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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외국문화탐방/전용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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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787회 작성일 08-02-2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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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탐방|



모방에서 창조로:중남미 환상문학의 어제와 오늘

전용갑|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1. 환상문학의 지형도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최고봉의 위치에 서게 된 중남미 소설문학의 배후에는 환상문학과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두 문학 조류의 후광이 깊이 서려있다. 후자가 중남미 고유의 문화적 혼종성에 힘입어 “역사가 곧 경이로운 현실의 연대기인” 이 지역의 사회, 역사적 정체성을 ‘신화와 역사의 공존’을 통해 탐구하려는 지역적 특산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근대 서구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발로 태동한 전자의 경우, 19세기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이래 중남미 작가들의 손을 거쳐 오늘날 역으로 서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보편적인 성격의 문학경향이라 하겠다.
이러한 역사적인 근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환상문학은 마술적 사실주의와 마찬가지로 초자연적 현상을 담론의 주요한 매개로 삼고 있으며, 또한 내부적으로도 시대와 작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인접 장르들과 혼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한때 카프카나 보르헤스를 마술적 사실주의의 기원으로 파악했던 중남미 일각에서의 오류처럼 국내의 일부 독자들이 왕왕 환상문학을 판타지와 같은 경이문학은 물론 마술적 사실주의와 혼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중남미 환상문학을 논하기에 앞서 간략하게나마 이 문학 담론의 개념적 지형도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환상문학 작가인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Adolfo Bioy Casares)의 지적처럼 문학의 초자연성은 이미 문자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문학 그 자체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문학에서 환상(fantasy)의 요소는 이미 고대의 구약, 젠더베스터, 호메로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중세의 전설과 민담류, 요정 이야기를 거쳐 근대의 고딕소설과 낭만주의문학, 그리고 20세기의 카프카나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편재하는 문학 고유의 허구적 속성인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인 현실법칙을 벗어나는 현상을 묘사한 모든 문학을 환상문학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마치 육지에 사는 모든 동물은 포유류라고 단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화의 오류일 것이다.
스페인의 문학평론가 다빗 로아스(David Roas)는 초자연적인 테마를 다룬 모든 문학을 현실성(reality)과의 관련 하에 환상문학, 경이문학, 마술적 사실주의, 기독교적(종교적) 경이문학의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환상문학은 초자연적인 질서가 우리의 일상세계 내에 삼투됨으로써 빚어지는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을 다루며 따라서 독자에게 공포나 의심, 불안 같은 정서적인 효과를 야기한다. 이에 비해 경이문학에서의 불가해한 일은 논리적 세계의 밖에서 발생하므로 비정상적인 요소들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며 독자들은 지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이 두 장르사이에 위치한 것으로서 초자연적인 현상은 이성적인 현실세계의 컨텍스트 내에서 벌어지지만 자연/초자연의 질서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서로 모순 되는 두 세력이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상문학과 다르며, 그것이 자연세계 내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는 경이문학과도 구분된다. 한편 기독교적 경이문학은 인과율과 논리를 벗어난 초월적인 현상들이 최종적으로 신의 논리로 귀결되는 것을 말하며 대부분의 종교적인 신비주의 문학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신화나 우화, 요정 이야기와 같은 전 근대적 담론이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 오늘날 유행하는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은 경이문학의 범주로 귀결되며 환상문학의 개념과 혼동하기 쉬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은 엄밀한 의미에서 환상문학과 구분되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포함되게 된다.
