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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신작시/반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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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44회 작성일 08-02-2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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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연희


불완전한 벽


세상을 가로지르는 벽
그 벽은 아버지

나는 벽이 되기 위해
쌓이다 만 벽돌
와르르 무너져 아버지의 뒤통수를 갈길

신들의 무거운 입을 받쳐 들고 있는 아버지
누군가 나를 아버지의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아버지의 입 속에 숨겨진 어머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잇는 모서리
신들에 의해 잠겨진 어머니를 꺼내는 열쇠
내 몸을 열어 고귀한 어머니를 꺼낸다

나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 꿈꾸고 있는 방 하나의 상징




미로를 통과하는 연습


두고 온 내가 이사한 집에 두고 온 나를 생각하며 토하고 싶은 밥을 구겨 넣고 나에게 잊혀진 내가 가방 속에서 수첩을 뒤적이고 수첩 속에서 지워진 이름들에게 전화를 걸고 나에게 버려진 내가 사물함 속에서 열심히 붓질을 하고 나를 두고 온 나는 지금의 나를 버릴 생각만 하고 내가 없는 나는 날마다 잠만 자고 잊고 싶은 나는 사진첩에서 튀어나오고 사라진 나는 꿈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달래고 울고 있는 나는 손수건으로 액자 속의 나를 닦고 내 속에 쌓인 먼지를 닦고 닦아 얼룩을 지우고 내가 달려온 길들을 지우고 내가 살던 집을 지운다 그 집에 숨어살던 많은 나들이 나를 에워싸고 지워지는 집 밖으로 나를 떠민다 길과 길들이 엉켜 끝을 알 수 없는 곳, 미로를 향해 걷는다 또 다른 집으로 간다



반연희․
1969년 경남 사천(삼천포) 출생
․2001년 ≪다층≫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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