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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단편/손병현/배고픈 다리 밑에서 홍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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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49회 작성일 20-01-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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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단편/손병현/배고픈 다리 밑에서 홍탁


손병현


배고픈 다리 밑에서 홍탁



참말로 눈도 실허게도 퍼붓소. 처녀 옷고름 풀리드끼 아시시 떨어져 내리는 작태가 금매 아짐씨 오줌 지리겄소. 모르지라 나도 살째기 지려브렀는지. 이참에 오줌소태 막힌 구멍이나 씨언허니 뚫래브렀으믄 쓰겄소. 금매 밤이고 낮이고 콱-콱- 뚫어줄 서방놈이 있으믄 먼 걱정이것소. 쪼까 거시기 헌 소리지만 거그 문 닫고 산지 오래되얐소. 멋이 더 알고 잪아서 귓구녕을 쫑긋 세우고 난리요. 쇠통 채운 지 오래 되얐당께. 모다 집이 안방에 모셔둔 이녘 대문덜 한번이나 더 열어드리고 너무 대문은 고만 뽀작거리쇼덜. 낼이 설이라는디 나탱기는 인사들이 제법 있소. 묵고 살라고 그나저나 애덜 쓰요. 새끼덜까장 딸리믄 코뚜레 걸린 짐생이나 매한가지 아니겄소. 아닌말로다가 짠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요. 보믄 알 것지만 웃고 다니는 낯바닥 맻이나 됩디여. 낯바닥인지 방바닥인지 시멘트 회반죽으로 미장질이 되브러갔고 백돌짝맹키로 어디 쓰것습디여. 목구멍 건사허기가 무작무작 더 에러와 진께로 산다는 것이 근천시럴 정도요. 무담시 너무 낯바닥까장 들먹임서 오지랍을 떨었는갑소. 그믐날 저녁인디 누가 오겄다고 전방문을 열어놓고 목을 빼고 청승인지 나도 내 창시를 모리것소. 홍어장시 30년 넘어 남은 것이라고는 녹아 없어진 애간장밲이 없소. 홍어애국이 내 뭉그러진 속국이다, 생각허믄 틀림없을 것이요.


아심찬해서 고샅을 좀 씰어야 헐랑갑소. 옴서감서 미끄라져 대그빡 바사지믄 내 대그빡은 아니라도 고상허고 돈 들어갈 것 아니것소. 얼룩덜룩 나일론 빗자루를 들었소만 영 심폴리고 정나미도 없소. 쑤싯대 빗지락이나 대 빗지락이 좋기는 허요만은 요새 눈에 뵈야 말이지라. 부삭 씰던 몽당 빗지락이 정은 많이 갑디다. 부삭 앞이서 따땃허니 깜박 졸다가 끄니라도 태워 묵은 날이믄, 오살헐년 잠에 허천 부아병 났냐 이년아 저년을 잘근잘근 씹어서 생케 돌래블믄 내 속이 개안허겄네이, 어쩌고 험서 빗지락 몽댕이로 울엄니 내 등짝을 후려쳤응께. 정이 들만도 안 허요. 포도시 나 전방 앞이 밲이는 못 씰것소. 심도 폴리고 빗지락도 션찮아서 갱신히 숭내만 내요. 간판 욱에도 좀 씰었으믄 좋것소만 넘덜이 벨나다고 헐까 싶응께 작파헐라요. ‘배고픈 다리 밑에서 홍탁’ 우째 간판명은 맘에 드요? 나가 맹글었어도 참말로 잘 맹글었다 싶소. 누구는 그럽디다 넘이 업어갈까 무성께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내번지라고. 무담시 웃끼니라고 혀본 소리요. 누가 들으믄 달밤에 미친년 널뛰고 자빠졌다고 숭보것소. 빈말이 아니라 간판보고 발들이는 손님들도 더러 있기는 허요. ‘고향이 거그요?’ 물으믄 ‘야, 그짝이요’ 허고 말지라. 배고픈 다리는 실지로 있는 다링께 역실로 물어들 보요. 거그, 학동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길목에 배고픈 다리라고 있소. 뭣땀시 그라고 불렀는지 설이야 많소만은 모다 군더더기 찌끄래기고 ‘배고픈 다리’ 딱 그 한마디믄 되얏소. 나사 걱서 살기는 좀 살았소만, 거그 생각만 허믄 양잿물 생킨 달구새끼 모냥 가심이 보타지고 목구녕이 화끈거려 오금이 딱 달라붙소. 세월이 약이당만 똑 그란것만은 아닌갑습디다.