한편 환상문학은 장르 내부적으로는 크게 가시적 환상(낭만주의적 환상), 일상적 환상(사실주의적 환상), 신환상(포스트모던적 환상)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시적 환상은 유령, 흡혈귀, 늑대인간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명확한 물리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로 초월적이고 비실재적인 대상들까지도 언어의 상징적 특성에 의해 표현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미학에 힘입은 것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가시적 환상을 주로 테오필 고티에, 제라르 드 네르발, E.T.A 호프만 등 19세기 전반기까지의 작품들에 한정시키나 낭만주의 시대의 괴물들은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의 󰡔러시아 인형 Una muñeca rusa󰡕(1991)에서 보듯 20세기의 작품들에서는 유전자 복제나 생물학적 실험 등 현대적 변형의 형태로 나타난다. 초자연적인 힘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은밀한 형태로 잠복, 병존하는 ‘일상적 환상’의 경우 19세기 후반 경험에 의한 진리를 중시하는 실증주의 철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초자연적 존재의 현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심리학, 병리학적 측면을 통해 현실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개념을 전복시키려고 시도한다. 즉 이제 환상성은 ‘사물’이 아닌 ‘관계’속에서, ‘형체’의 불충분이 아닌 ‘의미’의 불충분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또마 나르스작(Tomas Narcejac)의 비유를 들자면, 더 이상 늑대인간이나 흡혈귀가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흡혈귀의 빈 관이라든가 늑대인간에게 물려죽은 희생자가 환상적이 된다. 󰡔환상문학서설󰡕에서 환상성의 개념을 ‘자연적인 논리와 초자연적인 설명 사이에서 주저하는 상태’로 본 토도로프의 유명한 정의는 사실상 이 일상적 환상에 대한 견해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도로프는 환상문학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의해 무의식이 규명되기 전까지의 19세기적 장르로만 파악한다. 한편 환상문학 논의의 최대의 쟁점 중의 하나는 신환상에 관한 문제이다. 토도로프뿐만 아니라 루이 박스(Louis Vax) 같은 몇몇 이론가들 역시 신환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카프카의 󰡔변신󰡕을 환상문학의 범주에서 제외시킨다.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현상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행하는 전통적인 환상문학과는 달리 신환상은 󰡔변신󰡕이나 훌리오 꼬르따사르(Julio Cortázar)의 「파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Carta a una señorita en París」에서 보듯 반대로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출발, 자연적인 현상으로 흐른다. 또한 하이메 알라스라끼(Jaime Alazraki)의 지적처럼 신환상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보이지 않으며 불가해한 상황에서 느끼는 ‘주저함’이나 ‘공포’와 같은 감정도 외연화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인 환상문학에서 낭만주의자들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반면 신환상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세계는 순수한 비현실이라고 느낀 데서 연유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현실에 대해 아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데 어떻게 현실을 전복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신환상은 자연세계에서 초자연적 요소의 부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화된 초자연적 요소를 통해 현실의 비정상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환상은 자연/초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경이문학과는 다른데 그것은 신환상 역시 전통적인 환상문학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믿었던 바와는 달리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환상과 마술적 사실주의와의 차이점은 전자가 인식론적, 철학적인 측면에 치중한 반면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주의’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사회역사적, 정치적 의도가 짙은 데에 있다 하겠다.

2. 중남미 환상문학의 전개 과정
2-1. 모방과 수용의 단계: 낭만주의와 모데르니스모의 환상문학
