등꽃이 가슴 환하게 웃었다
양말의 길
뒤집혀진 양말 되집는다
세탁기 속을 향해 던져질 때
길들 우수수 떨어진다 거기
유목의 소인들 숨어 산다
땅 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통통배처럼
양말은 저만이 걸을 수 있는 길로 들어선다
방랑에 눈뜬 양말
가끔은 새털구름처럼
하늘을 걸어보고도 싶었다
낯선 세계를 향할 때
무작정 친구 따라가듯
믿는 만큼 길은 편하게 열린다
말이 필요 없는 눈물 젖은 길에서
빗물 한 잔씩 기울이며 꿈꾼다
때로는 목련 꽃잎으로 피어보려고
나뭇가지에 매달려보기도 하지만
빈 배로 묵묵히 기다려주는
운동화가 있어 또다시 제 길로 돌아온다
만만하게 받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몇 번씩 뛰어오르면서
포기할 줄 모르는 길을 두드린다
오늘은 세탁기 속 길들과
어깨동무하며 뒤엉켜보리라
생의 가는 줄 위에서 광대 줄타기하듯
한판 신명나게! 바람과 함께 놀아보리라
이지담․
전남 나주 출생
․2003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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