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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미니서사/김혜정/문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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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미니서사/김혜정/문門
김혜정
문門
여자는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집을 나선 것인지 아니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인지 헷갈렸다. 집을 나섰다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면 그 전에 어디에 갔다가 온 것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의 눈에서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아니, 벌이나 혹은 나비인지도 몰랐다. 여자는 도리질을 치면서 그것이 잠자리인지 벌인지 나비인지를 생각해 봤다. 도무지 분간이 안 되었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고 있는데 하필 옆 호의 노인이 나와서 말을 걸었다. 출근하는 거냐고. 예에,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노인이 얼른 타더니 여자를 향해 타라고 했다. 여자가 머뭇거리자 얼른 타라고 손짓까지 했다. 여자는 얼떨결에 엘리베이터를 탔고, 부탁된 광고용 전광판을 보고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베이터는 몇 번인가 멈췄고, 그때마다 사람이 탔다. 아이와 함께 젊은 여자가 타고, 이어 중년남자와 고등학생이 탔는데 아이가 칭얼대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는 터에 약간 소란했다. 아니, 소란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의 불이 꺼지고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비상호출기를 눌렀다. 7층 혹은 8층에서 탄 중년남자가 휴대폰으로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울고 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투덜거렸다. 여자는 노인이 원망스러웠다. 문 앞에서 노인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았을 거였다.
소란이 진정된 뒤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고, 문이 열리자 환호성이 터졌다. 모두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종종걸음을 쳐서 곧 사라졌다. 여자는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노인이 멀어지기만 하면 다시 집으로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자신이 왜 문 앞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은 좀처럼 여자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밥은 먹었냐, 무슨 직장에 다니냐, 자기는 이래봬도 전직 교장 출신이다, 아침 산책을 가는 중이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여자는 자신이 어디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지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틈을 주지 않는 노인이 귀찮았다. 빨리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노인은 여자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여자가 걸음을 떼면 노인도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속이 답답하고 목이 타기 시작했다. 여자는 큰길을 건너 슈퍼마켓에 가서 물을 사먹어야지 했다. 하지만 빨간불이 들어온 신호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여자는 인내심을 잃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넜다. 오토바이가 급정거를 하고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차창을 열고 여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운전자도 있었다. 여자는 다시 생각해 봤다. 자신이 문앞에 서서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인지, 밖으로 나오려던 참이었는지에 대해.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의 눈에서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아니, 벌이거나 나비일 수도 있었다. 여자는 눈을 깜박거렸다. 무엇인지 모를 그것이 점점 커졌다. 그것이 실제로 커진 것인지 아니면 커지지 않았는데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자신이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인지 집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는 것이 마치 잠자리나 벌, 혹은 나비 때문인 것만 같았다. 아니, 노인 때문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잠자리도 벌도 나비도 노인도 악의는 없어 보였다. 비로소 여자는 자신이 집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것인지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인지 그건 별 문제가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단순한 마음의 움직임이었을 뿐이고, 자신의 마음이 잠시 허공에 걸려 있었던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문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나가기 위해서도, 들어가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새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슈퍼마켓을 향해 걸었다.
*김혜정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디오가게 남자」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영혼 박물관』.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간행물윤리위원회(우수청소년 저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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