스페인어권 문학을 고려하여 마술적 사실주의를 포함시키고는 있지만 이와 같은 분류는 사실상 일반화에 가까운 기준으로, 이를 가지고 중남미 환상문학의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전개양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이 제시하는 비교적 선명한 개념 틀은 다양한 초자연적 담론들과 동시적(同時的)으로 혼재되어 있는 이 지역 환상문학의 거시적인 맥락을 시기별로 개괄하는 데에는 하나의 참고할 만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남미 환상문학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의 토양에서 잉태되었는데, 중남미의 낭만주의는 이 지역의 대(對) 스페인 독립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830년대 시작되어 약 반 세기 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봉건적 식민통치 하에 놓여 있었던 탓으로 낭만주의 형성의 사회경제적․문화적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단순히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사조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중남미의 낭만주의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 아메리카적인 풍광의 예찬, 흑인ㆍ물라토ㆍ가우초(팜파의 카우보이) 등 주변부 인종들의 부각, 신대륙 발견 이전의 테마와 인디오 전통의 도입 등 몇몇 주목할 만한 고유의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사상이 아니라 소재를, 스타일이 아니라 방식을 (……) 아이러니가 아니라 감성적 주관주의를 받아들였다.”라는 옥따비오 빠스의 지적처럼 진정한 낭만주의 이데올로기보다는 유럽에 대한 형식적 모방의 성향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폴 베르데보예(Paul Verdevoye)에 의하면 중남미의 환상문학 작품들은 1830년대 리오 데 라 플라타 지방(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신문지면들을 통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후 중남미 각지로 퍼져나갔다. 초기의 이 지역 환상문학 작가들은 호프만이나 제라르 드 네르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테오필 고티에 등 유럽의 대가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작품도 유령, 흡혈귀, 악마 등을 주요 모티브로 취했던 유럽 낭만주의의 가시적인 환상성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 대표작 중 하나로 회자되는 후안 몬딸보(Juan Montalvo, 에쿠아도르)의 「가스파르 블론딘 Gaspar Blondín」(1858)도 시, 공간, 등장인물 등 토속적인 요소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서사의 기본적인 구도는 구대륙의 뱀파이어 전통에 놓여 있으며, 마누엘 빠이노(Manuel Payno, 멕시코)의 「악마와 수녀 El diablo y la monja」(1849), 헤르투루디스 고메스 데 아베야네다(Gertrudis Gómez de Avellaneda, 쿠바)의 󰡔악마의 증여 el donativo del diablo󰡕(1857) 등 이 시기 널리 알려진 작품들의 제목에서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경우 “(유럽의) 유령들이 이 대륙(중남미)으로 도망쳐 온 것 같았던”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초기의 중남미 환상문학은 “유럽에서 수입된 피상적인 산물”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고유의 문학적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중남미 환상문학이 한층 질적인 도약을 이룬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친 이른바 모데르니스모(modernismo)시기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대 작가들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고답파의 영향을 받아 세련된 시어와 운율을 바탕으로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자들의 단순한 언어적 표현과 교훈적 내용, 귀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언어를 구사하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사실주의를 배격하고 동양이나 북구의 신화, 전설, 상징 등 이국취향적인 요소들을 중남미의 토속적인 전통과 함께 취합하여 진정한 세계주의적 시각을 확보하려고 애썼다. 흔히 시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상의 쇄신으로 알려진 모데르니스모는 산문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쿠바의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호세 마르띠(José Martí)가 지적했듯이 정치적 독립과도 연관이 있었던 중남미 최초의 독자적인 미학운동이었다. 즉 이 운동은 신생 중남미 국가들이 제국주의적 세계시장의 하부구조로 편입되고 내부적으로는 외국과 매판자본 위주의 산업화로 외형적인 파이를 키우던 상황에서 물질주의에 대한 주관주의적인 반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환상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이 시기 작품들이 악마나 유령, 흡혈귀 등 유럽 낭만주의풍의 환상성에서 벗어나 당시 중남미에 풍미하던 과학기술과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사실주의적인 환상성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초자연적인 존재와 현상은 이제 많은 경우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한 생물학적 발견의 산물이나 광기와 텔레파시, 정신착란과 같은 심리학적인 모티브들과 상호 연관을 맺으며 나타났으며 공포나 망설임 등 환상문학 특유의 정서적인 반응은 엑소시즘과 같은 전근대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닌 이성적 논리와 비이성적 논리 사이의 갈등 구조를 바탕으로 창출되었다.
