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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외국문화순례/서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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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순례|
생각 속에 잠긴 언어로 세상을 노래하다
―뽈 끌로델(Paul Claudel)의 작품세계
서석돌|문학평론가
1.
‘세상’을 “한 손에 쥘 수 있는 사과”처럼 완벽하게 소유하길 원했던 사틴 구두의 주인공 로드리그(Rodrigue)! 그의 욕망은 정녕 끌로델의 것이었으리라. 그보다 35년이나 앞서 황금 머리의 젊은 정복자 떼뜨도르(Tête d'Or) 역시 ‘무한한 세상’을 얻기 위하여 “나는 걸을 것이다.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장애물들을 나의 발아래에 밟아 뭉개어버릴 것이다. 나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나약한 저항들을 꺾어 버릴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끌로델은 이 주인공들처럼 과격하지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지도 않은 선량한 모험가였다. 그는 그저 세상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세계를 쉼 없이 탐구하였으며, 그가 원했던 사과를 쟁취하기 위하여 한 알의 묵주알을 마음속에 주워 담듯이 세상의 언어들을 생각의 주머니 속에 하나씩 채워 넣었던 작가이다.
노년의 뽈 끌로델시인이자 극작가인 뽈 끌로델.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문학가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훌륭하고 대단한 흔적을 남긴 작가이다. 하지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우리에겐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누이인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조각가, 1864-1943)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뽈 끌로델을 얘기할 땐 ‘까미유 끌로델의 동생’으로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까미유 끌로델을 ‘뽈 끌로델의 누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짧은 글에서 끌로델의 작품을 살펴본다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요지의 파악일 수밖에 없음을 주지하여야 한다.
2.
끌로델은 20세기의 프랑스 문단에 상징 주의적 문체 그리고 기독교 문학의 대표 주자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자연의 존재적 가치와 그 속에서 발견한 지혜를 통하여 초자연의 세계로 그의 영감은 확장되었으며, 그가 되새김질한 투박한 언어는 시인의 생각과 영혼의 물레에 담금질되고 새롭게 엮여 어느새 잘 정돈된 시어(詩語)로 탄생하였다. 세상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호기심은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자극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끌로델이 세상에 알려지고 문단에서 그의 위상이 더욱 커지고 정립된 것은 어쩌면 그의 시작(詩作) 활동보다도 황금머리, 정오의 분할, 사틴 구두로 이어지는, 20세기 프랑스 연극에서 간과할 수 없는 풍성한 양질의 극작품들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언어는 그의 희곡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중세적 웅장함이 더해지는 서사적 언어로 극의 문학적 깊이를 한층 더 진보시킨다.
포플러나무는 우리의 머리 위에서 가늘게 흔들거립니다. 달이 떠오릅니다.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나의 눈으로 그리고 나의 생각으로, 번갈아가며, 환하게 밝은 공간을 바라봅니다.
오! 충만한 바다의 광채여,
거대한 구름의 그림자가 빛나는 고독위에 그림을 그려가고 있을 때에.
나는 당신을 경배하오. 오! 밤의 여왕이여!
―도시 중에서
도시에서 시인으로 등장하는 쾌브르(Coeuvre)는 끌로델의 분신으로 나타난다. 끌로델은 말한다. 시인은 “원하는 대로 말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몽롱한 잠의 기억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쾌브르는 그러한 작가의 훌륭한 대변자로서 난폭함과 절망의 기운으로 잠식된 도시의 1막에서 희망과 기쁨의 언어로 노래한다. 시란 기계적 사고의 표현이 아니라 영감의 새로운 탄생임을 작가는 간접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의 희곡 작품은 장엄한 한 편의 장문의 시(詩)이기도 하다. 그의 처녀 장막극은 현대 프랑스 연극의 거장의 출현을 알리기에 충분하였다. 1889년, 끌로델은 황금머리를 그리고 2년 뒤에는 도시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에게서 우리는 분노하는 욕망, 즉 소유와 파괴에 대한 상반된 주인공들의 요구를 발견한다. 황금머리를 읽고 난 후, 당시 상징주의 문학가 메테를랭크가 쓴 편지에서 그가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을 엿볼 수 있다.