전라도 화순 춘양이라고 아시요? 거그가 내 원 고향이요. 거 머시냐 남원 춘향이 허고는 글자보텀 다른께 헷가리덜 마시요. 춘향이는 봄춘春자에 향기향香자를 써서 봄의 향기라고 허고, 나 살던 고향은 봄춘春 자는 맞소만 볕양陽 자를 써서 봄볕 또는 봄볕 맹키로 따순 땅, 뭐 그란답디다. 어릴 때 보텀 마을 어런덜헌티 귓구녕에 대못이 백히도록 들어서 이자묵을래야 이자묵을 수가 없소. 나가 어릴 때 보텀 가시낙년이어도 자발이 없어서 더러 사고를 쳤단말이요. 그라니 지금도 깔딱숨이라도 붙었는 동네 늙은이덜언 나럴 기억허는 냥반덜이 더러 있을 것이요. 한번은 엄니 심바람으로 능주 장에를 갔소. 그때가 핵교 들어갈 때 전인께 아매 예닐곱 되얐을까 그랄것이요. 돌안 장날 어물전 함평떡헌티 조구새끼 폴뚝만헌 놈으로다 두 마리 갖다 돌라고 했응께 가믄 주꺼이다. 엄니가 똑 그렇게 말헙디다. 그날 저녁이 돌아가신 하나씨 제사라 엄니는 떡을 앉힌다 너물을 볶는다 바쁜께 나럴 보낸 것이제라. 동상 둘이 있는디 그것덜언 안직 대갈통이 풋감자 맹키나 혀서 뭔 말귀를 알아묵어야 말이지라. 능주 장에를 걸어서 걸어서 어물전 함평떡을 찾아갔는디 고마 내 주둥이에서, 저놈 홍어 큰놈으로 한마리 주시요. 소리가 나도모리게 나와블덜 안허것소. 함평떡이, 느그 어매가 제사 지낸다고 조구새끼 폴뚝만이로 큰놈으로 두 마리 갖다돌라고 혔는디 홍애를 달라고야. 고개를 비틀침스로 요상시럽다는 표정을 짓습디다. 아시는 냥반덜언 다 아시것지만은 아랫녘 제삿상에는 조구가 대장이요. 제삿상에 조구 대그빡이 대구 대그빡 맨치나 큰놈으다가 올라 앉았어야 그래도 신경좀 썼는갑다 허는 것이지라. 그란디 또 내 주둥이에서, 엄니가 날짜를 잘못 알았다고 제사는 담달이랍디다. 소리가 나오덜 안허것소. 어물전에 쭉 널브러져 있는 홍어를 보자마자 걍 그놈이 묵고잡고 꼭 집으로 델꼬가야 내 속이 씨언헐것 같고 그라다본께 나도모리게 막 말이 맹글어져 븝디다. 폴뚝만헌 놈이 아니라 엄니 엉덩짝만치나 헌 홍어새끼럴 마대포에 싸서 새내끼로 묶어가꼬 집이까지 오는디, 들고 이고 비렁내로 멱을 감음시로 초 영금을 봤소. 참말로 담은 야그를 안했으믄 허것소만……, 토방 앞이 홍어를 떡 허니 부려논께 울엄니 눈이 기암허고 자빠질 정도로 희번덕거립디다. 당장에 바지개작대기를 치켜드는디, 사오라는 조구새끼는 안사오고 뭔놈의 홍애새끼냐고 그것도 폴뚝만헌 좆이 두개나 덜렁거리는 숫놈을 가시나년이 남우세스럽게 머리에 이고 왔냐고, 여축없이 타작마당을 시작헙디다. 마침 나무짐을 지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아부지가 나럴 보둠어 안지 않았다믄 나는 그날 삭은 홍어맨치로 거품물고 쭉 널브러졌을 것이요. 난데없이 제삿날이 잔칫날이 되야서 동네 사람덜 전부 우리집으로 모여서 홍어 잔치를 안 했것소. 아부지는 막걸리에 취해서 우리집 큰딸이 오지랍이 넓어서 떡판만치나 큰 홍애를 이고 왔다고 자랑이 찢어집디다. 그것이 바로 나랑 홍어가 맺은 첫번째 인연이요. 난중에 한번 더 홍어를 찐허게 만난 적이 있기는 허요만은 영 말허기 거시기 혀서 밀차둘라요. 인자는 엄니 아부지도 다 돌아가시고 산소에나 한번씩 찾아갈까 뭐 갈일이 있어야지라. 지금도 욕쟁이 울엄니 목소리가 귓속에 쟁쟁허요. 저런 자망헌년, 씹구녕에다 홍애좆을 그것도 쌍좆을 처박을 년 저 년…….


요런날 혼자 우두커니 밖을 보고 있자믄 지나간 세월이, 도구대로 수없이 맞아서 패인 도구통마냥 영 허전헙디다. 눈은 쏟아지고 빼따구는 쑤시고, 누구 말마따나 팔 할이 바람이라등만 거그에 쪼까 보태자믄 남은 이 할은 한숨 아니었으까 싶소. 살아본 냥반덜언 아시것지만 내 빼따구 안 닳고 넘 입에 콩 한쪽이라도 넣어줄 수 있습디여. 그래도 나는 이 홍어가 있어서 덜 외로왔소. 홍어가 나 같고 나가 홍어 같고 그참저참 항꾼에 살아왔구나, 달리 생각이 안 든단 말이요. 나가 그짝저짝 떠돌다 여그에 자리를 잡고 살았디끼 홍어란 놈도 지 본 바탕을 떠나서 객지에 자리를 잡았는 갑습디다. 나도 손님헌티 들은 야근디, 고려시댄가 언젠가 하도 흑산도에 왜놈덜이 쳐들어와싼께 나라에서 주민덜얼 나주 영산포로 집단 이주를 시켰다고 안 허요. 흑산도 사람덜이 고향 떠남서 뱃길에 홍어를 싣고 영산포까지 와본께 이 홍어란 놈이 고새 삭아서 코럴 톡 쏨시로 고향생각 눈물을 됫박들이로 쏟아냈다고 헙디다. 그래서 그런지 홍어럴 디아스포라 음석이다 어쩐다 떠들어대는 방송을 본적도 있소. 나도 홍어마냥 요롷게 객지에서 뿌리없이 살아강께 홍어나 나나 다를 바 뭐 있것소.


