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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2005년 겨울호) 마라톤 문화예술/고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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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문화예술|
행복한 인천 사람들
―‘제10회 국제클라운마임 축제’
고 춘|자유기고가
거리 깃발인천 사람들은 행복하다. 사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그늘 속에서 언제나 피해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천.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잠시 들러 가는 곳’이라는 빈정거림이 늘 인천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만들어 왔다. 경제적 측면도 그렇지만 문화적 환경 역시 그에 못지않다. 그러나 클라운마임을 감상하려면, 즐기려면 서울 사람․대구․광주 사람들도 인천으로 와야 한다. 클라운(광대)마임 배우랑 한 동네에 같이 살고, 전 세계에 있는 그의 친구 배우들을 일년에 한번씩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극단 마임과 클라운마임협의회(회장 최규호) 배우들과 함께하기 위해 찾아온 세상의 친구들은 인천의 어린이들을 웃게 하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한다. 아이들이 웃고, 그 아이들의 어른들도 웃고, 때로 웃음 뒤에 던져진 삶의 앙금들을 되씹게 하는 감칠맛도 주는 그들의 몸짓이 있기에 행복하다.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국제클라운마임 마크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가 10주년을 맞이하여 의미 있고, 즐거운 한마당을 장식했다. 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인천 남구청(청장 박우섭)과 인천문화재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인천 남구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용현4동 동사무소에 있는 학산소극장을 주공연장으로 하고, 용현천주교회에서 주민들을 위해 만든 시연센(시민교육연극센터)소극장, 인하대학교 본관 대강당(하나홀), 숭의감리교회 공연장 등 모두 인천 남구에 있는 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참가국은 독일․스웨덴․네델란드․뉴질랜드․프랑스․일본․한국 등 7개국이었는데, 클라운마임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과 인도가 불가피하게 못 온 것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마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권의 배우가 참가하여 기대를 갖게 하였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무대를 가져 큰 보람을 갖게 하였다. 한편 통역 봉사를 한 인하대학교 일어일본학과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클라운마임이 던져주는 놀라운 기쁨
클라운마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공연을 보면서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저들이 과연 판토마임 배우인지, 아니면 개그맨, 마술사, 또는 서커스 단원, 혹시 현대무용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버무린 것이 클라운(광대)마임이고, 그런 요소로 인해 사람에 따라 경박성과 오락성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마임이 갖는 상징성을 합해 웃음 속의 페이소스(pathos)를 느끼게 하는 매력도 있는 것이다.
웃는다는 것, 소리의 크기에 따라 폭소와 미소로 구분되기도 하고, 감정의 유쾌 지수에 따라 파안대소와 고소(苦)로 달라지기도 하며, 웃음 같지도 않은 -클라운마임엔 나오지 않는- 기소(譏笑)나 조소(嘲笑), 코웃음도 있다. 웃음이 지닌 복합성을 드러낸 우리나라의 형용사를 보면 그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소녀의 밝은 표정인 깔깔거림, 중년여인의 앵도라진 마음인 이죽거림, 함박꽃 같은 방실거림, 물에 젖은 신발창 같은 빈정거림, 어째 좀 음흉한 낄낄거림, 끼리끼리 눈짓으로 하는 키득거림, 손뼉 치며 웃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는가 하면, 배꼽 빠지게 허리 꺾이도록 웃는다. 심지어 대굴대굴 구르면서 웃기도 하는데, 치마꼬리 입에 물고 웃는 웃음도 있다. 클라운마임에서 이 모든 웃음의 만화경을 볼 수 있다.
마임의 중요한 요소인 배우고 훈련된 몸짓, 즉 연기를 통해 마치 체조 선수와 같은 아크로바틱을,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만, 고의적 실수나 우발적 실수도 즐거운 신기한 마술도 중요한 광대의 요소 중 하나다. 광대들은 오랜 전통의 하나로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는 여러 가지 기술을 연마하는데, 저글링․외발자전거 타기․풍선 만들기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묘기나 마술은 어디까지나 연기와 관객과의 기쁜 만남을 위한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인천을 찾아온 웃음의 미학자들
그러면 이번 제10회 인천클라운마임축제에 참가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공연 내용에 대한 회고를 해보자.
스웨덴의 ‘클라운 안테’ 안드레이 로디코프.
