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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강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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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51회 작성일 08-02-26 23:36

본문

강우식


움직이는 나무


산에 가면
사람들은 모두가
한 그루 나무가 된다.

움직이는 나무가 되어
푸른 숨결을 가누며
후미지고 비탈진 산길도
잘도 오르거나 내려가기도 한다.

큰 느티나무 그늘에 닿으면
마음은 저절로 한 열댓 마지기쯤
安貧樂道의 품이 되어 쉬기도 하고

어질머리의 삶의 물굽이에서 벗어나
청솔바람 속에 몸을 맡기면
솔방울의 향기를 길잡이 삼아
어느덧 몸은
하늘 한 끝을 흐르는 구름을 타고 있고
또 하늘을 덮은 秘儀로 가득 찬
이깔나무 숲 근처에서는
비굴과 굴종으로 옹이진
일상의 티끌을 훌훌 털어내기도 한다.


이 모두가 나무들 곁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

산을 눈앞에 두고도
눈멀고 길을 잃어 헤매는
영혼들에 비해

움직이는 나무가 되어
산을 사원처럼 찾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운명의 잎새들로 흔들리는
리듬을 가졌는가.

오늘도 나는 이 땅에
견고한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들의 내뿜는 조화로운 숨길에서
산소를, 절대순수를 맡는다.



낡은 집


그해, 유월 어느 날
하늘에는 탐조등 같은
번개가 쳤다.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강원군 태백산골의
초가집 싸리 울바자에 꽂아든
人共旗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빈한한 농가였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의 발소리
밤비가 철버덕댔다.
하늘에는 조명탄 불빛의
번개가 터졌다.

초가집 식솔들은
아무런 사상도 없었다.
남과 북, 어느 편도 아니었다.
불온한 사상가도, 반동분자도
정말 아니었다. 그저 농사꾼이었다.

야밤에 들이닥친
국군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날벼락이었다.
밤에는 人共旗
낮에는 太極旗를 걸던 시절이었다

방바닥에는 선연한 피빛이 낭자하였다.
산 그림자 어둑해지자
“아빠, 기를 내달아야지예”
막내딸아이의 천진한 말 한마디
참변을 불러왔다.

미쳐 자신을 돌아볼 새도
돌아보아도 별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늘의 거울인 번개가 빈 집을
허깨비처럼 휘휘 저었다.


강우식․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벌거숭이의 방문󰡕 등, 시론집 󰡔절망과 구원의 시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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