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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권두칼럼/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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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22회 작성일 08-02-2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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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그러므로 문학은 계속되어야 한다

레이먼드 페더만은 「초소설(Surfiction)」이라는 글에서 “픽션이란 현실세계를 향상시키는 또 하나의 ‘현실’이며, 픽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현실은 진실이라는 사고방식을 없애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는 미래의 소설에서는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 진실과 허구 사이의 모든 구분이 사라질 것이라 강조한다. 굳이 미래의 문학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오늘날 문학작품에 반영된 ‘현실’은 사실과 허구, 픽션과 팩트라는 이분법의 경계가 무의미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현실’은 익숙한 현실과 낯선 현실, 그럴 듯한 현실과 터무니없는 현실, 수긍하고 싶은 현실과 부정하고 싶은 현실, 또는 사실과 허구, 실제와 환상이 혼재되어있는 경계로써의 현실을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허구라 믿었던 것이 진짜일 수 있으며, 진실이라 믿었던 현실도 허구일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간다.
절대적인 진리와 신념이 붕괴된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진실에 대한 물음이 불경화된 시대는 우리를 불안하고 곤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 불안과 곤혹스러움이야말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문학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의 90년대 문학이 걸어왔던 길은 이처럼 현실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모색과 진통의 기간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환상문학, 생태문학, 디지털 문학으로 불리어진 수많은 문학작품의 출현은 모두 변화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인식의 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현 단계 한국문학의 성과와 위치를 점검하는 동시에 미래 문학의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던 이번호 편집회의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변화된 시대에 새롭게 조응하는 작가들의 인식 변동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줄기차게 반복되어왔던 ‘가족’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가 다시금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가족’의 문제는 수많은 얼굴로 우리의 근․현대사 문학의 중심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기존 사회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도전,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부정과 붕괴, 페미니즘의 실현, 자아 정체성에 대한 확인,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함축적 모델로써 가족은 언제나 중심 테마로 거론되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가족모델’은 새로운 서사와 의미를 산출할 수 없으리라 여겨졌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가족은 다시금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써 우리 문학판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가족 해체 이후 새롭게 봉합되는 가족의 출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희적 대상으로서의 가족, 성정체성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가족, 탈가족주의 이념에 저항하는 변화된 가족 양상은 새로운 서사와 서정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번호 특집은 ‘2000년대의 새로운 가족모델’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시, 소설, 드라마, 영화의 각 장르를 통해 구체적으로 새로운 가족모델이 어떤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가족모델의 변화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문화 현상 전반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제공하는 지면이 되리라 생각한다.  
젊은 시인 집중조명은 김일영, 손택수 시인의 작품에 대해 해부해 보았다. 이명원 평론가의 정치한 분석을 통해 김일영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남석 평론가의 글은 손택수 시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재발견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계절에 발표되었던 시, 소설, 연극 계간평을 이번호부터 장석원 시인, 고명철 평론가, 이경숙 평론가가 맡아주셨다. 우리 문학과 공연 예술에 대한 그들의 폭넓은 견해를 만날 수 있으며, 지난 계절의 우수 작품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신작 단편으로 김혜정, 홍양순 소설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선한 감수성과 새로운 서사를 전개하는 그들의 상상력이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오늘날 문학은 더 이상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거세다. 문학의 소통 구조가 협소화되고 있는 현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상문화에 주도권을 빼앗긴 문학의 자리는 어쩌면 빈곤한 자들의 축제처럼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가장 치열한 행위는 이제 사회적 권위를 부여받기도 어려우며, 경제적 보상과 직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문학은 계속된다. 이 계속됨의 행위야말로 문학이 이 시대에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문학은 결국 자신을 볼모로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이는 순수성이 사라진 이 시대에 가장 순수한 행위이다. 오늘날 예술은 거대 자본의 흐름에 맞춰 길들여지고 양식화되고 상품화되어 간다. 하지만 자신의 고유한 시각과 경험으로 미시화된 세계의 구조를 한 꺼풀씩 벗겨내려는 작가들의 고뇌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문화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리토피아≫가 창간 5주년을 맞이하였다.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종합문예지’라는 말처럼 ≪리토피아≫󰡕는 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문화 운동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 응원할 것이다. 독자들도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아낌없는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실 것이라 믿는다.

2006년 2월 강경희(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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