여고 졸업험스로 광주 호남동에 있는 ‘로케트 전기’에 딱 취직이 되야브렀소. 참말로 깨춤이 절로 납디다. 그때는 ‘로케트 전기’가 꽤나 큰 회사여서 출퇴근 버스가 여러 대 다닐 정도였응께 안 폼이 나것소. 쉽게 말허자믄 ‘로케트 밧데리’니 ‘로케트 건전지’니 모다 걱서 나온 것이라믄 대충 알아묵을 것이요. 그라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깨금발을 들어 봐도 온통 전답이고 까끔인 촌구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헌께 가심이 방맹이질을 허고 잠이 안 옵디다. 그란디 대번에 초치는 일이 벌어져브럿소. 아부지가 웃배미 논 두 마지기를 당숙헌티 폴아째껴서 학동 배고픈 다리 옆이 기와집을 하나 얻어줌서 동상들 잘 건사혀라이 허고 가셔븝디다. 짐 부리디끼 두 년놈얼 떠맡기고 돌아서는 아부지 뒤태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가꼬 생 이빠지가 다 끈덕거립디다. 여동상은 인자 고등핵교를 입학헐 때고 남동상은 중핵교를 입학헐 땐디 좀 손이 많이 가것소. 창창대로에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어브렀구나, 속이 끓어 오르는디 열불나서 도저히 못 젼디것습디다. 배고픈 다린지 배부른 다린지 다리꺼리에 서서 처웃다 울다 참말로 부아를 삭히니라고 욕께나 봤소. 공일에는 쉬도 못허고 춘양에를 가야 혔지라. 두 년놈을 믹애 살릴랑께 도리 있소. 김치 한차 반찬거리를 잔뜩 이고 지고 완행버스를 타믄 참말로 요리비틀 저리비틀 너릿재 터널까지 깔끄막은 좀 높으요, 짓국이 새고 찬합이 굴러다니고 20살 처녀 낯바닥이 뭣이 되얐것소. 하도 화딱지가 나서 창밖으로 그것덜얼 던쳐블까 맻번을 생각했소. 아매, 참꽃이랑 산벚이랑 온갖 들꽃덜이 아니었으믄 또 굽이굽이 휘어지고 패인 찻길이 아니었으믄 그리 못혔을 것이요. 그래도 그 촌시런 풍경들이 뭣이라고 맴이 푸근해짐서 위로가 됩디다.


