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1호 신작시/이현승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02회 작성일 08-02-29 02:03

본문

이현승


꼬리
―용의자 P


내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마녀에 대해 들어볼 테야?
일종의 도루 같은 거야 생각을 훔치는 것
비약적인 점프가 이루어지기도 하지
말과 생각 사이로 마녀가 들어오는 바람에
말의 꼬리를 놓치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꼬리는 일종의 물증이라고 할 수 있어
그건 마치
반바지 아래로 높게 올라와 있는 양말과 같아
바바리맨의 알몸 그리고 검정 양말

마녀에게 꼬리가 있을 거라는 상상은 공상이 아냐
특별한 사람에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지
마녀로 지목된 여자들은 제일 먼저 발가벗겨지고
꼬리 검사를 받았어 물론 다음 수순
그녀들은 줄곧 꼬리를 어떻게 감추었냐고 고문 받았지만

시장통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용의자처럼
그때 그만큼 뛰어가서 언제나 보는 것은
빗자루를 올라탄 그녀의 엉덩이뿐
삼십 분의 일 프레임으로 지나가는 코카콜라광고처럼
본 것 같고, 분명히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입산 수련자들은 계속해서 알몸요괴를 보았다고 하고
이 동네엔 가끔씩 인도코끼리가 민가를 들이닥치곤 하지
한 삼십분의 일 프레임 정도로.



늑대가 나타났다


대화가 없는 식사란 이런 것이군
침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늑대는 게걸스럽고,
늑대는 거칠고,
늑대는 무례하고,

그러나 당신의 식사가 식탁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듯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없는 건 그 게걸스러움 때문이죠
늑대의 식성 앞에서 가족들의 식사는 용맹하죠
악어의 입에 자신의 머리를 넣는 곡예사처럼요
겁에 질린 낙타처럼 밥통을 꺼내야 할지도

늑대는 늘 배가 고프고
그러니까 늑대는 늘 도망 중이고
결과적으로 늑대는 일과 휴식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식욕을 가지고 있지요
―중력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세요
식사 중 여행이거나 여행 중 식사이거나

여하튼, 굶주림이 없이 늑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곤란해요
포만감으로 충만한, 노래하는 늑대를 본 적이 있나요?
그건 늑대가 아니라 기타겠지요
기타만이 공복을 포만감으로 바꿀 수 있어요 기타 부기 기타 부기
기다림이 없이는 늑대를 이해할 수 없지요
음악이라도 좀 틀어놓을까요?



이현승․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추천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