극단 모스크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극단 모스크바 플라스틱 드라마와 판토마임의 배우. 현재 스웨덴에서 살고 있으면서 미국, 유럽 등지로 공연 여행을 하면서 산다.
그의 인상은 매우 부드럽다. 옆집 아저씨와 같은 인상으로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숭의교회 공연장에서 가졌던 어린이들과의 시간에서 형식적인 공연자의 틀을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성격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연기를 보면 기본기가 매우 충실하면서도 즉흥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관객에게 펼쳐주는 넓은(마치 러시아 국기와 비슷한) 천 아래에서 느끼는 빛과 색채 아래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리고 마임의 기본기를 활용한 재밌는 몸짓, 무대와 객석을 누비며 뿌려대는 비누방울이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 공연 분위기를 연출하는 재능이 있다. 시종일관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하는 재능이 있다.
뉴질랜드의 ‘미스터 쿽’ 러셀 그레이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 블루마운틴 지역 시드니 서부지방에 살고 있다. 연기생활을 한 지 8년째, 마임 기본기의 충실도는 공연 중에 파악할 수 없었지만 관객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공연을 완성시켜 나가는 능력은 주목할 만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예를 들면, 화장지․탁구공․가방 등의 간단한 소품들을 활용하면서 의도적 실수연발과 해프닝, 그리고 특히 어린이들의 심리를 잘 이용해 웃음과 박수를 유도한다. 특히 흰 고무장갑을 머리에 쓰고 콧김을 팽팽하도록 불어넣어 풍선처럼 만들어 터트리는 모습은 긴장감과 함께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부인과 함께 ‘골든데이’라는 공연물을 제작하여 북미와 유럽 공연 여행을 한다고.
프랑스의 미모사
프랑스의 전설적 마임배우 마르셀 마르소 계열의 정통 마임이스트. 유럽 마임의 진수를 보여준다. 미모사는 제10주년 인천국제 클라운마임축제 전야제에서 참가 배우를 대표하여 매우 인상적인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외견상 뚱뚱한 빵집아저씨를 연상케 한다. 마임 배우가 뚱뚱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파격이다. 그만큼 몸짓으로 표현해야 하는 마임 배우의 평소 훈련 량이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미모사는 탁월한 연기로 그 핸디캡을 멋지게 극복하고 있다. 그는 놀라운 손재주를 갖고 있다. 담비와 비슷한 동물인형(나중엔 털모자로 변신)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다루는가 하면, 빠르고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마술적 손동작을 보여주어 보는 이들은 연속해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능청스런 표정 연기가 플러스되어 시종일관 놀라움과 웃음이 이어지는 것이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그의 연기는 직접 봐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축제 참가자들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배우 중 하나다.
그는 시연센소극장에서 있었던 체험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기량 중 일부를 설명을 곁들여 보여주고 템포를 이용한 연기의 원리를 설명하였는데, 자리를 함께한 시민들과 배우 지망생들은 신기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좋은 체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의 ‘파라 피글리아’ 스테파노와 루카
그들이 이번 축제에 참가하여 펼친 공연은 ‘테라!’(땅)이다. 고대의 상자를 실은 작은 뗏목으로 지중해를 항해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아크로바틱 연기는 정말 볼만했다. 표정 연기도 좋았고, 연기의 앙상블도 칭찬할 만하다. 마임이 갖고 있는 여러 요소들, 특히 ‘몸짓’이라는 면에서 이들의 숙련도는 돋보인다. 코믹함과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의 구성은 독특한 매력을 던져주는데, 유럽 마임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감상의 기회였을 것이다. 놓친 사람들은 아쉬움이 클 듯하다.
30여분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이들의 연기는 열정적이었다. 배우들의 대기실에서 본 그들은 틈만 나면 몸을 푸는 자세를 보일 정도로 성실하였다.
일본, ‘옌타운 풀스’ 부치와 빌리
10년간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하다 만난 부치와 빌리. 2001년에 ‘옌타운 풀스’를 결성한 뒤 활동해 오고 있고, 인천국제교류공연과 인천국제클라운마임 축제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오고 있는 팀이다.
섹소폰과 탐탐 등 악기 연주를 이용한 연기와, 관객을 불러내어 함께 노는(?)가 하면, 큰 고무공을 객석으로 던져 관객들로 하여금 즐거운 한 때를 보내게 하는 등 전체적인 운영을 재미있게 이끌었다.
