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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신작시/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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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63회 작성일 08-02-29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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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노을․景
―박수근


늦가을 해질 무렵
노인 셋 방앗간 담벼락 앞에 붙어 벽화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늙으신네들이 함께 오줌발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알곡 익히던 땡볕의 시간 건너와
의지가지없는 석양빛 등에 진 모습들 따뜻하다
회백색 담장에 그려지는 그림이 영 시원치 않았든지
옆 그림자 힐끔거리던 한 노인 다시금 붓대를 곧추세운다
어떤 彩色도 녹슨 쇳조각 같은 저녁
지나던 개가 곁에 붙어 다리 치켜드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싱겁게 한마디 던지는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디 멀다, 멀어……


        *박수근 화백의 마지막 말.



매화를 치다


노인정 뒤뜰 매화나무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화투 치며 내다보고 장기 두다 건너보며
눈도 털지 않은 매화나무에 눈도장 찍으시네
겨우내 잠자던 꽃망울 불러내어
매화를 치네

꽃이 피었다 진 뒤에도
마음은 종일 나무그늘 아래 서성거리네
손자새끼 불알 쓰다듬듯 매실을 키우시네
노인정 선반 위 유리병 안에서
파릇파릇
봄날의 기억들이 매실주로 익기도 전에
한 노인이 매화나무 뿌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네
아무도 울지 않았네
바람 불고 낙엽 지고 또 눈 내리는 날에도
난초 단풍 뒤집고 바둑 장기를 두었네
이별을 이야기하지 않았네

새봄,
겨우내 얼려두었던 눈물을 펼치네
잔설이 성성한 화폭 위에
다시 매화를 치네.



이영식․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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