…… 나는 이보다 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네. 그것은 마치 로트레아몽 백작이 부활한 것 같더군. (……) 나의 방에 거대한 괴물을 가지고 있는 듯해. 이것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은 놀라운 천재이거나 아니면 몹시 분노한 미친 사람의 작품이야. ……
―「알베를 모케르에게 보낸 메테를랭크의 편지
Lettre de Maeterlinck à Albert Mocker」 중에서
끌로델에 있어서 작가로써의 힘의 원천은 곧 신의 실제적인 존재였고, 세상을 보는 것(voir)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알아가려는(connaître) 욕구가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끌로델은 당시 샤를르 뻬기(Charles Péguy, 1873~1914)와 더불어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기독교 문인으로서 끊임없이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기쁨에 도달하고 결국 그것을 소유하고자 무단히 노력하였다. 시인으로써 그는 언어에 형태와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극작가로서 그는 등장인물들에게 공간과 자유를 부여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굶주림과 갈증”(즉흥의 회상)을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모험과 창조적인 깨달음을 통하여 세상을 알아가게 하였다.
오 나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여, 오 이제는 총체적인 세계여! 그대에게 인사하오.
오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완전한 크레도여, 그대를 신자의 가슴으로 맞아들이오.
내가 어느 쪽으로 얼굴을 돌려도
나는 창조의 위대한 대축일을 마주하오!
세계는 열리고, 제아무리 넓다지만 손바닥 안이오,
나의 시선은 세상의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가로지고 있으니.
힘센 두 남자가 그들 어깨 위의 장대에 커다란 양을 매달듯이
나는 태양의 무게를 달았다오.
―「성령과 물 L'Esprit et L'Eau」 부분,다섯 편의 대찬가 Cinq Grandes Odes
3.
끌로델은 그의 가족 중에서도 큰누이였던 까미유와 매우 가까웠다. 예술적 영감이 그 둘의 혈육의 정을 더욱 끈끈히 엮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까미유는 어릴 때부터 마을 어귀의 진흙을 가져다 만지고 다듬고 형태를 만들며 후일 프랑스 조각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재능을 싹 틔우고 있었다. 일찍이 어린 딸의 예술적 감각을 발견하였던 아버지는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까미유 끌로델의 요구에 의하여 그의 가족들은 파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녀는 그 후 프랑스 조각계의 대가 로댕과의 만남으로 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은, 로댕의 모델이자 조수가 아닌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의 탄생을 낳았지만, 운명은 그녀의 영광과 행복을 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로댕과의 이별, 여성 조각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난에 가까운 비평, 전시의 실패, 예술적 영감을 로댕에게 도둑맞았다는 그녀의 피해망상 등은 그녀를 광기 속에 가두고 말았다. 결국 까미유 끌로델은 30년이란 긴 세월을 정신 요양원에서 보냈으며 미처 웅비하지도 못한 채 부러진 날개처럼 그녀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끌로델에게 있어 그의 누이는 예술적 동반자였으며 커다란 위안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다가온 그녀의 불행에 그 또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간직하였다.
누이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지만, 누이의 조각 수업을 위한 파리로의 이사는 끌로델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내 누이는 그녀가 위대한 예술가의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 그녀는 알프레드 부셰(Alfred Boucher)를 놀라게 한 작은 조각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 ; 그래서 아주 무서운 의지를 가진 내 누이는 우리의 모든 가족을 파리로 이끌고 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 결국 말하자면, 가족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바씨(Vassy)에 머물렀고 그리고 나머지 우리들은 빠리로 모두 옮겨갔다. (……)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내 인생에 있어서는 하나의 재난이었다. 왜냐면 모든 나의 생은 둘로 찢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즉흥의 회상 중에서
여행자 뽈 끌로델, 1932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동경에도 불구하고 시골을 빠져나간 그는 대도시 파리에서도 아무런 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더 ‘가장 부조리한 고독과 충고를 요구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러한 외로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파리라는 곳은 이내 그에게 있어 투쟁의 땅, 숨 막힘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오! 사슬이여, 오! 이 사악한 세상의 공포여!”(한 드라마의 단편 Fragment d'un drame)라고 그는 말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갈망하고 격렬하고 반항적인 다양한 경험들은 후일 젊은 시절의 드라마 황금머리와 도시에서 여지없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두 드라마는 끌로델의 영혼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랭보의 강한 영향의 흔적을 지니고도 있다. 세상에 반항하는 그의 욕망에 의해서, 도시의 주인공 아바르(Avare)는 랭보의 원초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바르는 도시를 삼켜버려야만 하는 불의 광란처럼 강렬하고 파괴적인 실현만을 구상하고 있다. 그의 욕망은 오로지 도시 전체가 불의 저주 속에서 한줌의 재로 남는 것이다. 도시의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끌로델은 동시에 혁명가로서, 격렬한 반항아로서, 인간에게 찬미가를 가르치는 시인으로서,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제로서 그의 연극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4.
