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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서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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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성
물구나무서기
15평 다세대주택, 그들의 옥상에는
생활의 때가 묻은 청바지가 나란히 줄지어져 있다
무거운 하늘을 이고 걸었던 탓일까
빨랫줄에 매단 두 다리가 힘겹게 뚝뚝 눈물을 흘린다
햇볕 쨍쨍한 오후 2시, 소박을 맞은 듯 바닥이 흥건하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내일 찬거리가 걱정인 그들은
쥐새끼들이 들락거리는 다락방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피다 버린 꽁초를 찾는다
3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은
압류딱지가 붙은 스위치만이 그 명맥을 유지할 뿐.
뻘건 대낮인데도
지뢰밭을 걷는 듯 발걸음은 폭발 직전이다
1시간이나 지탱한 소름과 소름에
긴장과 긴장의 대결에서 나는, 그만 정신을 잃는다
잘못 밟으면 똥물이 튀길 위기에 있는 골목길은
어둠에 지친 30촉 가로등이 그들의 하루를 대변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구세대는 물러가라 지역주의파괴 학력파괴 가격파괴
파괴, 파괴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라
곰팡이로 찌던 세상을 한방에 파괴하는 것임을.
땡볕에 말린 발바닥은 여전히 따갑고 간질간질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명제는 사라졌지만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붕어빵 아저씨를 기다리며
뭉게구름 양떼구름을 그렸던 오늘밤, 그들은
갑자기 불어나는 홍수에 물 퍼내기에 한창이다
vj특공대
택시를 하는 동생은 늘 한숨이다. 처음에는 지구를 돌릴 듯이 핸들을 돌리더니, 지금은 그 큰손이 10원짜리 동전 몇 푼을 세다 잠이 든다. 어떤 날은 다리가 아프다고 몸살을 앓는가 하면 어떤 날은 반가운 손님이 타는지, 어디까지 가세요 오늘 날씨 너무 화창하죠. 웃음이 귀에 걸린 채 잠꼬대를 한다. 습관성에 길들어진 아침은 6시에 울리는 자명종시계보다 빠르고, 망부석 같은 당신은 차조심 사람조심에 주름져 간다. 콜록거릴 때마다 잔돈주머니를 맨 어깨는 한 옥타브씩 처지고 그럴수록 당신은 숨 가쁘게 거리를 나선다. 시장을 가든지 버스를 타든지 당신은 집 나간 아들 생각에 달리는 택시를 놓친 적이 없다. 사납금은 맞췄나요, 이런! 기름값은 정신없이 날뛰고. 대기 중인 택시가 지구를 몇 바퀴 돌릴 참이다. 뜬눈으로 하루를 지샌 당신은 전화를 걸다 만다. 꾹꾹 눌러 담은 찰밥은 몇 겹의 이불에 묻힌 채 굳어져 가고. 천장이 무너지는 한숨에 놀란 당신은, 동생에게 쓴 소주잔을 내민다.
서화성․
200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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