그란디 망헐 사달이 나브렀소. 하루는 퇴근 허고 돌아와본께 바로 밑이 여동상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처 울고 자빠졌습디다. 여동상은 조선대 뽀짝 졑에 몬뎅이에 있는 춘태여상을 다니고 있었소. 거가 깔끄막이 져도 숭허게 져서 한 달만 올라댕겨도 다리통이 무시통이 되기로 유명짜헌 핵교요. 친구들헌티 머리끄뎅이나 잽혔을까 싶어서 찌럭찌럭 건들어도 보고 복숭아 간수매를 사다 들이밀어 보기도 허고 요살을 떨어도 영 대꾸가 없드란 말이요. 포도시 어루고 달래서 야그를 들어본께, 해거름참 핵교에서 내려오는디 군인 두 놈이 야럴 나무 덤불 속으로 끌고 들어갔는 갑습디다. 그 담은 뭔 일이 있었는지 차마 내 입으로는 못 나불대것소. 매칠 전보텀 학생덜이 데모를 허고 군인들이 시내를 활보허고 허등만 그날보텀 판세가 영 심상찮게 돌아가서 누가 총에 맞았네 곤봉에 대갈통이 박살났네 숭상시런 소문이 떠돕디다. 그라던 참에 그 사고가 일어난 것이지라. 그 애린 것을 두 놈이 각단지게 찍어 눌러브렀응께 아가 정신이 온전허것소. 방안에 있던 소지품덜얼 온통 집어 던져놓고 실성헌년 맹키로 울고 짜고 생 지랄입디다. 지 가심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것지만 나도 오목가심이 들고 쑤셔서 참말로 못 젼디것습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것소만 동상년 등짝을 한참이나 내려침서 차라리 같이 죽어블자고 얼매나 울었는지 모리것소. 참말로 심정 같아서는 오함마를 들고 가서 그 두 놈 거시기를 차돌 욱에다 올려놓고 조사블고 싶습디다. 생각해보쇼, 인자 제우 17살이요. 그런 아 헌티 목에 단도를 들이댐서 그짓을 혔다는디 그런 처죽일 놈덜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것소. 좆대가리에 쉬가 쓸어 썩어문드러질 놈들이지라. 단박에 짐을 챙겨서 동상 둘얼 델꼬 너릿재로 갔소. 화순으로 넘어가는 너릿재 터널언 군인들이 막아섰고 갱신히 터널 욱에 고갯길을 넘었소.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그 너릿재 고갯길로 넘어 다녔단 말이요. 그날 밤길에 더듬더듬 너릿재 고개를 동상들을 앞세우고 넘는디 엄니 아부지를 뭔 낯으로 볼꺼나 참말로 한발 떼기가 천근입디다. 도저히 다리가 후들거려 몬당에 쭈구려 앉았는디 저 멀리 드문드문 불타는 광주 시내가 내려다 빕디다. 그때 드는 생각이 내 동상년도 광주도 똑같이 순결을 잃어 브렀구나 싶습디다. 세상없이 평온허던 도시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얐응께 뭔 말얼 더 보태것소.        
오메, 요로코롬 궂인 날씨에 손님이 들어 오시요이. 그짝 말로 ‘오겠소?’ 허믄 ‘야’ 그러고 끝인 손님이요. 내동 오시는 냥반인께 서로 낯바닥 개릴 것도 없고 내 군석만이로 걍 이무럽소. 신작로 차부 옆이서 풀빵 꾸는 냥반인디 고향이 목포 어디랍디다. 주문허고 말고 헐 것도 없이 홍어국시 한 그릇이요. 머리 욱에랑 어깨 욱에랑 눈 조까 털어내시라고 수건 모냥 드리고 국시럴 삶아야 것지라. 혹시, 홍어국시라고 들어봤소. 우리집 주 메뉴가 홍어국시요. 요 홍어국시가 내 헌티는 참말로 아픈 살이요. 아직 그 아픈 살이 아물덜 안 혀서 여직 홍어국시를 폴고 있는가 나도 모리것소. 홍어국시에는 막걸리 식초가 들어가야 제맛이요. 춘양에는 집집이 정지마다 됫병들이 막걸리 초병덜이 있었소. 아부지 자시고 남은 막걸리를 부뚜막 욱에 언거진 됫병들이 소주병에 붓고붓고 허믄 누런 초막이 짐서 식초가 되지라. 요런 사다 쓰는 빙초산 재료 허고는 댈 것이 아니요. 보드랍고 새콤허고 텁텁허고 달달허고 아리허고, 여튼 깔축없이 맛난 맛이 나요. 집새기 깐 항아리 속에 둬 달 삭화 둔 홍어를 꺼내서 어슷썰고, 바람 쐬서 말린 장성국시를 삶으요. 나는 기계로 맹글고 기계로 쪄서 말린 국시는 안 쓰요. 자셔본 양반덜이 개미도 없고 방부재가 들언능가 소화도 안 된다고 덜 좋아라 헙디다. 나가 대서 쓰는 장성국시는 장성에서 맹그는디 딱 소금허고 밀가리밲이 들어가는 것이 없고 바람 쐬서 말린께 깨끔허고 속도 개안허다고 좋아들 헙디다. 무 절임 조차, 미나리 조차, 삭훈 홍어 조차, 삶은 국시를 초장에 버무려 노믄 보기만 혀도 입안에 침이 한됫박이요. 저 냥반 자시는 것 좀 보쇼. 국시를 자시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자시고 있는 것맹키로 후덥잖아 보이잖소. 뭔 사연인중은 모르것소만 저 냥반도 고향 떠나서 여직 객지로 떠돈답디다. 갈 수 없는 것인지 발길을 끊은 것인지 그것까지는 모르것소만은 그믐날 고향땅은 못 밟아도 고향 냄새나 맡아볼까 홍어국시를 자시는 것이것제라. 솔직헌 말로다가 나가 맹글었다지만 그것이 뭐 밸난 맛이 있것소. 다 떠나온 고향생각 매운 콧물 맛이지라. 