끌로델은 1886년에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갖는다. 그 하나는 그의 문학적 사상의 ‘아버지’인 랭보와의 만남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신앙과 영혼의 ‘아버지’인 신과의 만남이다. 1886년 12월 25일 신과의 만남 이후로, 신으로부터 분리된 세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인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세상을 알지 못한 채 신을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은 작가에게 또 하나의 욕구로 남아 있었다. 신을 좀더 알기 위해 그는 그 창조물인 세상의 모든 것을 욕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욕망은 기존의 본능적인 욕망과는 한층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물론, 비단구두, 1924의 탈고가 끝나기까지 그 본능적 요소는 작품 어느 곳에든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욕망의 형태는 많이 억제되고, 또 다른 사회적 틀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져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보이는 것들(물질적인 것; 땅, 세상의 정복, 돈, 여자 등)을 소유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구를 드라마와 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끌로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결국 그러한 인생의 여정이 보이지 않는 것들(기쁨, 사랑, 영혼 등)에 도달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끌로델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의 소유욕과 그에 대한 집착 또는 의지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표출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그들의 강력하고 오만스럽고 때로는 난폭한 갈망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라캉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게 욕망의 대상은 불가능한 대상이 되었을 경우에만 다시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욕망이론)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끌로델의 작품에 나타난 등장인물들은 그 대상들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 대상은 그들의 눈앞에 있어 손을 뻗으면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고 여자이고 권력이고 재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라캉이 주장하는 것처럼 “욕망의 구조상 인간의 욕망의 대상에는 항상 불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지만, 끌로델의 인물들은 그 불가능성의 한계점까지 자신을 내던지며 정복하고 소유하려고 한다. 라캉은 햄릿을 분석하면서 “강박신경증 환자의 욕망에서는 충족 불가능한 것이 욕망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은 강박신경증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능적 현상으로 보인다. 끌로델의 등장인물들 역시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그 욕망의 대상이 여자가 되었을 경우에는, 끌로델은 현실과 종교적 윤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정오의 분할에서-그가 넘어버린 선, 즉 금지된 사랑인 이제(Ysé)를 사랑하면서, 그는 메자(Mesa)의 입을 통해서 “그 사랑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신[神]조차도 없었습니다.”라고 항변한다. 자신이 고통 받고 파멸되고, 그리고 자신의 주변인인 타인이 희생하는 아픔을 체험하기 전까지, 부족한 그 무엇을 채우려는 욕망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점령한 광활한 땅 끝을 보며, 그들이 소유한 여인의 육체를 품으며 만족하고 기쁨을 얻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황금머리에서 비단구두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끊임없는 과제인 듯 보인다.
5.
끌로델은 먼저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과 부딪쳐 만나야 하고, 세상의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알기(connaître)’를 원했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은 ‘그 자신을 알기(se connaître soi-même)’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스스로를 알기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시험과 같은 것은 충분치 않았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은 바라보고 있을 때면, 대부분은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면, 아무런 흥미 있는 것을 발견 못 하거나이다.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허구이다. 가짜인 것이다. (……) 한 사람에 대한 열쇠는 타인들에게서 발견된다.”라고 즉흥의 회상에서 그는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외형적인 직업은 외교관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세상을 향한 기나긴 여행의 욕망은 결국 직업으로 외교관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1890년 그는 외무성에서 실시한 외교관 선발시험에서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그의 고향 따르드누아를, 그리고 그를 그토록 짓눌렀던 파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고자했던 바로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였던 그것은 바로 떠나는 것이었다. 내가 바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나는 그것에 대한 아주 격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즉흥의 회상 중에서
그는 외교관의 신분으로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대륙, 그리고 유럽 등 세상 곳곳을 두루 여행하였으며, 그곳에서 영사와 공사, 그리고 1935년 벨기에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의 행보를 중단하게 된다. 새로운 문화의 발견은 그에게 더욱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의 능력을 부여하였다. 특히 동방의 발견은 그의 작품 곳곳에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1895년부터 수년간의 중국 체류는 동방의 체험 Connaissance de l'Est이라는 시집을 출간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끌로델의 구애는 곧 의무이자 열정적인 사랑이었다. 끌로델의 세계와 시인의 언어적 창조물은 다음 구절의 시에 나타난 완전한 욕망의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의 신이여,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이 물을 가엾이 여기소서!