모데르니스모의 선구자인 니카라구아의 루벤 다리오(Rubén Darío)나 아르헨티나의 레오뽈도 루고네스(Leopoldo Lugones), 아마도 네르보(Amado Nervo), 오라씨오 끼로가(Horacio Quiroga), 끌레멘떼 빨마(Clemente Palma) 등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환상문학에 대한 천착은 장르 그 자체에 대한 미학적 관심이라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과학과 산업화에 의해 만연했던 당대의 물질적 세계관에 대한 반발과 그로 인해 축소되는 예술적 ‘감성’을 되살리려 했던 모데르니스모 정신의 한 발로에서였다. 그러나 대개가 문학․철학 등 인문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등 당대의 자연과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많은 경우 현실정치에 계몽적 입장에서 관여했던 전방위 지식인들이었던 모데르니스모 작가들이 환상문학을 통해 과학과 산업화 그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은 아니었다. 모데르니스모 시기에 이루어진 가시적 환상성에서 일상적 환상성으로의 전이는 철학과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한 환상문학의 보편적인 발전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초자연적 존재를 통한 이성에 대한 회의의 기저에는 서구 열강 주도로 진행되는 중남미의 왜곡된 근대화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2-2. 중남미 환상문학의 전성기-아르헨티나의 세 대가들
중남미 환상문학이 20세기 중반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처럼 거의 일 세기 동안 모방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며 누적되어 온 치열한 문학적 내공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금자탑의 전면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 훌리오 꼬르따사르라는 세 명의 걸출한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환상문학과 관련하여 아르헨티나가 누리고 있는 명성은 새로운 것이 아닌데, 저명한 비평가이자 환상문학 이론가인 아나 마리아 바레네체아(Ana María Barrenechea)는 “아르헨티나 환상문학은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풍부하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마누엘 뻬드로 곤살레스(Manuel Pedro González) 또한 “아르헨티나인들은 다른 스페인어권 국가들보다도 더 많은 환상소설과 단편들을 만들어냈다.”라고 인정할 만큼 이 지역은 낭만주의 이래 중남미 환상문학의 메카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환상문학이 번성한 이유에 대해 󰡔터널 El túnel󰡕의 작가인 이 나라의 소설가 에르네스또 사바또(Ernesto Sábato)는 자국민들의 타고난 ‘형이상학적 기질’을 들고 있으며 꼬르따사르는 이민의 수용으로 인한 문화적 다양성과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광활한 자연환경 등을 꼽고 있다. 아무래도 중남미 최대의 백인 이민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근대 유럽의 인식론적 전통의 산물인 환상문학이 개화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세 명의 환상문학 작가들 중 보르헤스는 비교적 국내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비오이 까사레스와 꼬르따사르의 경우 20세기 중남미 문학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베일에 가린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비오이 까사레스의 경우 18살 때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보르헤스의 명성에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으며 󰡔부스또스 도멕의 연대기 Crónica de Bustos Domecq󰡕, 󰡔돈 이시드로 빠로디를 위한 여섯 가지 문제들 Seis problemas para don Isidro Parodi󰡕 등 보르헤스와의 몇몇 공저들 때문에 한때 보르헤스풍의 작가로 잘못 인식되어지기도 했으나, 그의 문학세계는 추리소설식의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주로 남녀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영생과 죽음, 시간 등 철학적인 명제들과 결부시켜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보르헤스와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비오이 까사레스는 1990년 스페인어권의 노벨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았으며, 사후 까밀로 호세 셀라로부터 “보르헤스와 더불어 우리시대 문학의 위대한 장인이었다.”라는 헌사를 받은 바 있다.