동상덜얼 너릿재 넘어 춘양 집에다 바래다주고 나는 서둘러 광주로 되돌아와서 시민군이 되얐소. 말이 거창해서 시민군이제 학상덜이랑 모다 젊은 사람덜이 트럭을 타고 있응께 나도 욱헌 맴에 그냥 올라탄 것이제 벨거 없소. 나 몸띵이 상허고 뭣허고 그란 것은 뵈덜 않고, 우선에 잘못된 동상년허고 뇌송벽락이라도 맞은데끼 꼬실라지고 까불라진 광주밲이는 뵈는 것이 없습디다. 나가 강단이 있어 뵈고, 차마 동상년이 못된 짓얼 당했다고 말언 못 혔지만도 뭔 원한이 단단히 밲앳는 것을 알았는지, 즉석에서 맻번 쏘는 연습을 시키등만 카빈총 한 자루럴 내줍디다. 등어리에다 그놈을 짊어진께 없던 의협심도 생기고 솔찬히 묵직헙디다. 솔직헌 말로다가 총얼 들기는 들었소만 그 총얼 군인덜헌티 쏜다고 생각헌께 더럭 겁이 납디다. 동상년 당헌 것이나 죽어나간 사람덜이나 돌아보자믄 여축없이 쏴 죽에야 맞것지만 사람 맴이 어디 그랍디여. 나만 그란것이 아니라 총은 들었어도 한 번도 쏴보덜 못헌 시민군덜이 태반일 것이요. 말이 쉽제 생전 지대로 쌈박질 한 번 해 본 적도 없는 민간인덜이 뭔 사람헌티 총질이다요. 그렇게 군용트럭얼 타고 돌아다님서 구호도 외치고 애국가도 부르고 부상자도 실어 날리고, 속안에 맺힌 피멍을 토해냈것지라. 그란다고 원한 맺힌 뿌랑구가 빠지는 것은 아니것지만 이라다 죽어도 좋다 싶은께 이런저런 생각이 안 듭디다. 매칠 그렇게 댕기던 참에 산수동 굴다리 옆이서 차럴 받치고 조까 쉬고 있었을 것이요. 아매 그때가 정때 쪼까 지났을 땐가 그란디 뭔 아짐씨덜이 큰 소쿠리에다 삶은 국시를 들고 옵디다. 묵은지에다가 고추장 양념을 퍼붓고 국시를 비빌 요량인가 양은 다라이까지 내오고 야단입디다. 근디 또 한 아짐씨가 핑- 허니 집으로 가드만 석작 뚜껑에다가 삭훈 홍어를 들고 옵디다. 우리 새끼던 고상헌디 요놈이라도 썰어 믹애야 내 맴이 편허것다, 허등만 여런이 붙어서 껍딱을 벳기고 살얼 볼라서 썰어냅디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것소만, 홍애랑 국시랑 항꾼에 비배블먼 어쩌것소? 했것지라. 말마따나 비벼놓고 본께 홍어는 홍어대로 씹는맛이 있고 국시는 국시대로 갱기는 맛이 있어서 영 개미가 있더란 말이요. 모다 총얼 바차놓고 입술이 벌겋게 묻어나도록 홍어국시럴 허천내는디 참말로 난리통에 입맛이 살아나는 것이 당최 부끄러울 정돕디다. 국시그릇에 코를 박고 한참을 목구녕으로 퍼 넣는디 누군가 내 입술얼 소맷자락으로 살포시 닦아줍디다. 낯빛이 해부꼬롬 헌 대학상 오빠가 살째기 웃음서 나럴 바라보는디 워메워메 가심이 터져블까 무섭습디다. 아무리 그란다고 소맷자락으로 입술 한번 씰어줬다고 그라고 가심이 뛰까라. 그때보텀 그 대학상 오빠럴 똑바로 쳐다보던 못혀도 노상 뽀짝 옆이서 삥아리새끼맨치로 붙어 댕겠소. 그 오빠가 나럴 챙겼는지 나가 따라붙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참말로 옆이 있으믄 아시시 허니 당최 다리가 풀려서 심얼 못쓰것더란 말이요.   