신이여, 당신은 내가 오로지 정신일 뿐만 아니라 바로 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내 몸속에서 목말라 하는 이 물을 가엾이 여기소서!
(……)
내 몸속에 있는 모든 태양을 꺼내 주소서
당신의 빛을 보게 하소서.
단지 나의 눈으로 뿐만 아니라
나의 온 육체와 나의 실체
그리고 빛나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내 몫의 총체로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성령과 물 L'Esprit et L'Eau」 부분, 다섯 편의 대찬가 Cinq Grandes Odes
끌로델은 세상의 거대한 생명력 속에 그의 인생을 완전히 참여시키기를 즐겨하였다. 한시도 닫힌 공간 속에 머무르길 원치 않았고, 그곳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하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던 영원한 대기자였다. 그는 지도처럼 펼쳐진 이 땅의 풍성함에서, 이 거대하고도 겸손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음을 찬미하고 감사하게 여겼다. 그의 시적 언어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얻어진 우주적 영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끌로델의 극적 공간은 어느새 세상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지상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체험한 이 시인의 목표는 그의 등장인물들의 목표처럼 형성되어갔다. 선과 악을 분별해주는 것일 수도 있는 둥글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한 손에 꽉 쥐듯이, 한 손아귀에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6.
1900년, 젊은 외교관 끌로델에게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으로 떠나던 배 위에서 그의 인생에 태풍을 몰아올 한 여인을 만난다. 로잘리 베취(Rosalie Vetch)! 그가 체험하고 소유할 수 있는 약속의 땅과는 반대로, 그녀는 결혼한 여자였다. 즉 이 지상의 모든 것과 같이 신의 창조물인 그녀는 그에게 있어 ‘금지된 사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끌로델은 이 시험 속에서 여자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사랑이 그 어는 것보다도 더욱 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중년의 나이였던 끌로델에게 이 정열적인 사랑은 상징적인 정오의 시간에 불꽃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이 두 연인은 금지된 사랑에 헛되이 저항하였다. 정오의 분할의 집필은 그의 이러한 모험을 여실히 나타내 준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제(Ysé)는 곧 로잘리의 분신이었다. 어쩌면 비밀스런 고백처럼 써내려간 이 정열의 드라마는 명백히 그가 겪은 시련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집필과 출판은 나에게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나에겐 중대한 문제였다.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으로부터 출구를 찾아 나왔어야만 했다.”
―즉흥의 회상 중에서
정오의 분할은 사랑의 정열, 죄악 그리고 고통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애절한 인간의 모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겪은 이 죄와 고통을 통하여, 그는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특히 그에게 있어 중요한 발견인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끌로델이 체험한 이 사랑은 그의 생애에 아주 중대한 위기였다. 그는 한 남자로서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법과 그의 영혼을 치유해야할 상황에 직면하였다. 이 위기의 상태는 24년 후, 유언과도 같은 드라마 비단구두가 완성될 때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4년간의 집필 끝에 1924년 12월에 완성되었다. 그의 모든 정열이 집결되어 완성된 이 드라마는 무대 공연을 목표로 쓴 작품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드라마를 공연한다면 11시간이 넘는 긴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작품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언젠가는 무대에 올려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은 관객 앞에서 공연되기가 아주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희망했던 것처럼 1943년 11월 바로 그날이 왔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장 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에 의하여 비단구두가 탄생한 19년 후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던 것이다. 비단구두는 그의 모든 희곡 작품들이 집결되는 정점인 동시에 특히, 끌로델의 거대한 사이클을 마감하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7.