비오이 까사레스의 문학적 성공은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이었던 󰡔모렐의 발명 La invención de Morel󰡕(1940)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익명의 주인공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한 인도양상의 한 무인도에서 우연히 보게 된 파우스틴이라는 여인을 간절히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소멸되지 않는 영생을 꿈꾸던 한 천재에 의해 실물과 똑같은 3차원 홀로그램으로 남겨진 피사체였다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보르헤스로부터 스페인어권에서 ‘이성화된 상상(imaginación razonada)’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이후 그의 많은 환상문학 작품들을 ‘과학적 환상’으로 특징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렐의 발명󰡕 이후 생물학, 우생학 등의 과학적 소재에 대한 비오이 까사레스의 관심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즉 죄수들의 감각기관을 변형시켜 감옥을 파라다이스로 인식하게 하는 이야기를 그린 󰡔회피의 계획 Plan de evasión󰡕(1945), 단기간에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진화를 이루어 인간을 노예로 삼은 물개들을 묘사한 「미래의 왕들로부터 De los reyes futuros」(󰡔천상의 구조 La trama celeste󰡕, 1948)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의 여인이 그녀의 세포로부터 복제된 복제인간이었음을 알고 좌절에 빠지는 「베니스의 가면 Máscaras venecianas」(󰡔이상한 이야기들 Historias desaforadas󰡕, 1986), 사랑을 위해 젊음을 되찾는 생물학적 시술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반인반어의 괴물이 되어 호수에서 살아가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물밑에서 Bajo el agua」(󰡔러시아 인형󰡕) 등의 저변에서는 단순히 과학문명의 위험을 경고하는 SF적인 묵시록의 주제가 아닌, 영생과 죽음, 잃어버린 이상향, 좌절된 사랑 등 무거운 실존적 문제의식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오이 까사레스의 관심은 이러한 과학적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17세기 부다페스트의 한 객주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의 피살자가 3백 년 후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던 대학생과 동일인물로 밝혀진다는 「또 다른 미로 El otro laberinto」(󰡔천상의 구조󰡕)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도록 완벽하게 동일한 일상생활을 반복하는 가정의 모습을 그린 「눈위의 위증 El perjurie de la nieve」(󰡔천상의 구조󰡕), 3년 전 카니발의 경험을 반복하는 󰡔영웅들의 꿈 El sueño de los héroes󰡕(1954) 등을 통해 이성적ㆍ직선적 시간관을 문제 삼고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동일한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블랑키의 사상에 바탕을 둔 「천상의 구조」(󰡔천상의 구조󰡕)나 매일 마주치는 일상적인 거리에서의 이유 없는 실종을 묘사한 「엘 노우메노 El Nóumeno」(󰡔이상한 이야기들) 등 공간의 미로를 통해서도 우리의 3차원적 현실인식을 문제 삼고 있다. 그밖에도 「쥐 혹은 행동양식의 열쇠 La rata o Una llave para la conducta」(󰡔이상한 이야기들󰡕), 「오비디우스 Ovidio」(󰡔평범한 마술 Una magia modesta󰡕, 1998) 등에서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평범하게 스쳐지나가는 착각과 우연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일상의 구석구석에 잠재된 초자연의 모습을 슬그머니 드러내고 있다.
유전공학, 생물학 등 과학기술의 진보에 맞추어 새롭게 재해석된 낭만주의적인 가시적 환상성계열의 작품에서부터 우리의 삶 속에 은밀하게 드러나는 비가시적인 사실주의적 환상, 그리고 「파우스트의 시계장수 El relojero de Fausto」(󰡔이상한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죽음이란 문제를 탐구하는 신환상계열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일종의 환상문학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다양성은 높은 문학적 수준과 더불어 그를 중남미 환상문학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평가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기도 하다.

문학에서 무엇보다도 ‘독자의 읽는 재미’를 강조하는 비오이 까사레스의 작품들이 신환상의 특징을 보이는 일부 후기작을 제외하면 튼튼한 추리소설식 구조와 흥미로운 스토리 텔링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환상문학담론을 계승 발전시킨 데 비해 꼬르따사르와 보르헤스는 이른바 신환상계열의 작가들로 볼 수 있다. 신환상은 자연세계에 개입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룸으로써 이성적, 논리적 현실 인식에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일반적인 환상문학과는 달리 더 이상 자연과 초자연의 이분법적 구분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자크 피네(Jacques Finné)의 지적처럼 “(신환상에서의) 초자연적인 요소는 (……) 심리학적 혹은 철학적인 상대주의와 같은 사상을 나타내기 위한 발판으로써” 사용될 뿐이다.
