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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신작시/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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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물방울꽃
―수두
봉긋하게 올라온 물방울들이
아이를 고립시켰다
몸에 손끝이 닿으면 평생 진한
흉터로 남는다는 잔소리의 딱지가
아이를 얼어붙게 했다
보이지 않도록 들키지 않도록
컴퓨터 앞에 아이를 감금시키고
웅성거리는 시간과 마주앉아
커피를 마셨다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에 있는
커서로 제 몸에 돋은 물방울들을
터트렸을 연하디연한 아이의 겹눈
물방울꽃은 종일을 두고
아이에게 간지럼을 태웠다
닫혀있는 방문이 숨 막힌다며
벽에 몸을 부딪쳤다
아이는 컴퓨터가 간지럽도록 투정질하고
시간은 수두라는 메뉴 하나로
두 주일을 질리지도 않게 먹어 치웠다
컴퓨터 커서 소리가 멈췄다
아이는 물방울꽃이 남기고 떠난
얕은 흔적 하나를 들고 현관문을 뛰쳐나간다
투명꽃
오 남매 중에 몸이 제일 약한 나는
의도적으로 무신론자로 자랐다
백설공주를 꿈꾸며 충분히 잠을 자야 했고
신데렐라를 닮으려 볼 좁은 구두를 신었고
손가락에 낀 반지 들여다보며 서툰 주문을 외웠다
구름 위로 숨어버린 달과 별처럼
내 가슴 깊이 자라던 투명꽃은
수런거리는 바람에도 피어났다
투명꽃 주위 긴 침묵으로 뜯겨진 달력도
지나간 시간의 태엽으로
요란하게 분장을 만들지 않았다
곱게 자란 여자의 손마디처럼
국어사전에 투명꽃이란 단어는 없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닦는 일이 투명꽃에
물을 주는 일처럼 기분 좋은 날
내 몸 주위로 둥지가 쳐지고
목에는 워낭이 매달렸다
다시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다
김지연․
경북 영주 출생
․2004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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