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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권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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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87회 작성일 08-02-2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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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시】


강연호의 「지긋지긋이 지극하다」
(≪문학과경계≫ 2005년 가을)


고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열망

문학평론가|권경아



지긋지긋한 게 어디 세 끼 밥 먹는 일뿐이랴
다들 별고 없다는 안부조차 지긋지긋해질 때
세상은 어디 국경이라도 넘어보라는 듯 고요하다
쓸 만한 사람은 죄다 넘어갔다던 시절이 있었지
쓸 만해서 그들이 건너간 게 아니라
넘어가서 쓸 만해진 것 아닐까
지긋지긋하다는 것은 간절하다는 것
깊은 고요는 못 이룬 열망을 감추고 있다
세월은 여전히 고봉밥처럼 지긋지긋을 퍼담겠지만
비손은 부질없어야 더욱 빛나는 법이다
간절한 비손이 허드렛물을 정화수로 바꾸듯이
지긋지긋이 모여 삶은 지극해진다
모월 모일 어디 국경이라도 넘어보라는 고요 속
삼가 지긋지긋한 밥심으로 쓴다
지긋지긋이 지극하다
―「지긋지긋이 지극하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끊임없는 반복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그리고 똑같은 일상의 반복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변화 없음이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또한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끼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일어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결국 삶은 이와 같은 단순한 일들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강연호의 「지긋지긋이 지극하다」는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에 주목하며 이러한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일상의 끊임없는 반복에 극도의 권태와 피로를 느끼지만 이러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특히 현대 사회 속에서 일상에서의 일탈은 곧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인간은 지루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기를 희망하면서도 그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또한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복적 삶이 이렇듯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시인은 “세 끼 밥 먹는 일”뿐 아니라 “다들 별고 없다는 안부”조차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깊은 고요”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변함없는 우리의 삶은 고요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고요 속에 “못 이룬 열망”에 대한 ‘간절함’이 숨겨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아무 일도 없는 세상은 마치 “국경이라도 넘어보라는 듯 고요하다”. 한때 쓸 만한 사람은 모두 국경을 넘었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쓸 만해서 그들이 건너간 게 아니라 넘어가서 쓸 만해진 것”일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공포와도 같았을 그 고요를 뚫고 국경을 넘어야만 했던, 국경을 넘고자 했던 그 ‘간절함’. 그들이 쓸 만해진 것은 “못 이룬 열망”을 안고 국경을 넘었던 그 간절함 때문인 것이다. 시인은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이러한 간절함을 발견한다. 그들이 쓸 만해진 이유가 간절함을 안고 국경을 넘었기 때문이듯 지긋지긋한 삶이 지극해지는 것은 삶이 간절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이라도 그 속에는 못다 이룬 열망이 감춰져 있다. 소망이나 열망 없는 삶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못다 이룬 열망을 갖고 있다. 지긋지긋한 삶 속에는 우리가 미처 이루지 못한 열망이 남아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세월은 여전히 고봉밥처럼 지긋지긋을 퍼담겠지만” 삶은 그것이 지루할수록, 지긋지긋할수록 그 안에 어떤 ‘간절함’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버릴 수 없다.
간소한 물 한 그릇을 두고 두 손을 모아 빈다는 ‘비손’은 그것이 깨끗한 물 한 그릇일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깨끗한 물 한 그릇에 모든 정성을 모아 기원하는 것이기에, 간절함을 담은 것이기에 그 물 한 그릇은 단순한 물이 아닌 ‘정화수’가 되는 것이다. 간소한 작은 의식이 기원하는 의례가 되는 것은 그 정성의 ‘지극함’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지긋지긋한 삶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지긋지긋이 모여 삶은 지극해”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긋지긋이 지극하다」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담겨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모든 열망을 담고 있는 ‘간절함’이라 할 수 있다. 못 다 이룬 열망이 우리의 삶에 남아있는 한,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아직 남아 있는 한, 삶은 아무리 지긋지긋한 그 무엇일지라도 소중하다. ‘간절함’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그 ‘간절함’으로 우리의 삶은 바로 지극해지는 것이다.


권경아․
2003년 ≪시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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