이러한 환상성 개념의 변화에는 근대 이성에 대한 회의라는 환상문학의 전통적인 함의를 넘어 아예 자연과 초자연, 현실과 비현실, 이성과 비이성의 이분법적 대립구도 자체를 부정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식의 인식론이 기저에 깔려있다.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의 투하, 인간의 달 착륙 등 상상력을 뛰어넘어 현실화된 일련의 역사적 사실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중ㆍ후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현실인식에 보르헤스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보르헤스는 일찍이 “우리는 우주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이 세상은 아마도 -데이비드 흄이 썼듯이- 어린 신의 초보적인 소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또 다른 기회에서는 이 세상을 “노쇠한 신이나 불완전한 천사의 작품”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이메 알라스라키에 의하면 보르헤스의 이러한 우주관은 이 세상은 통찰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질서 또한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지성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그 어떤 신성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대변한다. 이러한 불가지론적인 우주관은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는 그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주기 위해 더 이상 “외부의 힘을 개입시킬 필요가 없는” 신환상의 논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예컨대 사람이 벌레로 변하거나(카프카의 󰡔변신󰡕) 살아있는 토끼를 토해내는 것(꼬르따사르의 「파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따위의 일은 이제 더 이상 기괴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평계의 일각에서는 신환상의 작품들이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공포나 주저함과 같은 고유의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환상문학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다빗 로아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별도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끌어올 필요조차 없다는 이와 같은 신환상의 전제가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꼬르따사르의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적 공간에 중첩된 초자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반복해서 살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것인가를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그는 「파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별 특별한 이유 없이 가끔씩 입으로 토끼를 토해내는 한 인물을 다루는데, 주인공인 1인칭 화자는 “간혹 토끼를 토해내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 자신은 그것이 그다지 “두려운 일은 아닐 뿐더러” “자신의 잘못도 아니라고” 담담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화자는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집주인 몰래 밤마다 토끼를 거실에 풀어놓곤 하는데 그의 걱정은 자신이 토끼를 토해 놓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느덧 열 마리까지 늘어난 토끼들이 제멋대로 뛰어놀며 양탄자에 털을 묻히고 책장의 책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에 있다. 유사한 문제의식을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점령당한 집 Casa tomada」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꼬르따사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고택에서 거의 외부와 단절된 채 외롭게 살고 있는 오누이를 그리고 있는데, 적적하지만 프랑스 문학과 뜨개질에 소일하며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들이 침입하여 집의 일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자나 누이동생은 이상한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의문을 품지 않으며 관심조차 없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침입자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넓은 집을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우리에게도 잇점이 있었다.”라고 만족해하기도 하며 나중에 소리에 의해 집의 전부를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으면서도 그들에게는 두고 나온 뜨개질거리와 책, 침실의 옷장에 넣어둔 만 오천 뻬소의 돈이 아쉬울 뿐이다.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 작품들은 주로 단편형식으로 󰡔베스띠아리오 Bestiario󰡕(1951), 󰡔유희의 끝 Final de juego󰡕(1956), 󰡔비밀무기 Las armas secretas󰡕(1959) 등의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일상적인 질서의 저변에 은닉된 채 존재해 있던 초자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질서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꼬르따사르는 자신의 환상문학이 “18세기의 철학적, 과학적 낙관주의에서 확립된, 모든 사물은 묘사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다는 거짓 사실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진정한 현실의 탐구는 법칙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는 알프레드 쟈리(Alfred Jarry)의 심오한 발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밝히는데, 이레네 안드레스-수아레스(Irené Andrés-Suárez)의 말대로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은 결국 이러한 “현실의 중층적인 면들을 