일본 사람이라는 본능적 거부감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관객과의 친화력이 높았다. 특히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더욱 그런 장점이 표출되는데, 어린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연기를 잘한다.
일본, 이무로 나오키
이무로 나오키 마임 극단의 대표. 일본에서 가장 촉망받는 마임 아티스트로서 춤울 기본으로 한 조용한 판토마임 세계로 몰입하게 한다.
그가 이번 축제에 와서 보여준 마임은 일반 관객보다는 마임을 공부하거나 연기를 수련하는 배우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구성을 갖고 공연한 이번 공연에서 그는, 전형적인 몸풀기, 여러 형태의 마임 기본기를 이용한 스토리 진행, 관객과의 즐거운 교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시연센소극장에서 가졌던 체험 워크숍에서 보여준 그의 방법은 우리 마임극단에서도 많이 훈련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자기만의 방법으로 직접 참가자들과 호흡하며 진행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그와의 시간이 매우 실속 있고, 참가한 보람이 있었을 것이다.
네델란드의 마르티엔과 로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공연하는 팀이다. 우리나라 비빔밥과 설렁탕도 아주 잘 먹는다. 김밥도 맛있다고 극찬한다. 필자가 선물한 우리나라 전통음악 음반을 놀랍고 고맙다고 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비쥬얼 아트(가시적 예술)의 백미를 보여준다.
‘저런 것도 마임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연기를 보여준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소리’에 대한 탐구이다. 마치 현대음악을 듣는 듯한 특별한 소리를 내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창안하여 실험음악회 참석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것이 왜 마임이고 즐거운가를 느끼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과거 존 케이지가 음악회장에서 ‘4분 33초’라는 곡을 연주할 때, 그는 피아노 앞에 정확히 4분 33초 동안 앉아 있다 일어나 퇴장했다. 그 시간 동안 관객의 숨소리를 비롯한 모든 소리가 바로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충격’이기도 했지만 대단한 ‘유머’이기도 한 것이다. 마르티엔과 로이가 보여준 ‘소리’의 향연과 오리마스크 연기는 이 공연이 매우 ‘웃기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관객이 웃고 안 웃고의 차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신기해하고 웃었다. 그래서 예수는 어린애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하였나보다.
독일, ‘아웃사이더’-스타니슬라브 보그다노프, 엘레나 볼슈나
독일과 북유럽, 특히 러시아 클라운마임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이다. 보그다노프의 분장과 특유의 탁월한 표정 연기가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다. 예로부터 독일과 러시아는 상호간 많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라서 그런지 유머의 표현 방법도 상당히 비슷하게 보인다.
‘아웃사이더’의 연기는 관객에게 대리 만족을 준다. 약빠른 여자광대와,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남자광대와의 연기는 웃음과 탄식, 안타까움과 사랑을 동시에 던져주면서 광대마임을 만끽하는 힘이 크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배우들의 연기를, 즐겁게 감상한 작품이다.
한국, 최규호
한국클라운마임의 개척자, 탄탄한 마임 연기와 끼로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현재 인천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오늘의 축제가 있게 한 장본인이다.
재주꾼 최규호는 이번 공연에서도 예의 그 능력을 맘껏 발휘했다. 최규호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마임을 참 잘 만든다. 때로 서정시와 같은 상징성과 무대 운영, 그리고 음악이 더해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로맨틱한 서정을 일으키게 한다.
공원 청소부가 청소 중에 소품들을 이용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연출하게 하는 것이나, 휘날레에서 연주한 플루트 연주가 클라운마임이 세상에 왜 필요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한국, 클라운마임협의회의 마임 밴드
공원 청소부로 분장한 광대들과 행인들이 기상천외의 악기를 갖고, 유쾌한 음악연주를 한다. 생수통과 빗자루, 배관파이프와 싱크대 수돗물 파이프를 자르고 구부리고 붙이고 하여 만든 악가들이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더니, 급기야 거기에서 연주되는 소리를 듣고, 웃고 박수치고 즐거워한다. 음악이 갖는 유머와 광대의 유머가 절묘하게 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내년을 기다리며
축제의 끝은 또 다른 기다림을 갖게 한다. 인천 사람들은 내년에도 이 축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1년 동안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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