질로 존 놈으로 홍어를 써요. 홍어를 잘 삭후믄 냄새는 나도 살이 물커지든 안해라. 긍께 숙성 되는 것이제 썩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요. 잘 삭화진 홍어를 자셔보믄 영 찰지고 쫀득쫀득 헐 것이요. 입안에서 화- 헌 기운이 돌다가 코를 뻥- 뚫으니 그것이 뱃속에 들어가믄 어쩌것소. 폐일언허고 이보다 더 좋은 소화제는 없다 그 말이지라.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약국 가서 소화제 사 잡술라 말고 속는 셈 치고 잘 삭훈 홍어 한 점 사 잡사 보쇼. 십년 체증도 쑥- 내려갈 것이요. 사람이 뭔 음석얼 묵는가에 따라서 성정도 달라지데끼, 그쪽 사람덜도 똑 삭훈 홍어맨치로 묵을수록 짚은 맛이 나고 소화제 맹키로 내 것으로 넘 살피고 그래라. 나도 아요, 팩- 허는 소가지로 졑에 사람덜 가심 쑤시는 소리럴 곧잘 헌다는 것얼. 어쩌것소 나도 울 엄니헌티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인디. 얘, 그쪽 사람덜? 내 말 드끼요? 이참에 그 팩- 허는 성질머리 좀 단도리 혀서 넘덜 맴 상허게 허덜 맙시다이. 홍어장시 반평상에 는 것이라고는 요 주름허고 새살밲이 없소. 쪼까 시끄러도 그란갑다 허쇼. 홍어 허믄 앳국인디 빠지믄 서운허것지라. 그란도 보릿잎싹 새파란 놈으로 구해다 놨소. 홍어애가 홍어간인 줄은 알지라? 배럴 갈라보믄 넙덕허니 솔찬히 크게 들었소. 그놈을 잘 발라서 깨깟이 씻어 바치고 촌된장얼 준비허요. 넘덜언 어짠지 모르것소만 나는 홍어애허고 된장허고 냄비속에다 넣고 조몰조몰 손으로 치대요. 그라믄 된장조차 홍어애조차 버무러져가꼬 영 구수허요. 발라논 홍어 빼따구를 항꾼에 넣고 끼래도 영판 만나요. 다른 것도 그라것지만 홍어도 내뿔 것이 없는 생선이요. 요새는 껍딱을 과서 묵으로 해 묵으믄 항암에 좋다고 더러들 그렇게 자십디다. 홍어애국이 끓어오르믄 지켜서서 연해 거품을 거둬줘야 허요. 넘쳐블믄 양념한차 딸려나감서 맛까장 딸려나가븐단 말이요. 한참을 끼리다가 새파란 보릿잎싹을 넣소. 그것이 요새말로 신의 한수요. 어짜믄 느끼헐수도 있는디 보릿잎싹이 그 느끼헌 맛얼 깨끔히 잡아준다 그 말이요.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홍어찜이요. 날개가 살이 많은께 날개를 찜솥에 올려놓고 푹 한번 쪄지믄 양념장얼 찌뜰고 또 한번 찌요. 홍어가 가시가 없고 살이 많은 생선이라 찜허기 딱 그만이요. 홍어전이랑 홍어튀김도 있소만 근천시런께 이 세가지만 헐라. 손님도 없는디 뭣땀시 그렇게 준비를 허냐고라? 손님 중에 질로 귀헌 손님헌티 낼 대접헐라고 그러요. 나가 홍어장시 30년 넘어 한 번도 거른적이 없은께 나헌티는 질로 귀헌 손님이것지라.          


낮에 군용트럭을 타고 댕기다가 저녁에 학동 집이서 잠얼 자는디 영 눈이 안 깽깁디다. 그 대학상 오빠 얼굴이 아린거리고 어서 날이 밝아서 또 만나고 잪고, 참말로 애가 탑디다. 그라다가 또 정신이 들먼, 이 백여시 둔갑헌 년아 이년아 니 동상년이 그 지경이 되얐는디 지금 니가 뭔 숭헌맴으로 사나를 품속에 끌어들이냐 오살년아, 뽈딱 인나서 찬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도로 눕고 했지라. 이녁덜도 아시것지만 그란다고 한번 댕겨진 불이 쉽게 꺼질랍디여. 얼매나 열이 오르든가 깔고 누웠는 솜이불이 다 축축헙디다. 젊어서 그란가 몸띵이가 불덩어리맨치로 뜨겁습디다. 그란디 참말로 대문 앞이서 오빠 목소리가 듣낍디다. ‘광순아! 광순아!’ 부르는디 나가 미쳐도 보통으로 미친것이 아니구나 싶습디다. 그 밤에 오빠가 나 집얼 어찌 알아서 대문 앞이서 이름을 부를 것이요. 배고픈 다리 뽀짝 옆이 파란 철대문 기와집이 산다고 허기는 혔소만 설마허니 그 난리통에 거그를 그 밤에 찾아오것소. 그란디 쪼매 있다가 또 ‘광순아! 광순아!’ 그란단 말이요. 나도모리게 뽈딱 인나가꼬 방문을 열고 ‘오빤가?’ 혔지라. 가심은 꽹매기럴 쳐대고 어째야쓰가 정신은 없고 신얼 신는동 마는동 대문을 열었는디, 참말로 맴이고 몸땡이고 꼼짝없이 오무락딸싹을 못 허것습디다.