탐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은 지금까지 살펴본 비오이 까사레스나 꼬르따사르와는 또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그의 문학세계를 후안 에레로 세실리아(Juan Herrero Cecilia)는 한마디로 ‘형이상학적 신환상’(Lo neo- fantástico metafísico)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보르헤스 또한 자연/초자연의 이분법적 논리의 갈등적 대립을 기본구도로 하는 전통적인 환상문학의 문법이 아닌 초자연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는 점에서 신환상 계열의 일부로 볼 수 있으나, 일상생활에 잠재되어 있는 초자연의 질서를 슬며시 드러내는 꼬르따사르와는 달리 꿈이나 미로, 도서관, 백과사전 등의 다양한 상징적인 모티브를 사용하거나 혹은 동서고금의 정통과 이단의 철학과 신학의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현실세계의 외연을 벗겨나간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은 단순히 이성적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가 또 다른 형이상학과 철학의 차원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보르헤스에 의하면 문학과 형이상학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보르헤스는 철학과 신학이야 말로 그 어떠한 문학적 고안보다 더 상상적이며 따라서 이 둘을 ‘환상문학의 두 종류’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뚤뢴, 우끄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Tlön, Uqbar, Orbis Tertius」에서 “뚤뢴의 형이상학자들은 진실은 물론 핍진성조차도 추구하지 않는다. (……) 그들은 형이상학이 환상문학의 한 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보르헤스의 우주관이 세상은 통찰될 수 없으며 우리는 이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일종의 불가지론에 입각해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단념하는 허무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르헤스에 의하면 바로 환상성이야 말로 우주의 수수께끼를 드러내기 위한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인데 이러한 점에서 그와 꼬르따사르의 생각은 유사하면서도 상반된다. 즉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꼬르따사르의 환상이 초자연적인 요소를 일상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현실화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면 보르헤스는 역으로 현실의 비현실화를 그의 환상세계의 전략으로 삼는다. 보르헤스가 상징적 메타포를 통해 현실의 이성적 논리를 탈각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이성과 경험의 산물인 ‘언어’의 한계 때문이다. 「알렙 El Aleph」에서 주인공인 화자 보르헤스는 사별한 옛 애인인 베아뜨리스의 집 지하실에서 우주의 모든 모습을 동시적으로 담고 있는 구체인 ‘알렙’을 보고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그때 나는 알렙을 보았다. 이제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내 얘기의 핵심에 이르렀다. 바로 여기에서 나의 작가로서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기호들의 알파벳인데, 이 알파벳의 사용은 대화자들이 공유하는 어떤 과거를 전제로 한다. 겁에 질린 나의 기억력이 가까스로 감싸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렙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준단 말인가. (……) 내가 그것을 옮겨 적은 것은 연속적으로밖에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언어 자체가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존재와 우주의 신비를 통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성적인 언어의 한계는 필연적으로 매직(magia)을 필요로 한다. 보르헤스는 에세이 「소설기법과 매직 El arte narrativo y la magía」에서 “매직이 인과관계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완결이거나 그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하는데, 심리적 허상으로 남는 자연적 인과성에 비해 “명쾌하고도 한정적으로 세부적 사실을 예견케 하는 마술적 인과성”이야 말로 “소설에서는 유일하게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알렙’ 앞의 화자처럼 우주의 상징으로써의 도서관과 ‘불완전한 사서’로써의 인간존재를(「바벨의 도서관 La biblioteca de Babel」), 뜰뢴의 백과사전을 통해서는 “공간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상호의존적 통합이 아니라 독립적인 행위들의 이질적인 연속”으로써의 우주(「뜰뢴, 우끄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와 타인에 의해 꿈꾸어지는 환영에 불과한 인간(「원형의 폐허 Las ruinas circulares」)을 다루고 있다.

2-3. 보르헤스와 꼬르따사르 이후의 환상문학
중남미 환상문학의 전성기는 그 주역이었던 꼬르따사르가 1984년에, 그리고 보르헤스가 1986년에 각각 타계함으로써 서서히 막을 내린다. 비오이 까사레스는 1999년 숨을 거둘 때까지 󰡔평범한 마술󰡕(1998) 등의 작품을 출간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보르헤스와 꼬르따사르 등 중남미 문학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소위 ‘붐’ 세대들의 퇴장은 이 지역 전체의 문학적인 역량은 물론 환상문학에도 적지 않은 공백을 남겨 놓았다.