비단구두에서 작가는 전 작품의 모든 인물들의 특성들과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욕망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시도한다. 물론, 로드리그(Rodrigue)는 끌로델 연극의 거의 모든 기존의 남자 주인공들의 흔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든 인물들을 뛰어넘는 용기 있고 완벽한 인물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프루에즈(Prouhèze)의 역할 속에서 모든 작품들 속의 여인들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로드리그(Rodrigue)가 요구하는 것은 떼뜨도르(Tête d'Or)가 정복하길 원했던 세상의 한 부분이 아니다. 바로 세상의 전체를 원하는 것이다. 그가 찾는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그가 정복한 모든 땅을 털어버린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토록 갈망하였던 여인을 소유하지도 못한다.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였던 완벽한 일치가 아닌 완벽한 이별이었다. 그것은 결국 구원의 길을 향한 숭고한 사랑에 이르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었다. 정오의 분할에서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이제(Ysé)는 메자(Mesa)에게 육체의 아름다움으로 여자의 사랑을 가르쳐 주었지만 반대로 이 마지막 극에서의 두 연인, 로드리그(Rodrigue)와 프루에즈(Prouhèze)는 육체적 욕망의 모습이 때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갈망하는 그들 육체의 욕망에 어떤 한순간도 굴복하지 않았다. 프루에즈(Prouhèze)는 죄악을 범하지 않고 그녀의 영혼과 함께 진정한 사랑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연출가 장 루이 바로(오른쪽)와 함께한 뽈 끌로델, 1953끌로델의 작품에서 차지하는 여인들의 역할은 중요한 한 요소이다. 프랭쎄스(Princesse)의 황금머리에서의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에서 희망의 징조 속에서 극을 결말 맺게 해주는 그녀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정오의 분할의 마지막 장에서 이제(Ysé)가 되돌아오지 않았다면 메자(Mesa)는 최후의 순간에 그의 영혼을 구제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비단구두에서 두 연인이 죄악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프루에즈(Prouhèze)는 죽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끌로델은 이 드라마 속에서 신의 법과 두 영혼을 동시에 구제할 필요성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그가 정오의 분할에서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남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구원의 열쇠를 던져준 이들은 바로 이런 여인들이었다.
8.
끌로델은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했고 알고 싶어 했고 소유하고 싶어 하였다. 이것은 무한정한 자연에 대한 기독교의 법에 대한 또한 그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는 인간의 손에 쥐어질 수 없는 완벽한 사과를 절대적인 그의 소유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가까스로 그러한 창조물의 한쪽 끝만을 겨우 만져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은 헛되이 모든 것의 압력에 저항하려고 한다. 반대로, 그는 우리에게 인간의 거침없는 정열과,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일깨워 주었다. 작가의 주인공들은 보이는 것들을 가지는 데는 실패하나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생기가 넘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정신적인 것들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영혼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이다.
끌로델의 희곡은 단순히 인간적인 문제제기뿐만 아니라,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의 연장선 위에 선과 악, 정신과 육체,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 우연, 운명 그리고 신의 섭리 등의 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욕망에 의하여 소유의 충동에 의하여 끊임없는 제기되고 또한 추구된다. 그것은 불안하고 절박한 질문처럼 끌로델 작품의 곳곳에 나타나며 또한 엉킨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으며, 주인공들은 그 매듭을 풀려고 자신의 운명과 욕망에 이끌려 모험 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 완전한 영혼을 얻기 위하여 잘 짜여져 있는 듯하다.
뽈 끌로델, 이 모험가의 요구는 정오의 분할에서 주인공 메자(Mesa)의 확신에 찬 또 다른 메아리로 되살아난다.
이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토록 사랑한 나,
오, 나는 나의 것으로 삼으려고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가지길 원했소.
나의 눈과 나의 느낌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의 예지로 그것을 모두 가지길 원했소.
그리고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었소.
―정오의 분할 중에서
어느 날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삐에르 질(Pierre Gille)은 이렇게 말하였다.
“끌로델에게 너무 환상적인 감정을 갖지 말도록 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리옹행 기차를 기다리는 그를 파리의 기차역에서 보곤 했는데, 짙은 뿔테 안경을 눌러 쓴 그는 항상 주식 신문을 펼쳐든 채 그 무언가에 골몰하곤 했었단 말이네.”
한편으로 웃음을 짓게 했던 이 말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사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체험을 통하여 그는 돈과 명예와 여자를 가졌다. 어쩌면 세인들로부터 지탄받아야 마땅한 이제(Ysé)와의 만남을 그는 시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 속에서 영혼의 진리를 찾고자 했던 모험심 많은 지상의 순례자였다.
서석돌․
상명대학교 겸임교수, 숭실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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