정월 초하루 첫차를 타고 매년 댕겼지라. 누가 알까 싶어서 그냥 혼자서 일찌거니 나서서 댕겨 오요. 그것도 한 30년 넘어 허다본께 오늘 장사허데끼 암시랑토 안헙디다. 3단 찬합 질로 밑동에 홍어 썰은 놈허고 돼야지괘기 삶은 수육허고 묵은지를 담소. 수육은 어찌녁에 미리 삶아 놨소. 조까 굳어야 꼬독꼬독 허니 지름이 꼬숭께. 홍어랑 수육을 묵은지에 돌돌 몰아서 항꾼에 묵으믄 참말로 맛나것지라이. 맞소, 아시데끼 삼합이지라. 그놈얼 입 속에 넣는 모냥을 보믄 내 맴이 얼매나 오지것소. 아매 나럴 솔찬히 지다리고 있을 것이요. 나가 보고 잡드끼 나럴 안 보고 잪것소. 그려 맞소, 나보다 콧구멍 톡- 쏘는 이 홍어럴 더 지다리고 있을 것이요. 삭훈 홍어 묵고 삭훈 야그를 풀어내자믄 시든 가심까지 안 팽팽해 지것소. 홍어무침 허고 삶은 국시는 두 번째 칸에 옆옆이 담소. 국시가 쪼까 불어터져서 덜 맛나것지만 그라도 정성인께 거그서 항꾼에 비비요. 산수동 굴다리 밑이서 총 바차놓고 묵던 홍어국시 맛에 어디 비헐랍디여만언, 추억으로 묵고 의리로 묵고 정으로 묵고 눈물로 묵지라. 솔직헌 말로다가 나가 30년 넘어 홍어국시를 비볐을망정 제우 그 아짐씨덜 숭내만 내제 죽도락 그 맛을 못 따라갈 것이요. 안 그러것소? 그 난리통에 사람 살리니라고 내 것얼 공짜로 내준 그 맴얼 어찌 따라갈 것이요. 세빠닥 놀릴 것도 없이 택도 없제라. 젤로 웃칸에는 홍어찜을 언그요. 참말로 안 자셔본 분덜언 꼭 권해드리고 자픈 음석인디 연허고 보돌보돌헌 것이 게살 맨치로 영판 맛나요. 특히 이빠지 없는 어르신덜 잡수기에는 영 그만인께 젊은양반덜 귀담아 듣고 꼭잠 해드리시요이. 인자 보온빙에 앳국만 채우먼 준비는 다 되얏소. 막걸리도 맻빙 사야허는디, 입에 맞는 놈으로 사야 쓴께 걱서 무등산 막걸리로 사믄 쓰요. 요래 일절 준비럴 해가꼬 내일 초하룻날 첫차럴 타요. 기차를 타는디 쉬 가는 놈 말고 꼭 더디 가는 놈으로 타요. 핑- 안가고 는작는작 부러 더듬어 갈라그러요. 이생각저생각 오직 생각헐 것이 많것소. 그라도 영 아프기만 헌 것은 아니라서, 이날 이때껏 살아가는 심이 그것이기도 혀서 발이 영 무겁던 안허요. 