붐 세대 이후의 중남미 소설을 통칭 ‘포스트 붐’ 이라고 일컫는데 이들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은 다양한 미학적, 언어적 실험성과 사회, 역사적 거대담론, 총체적 세계관을 추구하던 선배 작가들과는 달리 일상의 이미지와 액션 등을 사실주의적이고 자연스러운 언어로 묘사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애초의 혁명정신을 저버리고 친소노선으로 전환한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변질과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한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전복 등 1970년대 초반 중남미를 뒤흔든 일련의 정치적 지각변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중남미 지식인과 작가들은 좌파 혁명정권의 변질과 우파 군부독재의 득세 앞에서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전망을 상실했으며 심각한 무기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남미의 암울한 정치 상황은 1983년과 1990년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각각 군부정권이 물러남으로써 다소 호전되었지만, 연이어 들이닥친 경제적 위기는 1960년대 정점에 달했던 과거의 낙관주의적 전망의 회복을 힘들게 했다. 포스트 붐의 특징 중의 하나로 이사벨 아옌데나 끄리스띠나 페리 로시(Cristina Peri Rossi)와 같은 역량 있는 여성 작가들의 출현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담론의 주변화와 여성작가들의 등장은 환상문학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아나 마리아 슈아(Ana María Shua, 아르헨티나, 1951-  )는 󰡔꿈꾸는 여인 La sueñera󰡕(1984)과 󰡔게이샤의 집 Casa de geishas󰡕(1992)을 통해, 그리고 실비아 이빠라기레(Sylvia Iparraguirre, 아르헨티나, 1947-  )는 단편 「불의 주인 El dueño de fuego」(1989)을 통해 여성들의 일상적인 경험들과 관련된 환상을 다루고 있으며 이밖에도 에베 유아르트(Hebe Uhart), 막달레나 모우한 오따뇨(Magdalena Mouján Otaño) 등 주로 환상문학의 전통이 강한 아르헨티나에서 여류 작가들의 출현이 두드러진다. 보르헤스와 꼬르따사르 이후에도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중남미 환상문학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미카엘 뢰스너(Michael Rössner)는 이들 새로운 작가들은 이전 대가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그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실비아 이빠라기레의 「불의 주인」에서는 독일 출신의 여 교수 뒤셀도르프 박사가 진행하는 인류언어학 수업에 인디오 언어와 문화를 직접 증언하러 나온 한 토바족 인디오의 일화를 그리고 있는데, 처음에 단순 정보 제공자에서 인디오 언어를 발화함에 따라 문명의 옷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야성을 회복하는 인디오의 모습은 선생과 학생들 사이에 단순히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에서 그친다. 뢰스너에 의하면 꼬르따사르라면 바로 이 시점에서 “또 다른 현실로의 전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뢰스너는 또한 흑인 피아니스트의 끝없는 실패담을 통해 좌절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두는 입지전적인 이야기는 단지 할리우드식 환상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다룬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 1949년 생)의 「세실 테일러 Cecil Taylor」 역시 그 소재나 분위기가 꼬르따사르의 「추적자 Perseguidor」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후안 포른(Juan Forn, 1959년 생)의 󰡔아무것도 없는 밤 Nada de Noche󰡕(1991)도 꼬르따사르의 대표작 󰡔라유엘라 Rayuela󰡕의 아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뢰스너의 지적대로 보르헤스와 꼬르따사르 이후 아르헨티나 환상문학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선배 세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졌던 어떤 형이상학적 결말이나 놀라움이 보이지 않으나, 이는 작가들의 개인적인 역량 탓이라기보다는 거대담론과 총체적 전망을 상실한 붐 세대 이후의 변화된 시대적 패러다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환상성은 이름투르드 쾌닉(Irmtrud König)의 말대로 “각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적 형식”이며 따라서 아나 마리아 바레네체아가 지적하듯 그 개념과 의미 역시 시대별로 다르기 마련인 “사회문화적 코드와의 상호관계”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중남미 환상문학을 과거 거장들의 흔적과 비교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에 비추어 보는 일일 것이다. 아르헨티나 이외에 칠레의 끌라우디오 하르께(Claudio Jarque)와 다리오 오세스(Darío Oses), 멕시코의 알베르또 치말(Alberto Chimal)과 리까르도 베르날(Ricardo Bernal) 등에 의해 꾸준히 계보를 이어가는 중남미 환상문학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이 지역의 사회, 역사적 컨텍스트는 물론 문화적 흐름을 감안하여 좀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시일을 두고 분석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글을 맺으며
이제까지 거칠지만 중남미 환상문학 궤적을 도입기인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서두에서 밝힌 대로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으로 대변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논의에서 배제하였다. 그동안 국내에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환상문학 작가로 소개된 적도 있으나, 환상문학의 역사적 뿌리나 미학적 특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러한 견해는 분명 오류라 할 수 있다. 즉 마술적 사실주의와 환상문학은 초자연적 현상을 매개로 하는 구성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사구조와 인식론적인 면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편, 애초에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미학적 수입품의 성격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따라 모방과 수용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역으로 서구에 영향을 미친 중남미 환상문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아직도 이 문학 경향에 대해 다소 생소한 느낌을 갖고 있는 국내 작가와 독자들에게 하나의 참조할 만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겠다.






전용갑․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및 동 대학원 졸업ㆍ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 취득(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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