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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김점례/저녁기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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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94회 작성일 20-01-0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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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김점례/저녁기도 외 1편


김점례


저녁기도



낮에는 덥다고 피곤해 하던 분꽃이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저녁을 맞는다
시끄럽게 나뒹굴던 매미 소리도
휴식을 취하는지 조용하다
공기는 달착지근하고 숙제 같은 해야 할 일도 없어서
공깃돌처럼 오롯한 재미를 굴릴 참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귓속에 벌레라도 기어든 듯
거슬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었는데
종잇장처럼 구겨진 낯빛으로 들어서는 그를
문턱이 내다 꼽는다


구급차는 온 동네 소문을 퍼트리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깨진 독에서 물이 새듯 눈물이 찔끔찔끔 새고 있다
심장은 떨어지다 말았다
 
재미없는 병실
대신해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얀 시트 위에 길게 누운 그 앞에
십자가로 서서 빈 벽에 빈 그림을 채우고 있다
걱정 말아요그대
당신의 나라에 어둠이 내려도
이만큼 나앉아 밤새 당신의 어둠을 지킬게요
 
나의 저녁은 분꽃 향을 좆은 부질없는 기도였다





자라지 않는 옷



바람이 쓸어놓은 길을
함께 자라지 않은 옷 밖으로
손목과 발목을 우스꽝스럽게 내놓은
볼이 빨간 아이들이 내닫는다


부연 바람꽃이 마을을 감싸면 좀이 쑤셨을
이마가 높은 아이들은 허물을 벗듯
유년의 옷을 벗어 놓고 떠나고
고샅길 낡은 담벼락엔 퍼런 이끼들만 왁자하다.
  
마루에 뽀얗게 앉은 먼지 위에
봄 병아리 햇살이 흙 묻은
고양이 발자국을 헤아리고
고요함은 처마의 그림자보다 더 깊다
 
멀리 돌아온 키 큰 아이 하나
지친 나그네처럼
쓸쓸함을 후후 불어서 밀어놓고
볕 묻은 마루 끝에 걸터앉으니
빈손
제 몸을 껴안는다
 
기억이 희미해진 늙은 감나무가
아까부터 신경을 곤두세우며 골똘하다
 
무시로 드나든 바람은
문풍지만 흔들어 대다 지쳐버렸는지
저만큼 탱자나무 울타리를 건들며 달아난다


먼 발치에서 배웅했던 산이
뒤꼍에 숲을 낳아
칠월 열쭝이들 날갯짓 소리를 기다릴 모양이다





*김점례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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