오빠가 말이요이. 오빠는 대문 밖에 없습디다. 나 맴 열데끼 대문을 폴짝 열어 제꼈는디 휑- 허니 바람만 불어라우. 손으로 대문을 연 것이 아니라 폴딱거리는 가심으로 대문을 열었는디 거그 오빠가 없었어라. 대신에, 시커먼 뭣이 나럴 확- 잡아챕디다. 대문 밖으로 훅- 딸려나감서 땅바닥에 지대로 처백혀 브럿지라. 물팍 조차 이마빡 조차 께껴브러가꼬 껍딱이 벗어졌는디 씨런지도 어짠지도 모르것습디다. 아직 벌떡거리는 가심에 섬뜩허니 무섬증이 포개집디다. 멀크락이 바늘 끝 맨치로 뽀깡 솟고 사지가 바르르 떨리는디 뭔 일이당가 싶습디다. 몸띵이가 독뎅이맨치로 굳어서 비명 조차 나오덜 안는디 사람이 아니고 기냥 썩은 고자배깁디다. 자빠진 나럴 양쪽에서 두 놈이 폴얼 비틀어 감고 일차세움시로 골마리럴 단단히 틀어쥡디다. 기냥 맥이 탁 풀래가꼬 질질 끌려갔지라. 맞아서 다리빙신도 아닌디 아무 심얼 못 쓰것습디다. 볼쎄 맴에 겁이 들어찬께 손발이 움직거리덜 안 헙디다. 행길에 시커먼 지프차가 세워졌는디 그 뒷자리에 나럴 궤짝 부리데끼 띵게븝디다. 시커먼 밤중에 워디로 띠메가는 중도 모리고 끌려갔지라. 사람이 사람얼 그라고 때리고 사람이 사람헌티 그라고 맞을 수가 있으까라. 지하실에 처 넣둥만 참말로 처죽을 만치 때립디다. 한쪽 눈언 깽껴브럿고 배때기럴 잘못 맞았는가 하혈이 터져가꼬 핏물이 줄줄 흐립디다. 난중에는 피가 썩어가꼬 서답 묵은 내가 난께 옷얼 싹 벳기등만 호스로 물을 찌끄러라. 개돼지럴 그라고 씻기까라. 어디럴 개리고 말고 헐 것도 없이 뻣뻣허니 서서 찬물얼 맞았지라. 산 송장이라고 말만 들었는디 참말로 산 송장입디다. 너무다 억울허고 답답허고 심이 폴린께 눈물도 모릅디다. 가심이 보타져 몰라브렀는디 뭔 눈물이라고 맹글어지것소. 모다 구접스럽고 근천시러서 기냥 죽고자픈 생각밲이 안 듭디다. 그것덜언 역부로 나 거시기에 물얼 뿌려댐서 처녀가 맞다 처녀가 아니다 시시덕거립디다. 사람얼 갖고 논 것이제라. 그란디 나가 참말로 비참했던 것은 그놈덜 눈얼 지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어라. 그놈덜도 사람이 아니었은께라. 군용 모포 한장 뒤집어쓰고 취조를 받았지라. 나럴 고정간첩헌티 포섭된 ‘내란 간첩’ 이랍디다. 난중에 본께 거그가 쌍촌동 ‘보안사령부’였습디다. 시방도 생각나는 것이 지하에 방이 8개 있었는디, 그 방문에 ‘보안을 생활화 합시다’ 그러코롬 글자가 백혀 있습디다. 나넌 이미 빼도박도 못헐 간첩으로 둔갑해 있습디다. 그 증거로 ‘현 정부를 따르느니 김일성을 따르겠다’라는 말을 나가 까불르고 댕겼고, ‘로케트 전기’에도 내란선전선동을 목적으로 위장 취업했다고 적혀 있습디다. 뒤로 수갑얼 채우고 폴뚝 뒤로 곤봉을 끼워서 두 놈이 나럴 들고 나가기도 혔는디, 그때 본께 항꾼에 군용트럭을 탔던 사람덜이 여럿 보입디다. 긴간민가 내동 맴 복잡시럽던 생각이 그때사 굳어집디다. 잽혀 들어올 때 말이지라이, 지프차에 찌그러진 채로 다리꺼리를 건너는디, 난간에 선 어떤 남자 입에서 반짝 불이 볽아지드니 희미허게 낯짝이 빕디다. 아매 담배럴 태고 있던 중이었을 테지라. 맞다 싶음서도, 설마 그이가 오빨라디야 혔는디 잽혀 들어온 사람덜 얼굴얼 본께 그런갑다 싶습디다. 몬차 잽혀들어 왔다가 혼자 살라고 다른 사람덜얼 폴았겄지라이. 참말로 그때는 가심이 떨림서 몰랐던 눈물이 찌걱거립디다. 차라리 다리꺼리에서 오빠를 보지 말았더라믄 어쨌으까 싶기도 허고, 오직 겁났으믄 그랬으까 동정이 되기도 헙디다. 그라다가 또 부아가 치밀어 오르믄 방안퉁세 삐비껍딱 같은 놈이 ‘우리 항꾼에 새날얼 맹급시다’ 나불대던 아구창얼 날래블고 싶습디다. 나가 거그서 영금얼 보고 있을 때 춘양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헙디다. 사복경찰덜이 증거럴 찾것다고 집뒤짐을 험스로 간첩딸년 집안이라고 온 마을에 짜- 허니 소문얼 냈답디다. 촌사람덜 간첩이라믄 구신보다 무서라 허든 시절인께 볼짱 다 본 것이제라. 하룻새에 간첩 집안으로 풍문이 돌아서 이웃제 사람덜 발길이 끊기고 구설에 오르게 되얐은께 집구석이 시난고난 짜부라져 브럿지라. 그새 나넌 15년 형얼 받고 광주교도소에서 옥살이럴 했지라. 얼추 2년얼 살고 풀려났는디 집에 가본께 아부지는 술독에 빠져서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엄니는 폭삭 삭아서 할매가 되브럿습디다. 여동상은 정신이 오락가락 허다가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서 어디 있는 중 소식도 모른하고 허고, 남동상은 버짜 맹키로 입얼 딱 닫아브렀습디다. 참말로 뭣땀시 집안이 이모냥으로 깨박살이 났는가 물어볼 디라도 있으믄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습디다. 아부지 메뚱얼 찾아가는디 차마 올라가덜 못허고 논배미 짚베늘에 지대고 한참얼 울었소. 아부지 돌아가신 것도 집안 작살난 것도 모다 내 죄 같아서 발이 떨어지덜 안헙디다. 당최 그짝에서 살 자신이 없어서 무작정 멀리 떠났지라. 그란디 어디럴 가던지 거시랑마냥 보안감찰이 나 발모가지를 잡읍디다. 공장에럴 가도 청소일얼 댕겨도 하다못해 셋방 집주인헌티까정 나 뒤럴 케고 다니는디 온전히 살 수가 있어야지라. 참말로 사람 눈허고 입이 무서와서 나댕기덜 못허것습디다. 아무도 없는디 숨어살았으믄 좋것다는 생각얼 날마다 혔지라. 그라다가 오기가 생깁디다. 나가 부끄럴 것이 뭣이고, 숨어 살 것이 뭣이냐 싶어서 ‘배고픈 다리 밑에서 홍탁’ 간판걸고 홍어장시럴 시작헌 것일제라. 


인자 전방 소지 허고 간판 불 내려야 쓰것소. 낼 일찍 첫차럴 타자믄 괭이잠이라도 자야 헝께라. 망월묘역에 가믄 반가운 얼굴덜이 날 지다리고 있소. 지금이사 요래 세월에 치어 늙어브렀지만 그때가 질로 가심 뛰던 때가 아니었등가 싶어라. 아프기도 허지만 평상얼 그때 기억으로 살아가요. 그 오빠는 말이제라이 후제 죄 닦음 허니라고 민주화운동 치다꺼리 허다가 일찍 술로 죽었답디다. 아메, 술 아니믄 아파서 젼디덜 못혔것지라. 그이도 거그 잠들어 있소.





*손병현 199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저서 『해 뜨는 풍경』(소설집), 『내 곁에 유령』(장편소설), 『동문다리 브라더스』(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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