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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신작시/강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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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69회 작성일 08-02-2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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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식

낡은 집


그해, 유월 어느 날
하늘에는 탐조등 같은
번개가 쳤다.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강원군 태백산골의
초가집 싸리 울바자에 꽂아든
人共旗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빈한한 농가였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의 발소리
밤비가 철버덕댔다.
하늘에는 조명탄 불빛의
번개가 터졌다.

초가집 식솔들은
아무런 사상도 없었다.
남과 북, 어느 편도 아니었다.
불온한 사상가도, 반동분자도
정말 아니었다. 그저 농사꾼이었다.

야밤에 들이닥친
국군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날벼락이었다.
밤에는 人共旗
낮에는 太極旗를 걸던 시절이었다.*

방바닥에는 선연한 피빛이 낭자하였다.
산 그림자 어둑해지자
“아빠, 기를 내달아야지예”
막내딸아이의 천진한 말 한마디
참변을 불러왔다.

미쳐 자신을 돌아볼 새도
돌아보아도 별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늘의 거울인 번개가 빈 집을
허깨비처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날 새도록 억수로 슬프디슬프게
가슴을 타앙 탕 사태지게 치면서
비만 퍼부었다.

막내딸아이가 가꾼 꽃밭이 보일 때까지
꽃밭 속에 그 아이의 마음결처럼 고운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꽃들이 보일 때까지
아, 비만 울었다.
*유치환 「旗의 意味」 속의 구절 ‘어제는 人共旗 오늘은 太極旗’ 변용

강우식․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벌거숭이의 방문󰡕 등, 시론집 󰡔절망과 구원의 시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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