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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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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시】
김준태의 「문일주 아기 묘비명」
(≪신생≫ 2005년 가을)
마음으로 읽는 시
시인|정우영
1948년 6월 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태생인 문일주 아기 1951년 2월 11일 719명 집단 학살 때 어미와 총 맞아 죽다 2005년 6월 25일 감악산 넘어간 1948년 7월 10일생 김준태 지금도 세 살 배기 문일주 아기 墓에 무릎 꿇어 술 따르더니 스물아홉 스물여덟 두 아들 아범이지만 옛 친구 만난 듯 무덤 빙빙 돌며 박산골 학살터에 흰밥 뿌리며 노래 부른다 “일주, 내 친구야! 동갑내기 나의 친구야! 내가 대신하여 아들 뒀으니 너의 자손도 퍼뜨려 너의 혼백 달래주리라”
―「문일주 아기 묘비명」 전문
참 편하다. 따스하다. 그리고 가슴 아릿하다. 시란 무릇 이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시에 질려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독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라 할 시인들도 적잖이 불편해한다. 감동하기는커녕 읽기조차 거북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시의 한 흐름, 혹은 탈(脫)포스트모던 시의 한 양상인가. 안 그래도 이 천민자본주의시대는 시를, 시의 진정성을 밀어내고자 안달인데, 시인마저 이에 적극 동조하는 것 아닌가 싶어 아찔하다. 이런 흐름이 대세라면 나는 시의 길에서 내려가겠다.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세상과 만나겠다.
이미지를 뒤틀어서 기괴한 연상을 꾀하거나, 난삽한 서사를 끌어들이거나 혹은 엽기적인 상상력(공상에 가까운)을 발휘해서도 시는 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시 속에서 진정성과 감동이 우러날 수 있을까. 호기심과 키득거림만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물론, 이와 같은 시적 경향이 적어도 아주 바람직한 흐름은 아니나, 탓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새로운 세계는 늘 기존세계를 전복함으로써 태어나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말 건네고 싶다. 그렇듯이 시를 비틀 거면 차제에 다른 장르를 하나 개척하는 건 어떻습니까 하고. 읽는 나도 불편하지만 쓰이는 시도 참 고통스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 시, 「문일주 아기 묘비명」을 읊조린다. 아, 전혀 그렇지 않다. 불편시에 능숙한 이라면 참 재미없는 시일지도 모르지만, 눈과 마음이 동시에 울린다.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게 만든다.
시인은 묘비명을 그대로 따옴으로써(“1948년 6월 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태생인 문일주 아기 1951년 2월 11일 719명 집단 학살 때 어미와 총 맞아 죽다”) 거창 양민 학살 현장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묘비명의 문면은 싸늘하다. 하지만 그 문면이 시에 들어올 때는 분노에 휩싸인다. 똑같은 글귀이나 전혀 똑같지가 않다. 시인의 마음이 글귀를 사물의 세계에서 시의 세계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인이 시의 세계를 여는 순간, 세 살배기 아기는 문득 귀밑머리 희끗한 시인 친구로 현현(顯現)한다. 참배하는 시인 앞에서 그는 시인이 권하는 한잔 술과 노래를 지긋한 눈매로 받아들인다. 신원(伸寃)이다. 억울함이 다 풀어진 것 같다. 이때 그는 더 이상 가련한 아기도 아니고 역사의 피해자도 아니다. 시인의 진혼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시인의 아들을 통해 영속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비록 문일주라는 아기 하나를 위해 쓰였지만, 나는 이 신원의 진혼시를 통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이 풀려나는 것을 본다. 풀려나 영면하는 이들을 본다.
이를테면 시인 김준태가, “일주, 내 친구야! 동갑내기 나의 친구야! 내가 대신하여 아들 뒀으니 너의 자손도 퍼뜨려 너의 혼백 달래주리라”라고 할 때, 그들은 ‘일주’라는 이름 대신 각기 자기 이름 부른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진정성의 공명(共鳴)이라 부르고 싶다. 진정성은 이렇듯 원혼도 감동에 젖도록 하는 것이다. 왜 시가 진정성 위에 자기 세계를 열어야 하는지 이로써 명확해진다.
마음 다잡는데, 누군들 그걸 모르나, 안 되니까 못 쓰는 거지, 하는 소리가 톡 튀어나온다. 맞다, 잘 안 된다. 사실, 김준태 시인이 위와 같은 신원과 진혼의 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광주라는 십자가’를 걸머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광주항쟁이라는 원체험이 그를 거창 양민 학살 같은 추체험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다. 현 세계에서 진정으로 아파하지 않는 자에게, 시의 세계가 진정한 감동 열어줄 리 없다.
아기 문일주와 시인 김준태를 통해 관념으로 기울어 있던 거창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 아직도 풀려나지 못한 현 세계 곳곳의 원혼 위무하는 진혼의 시들 더 쏟아지라고 기원하자, 응답인 듯 어둔 하늘 밀고 저녁햇살 붉게 열린다. 저 산 저 들 단풍에도 진혼의 기운 붉을 것이다.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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