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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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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生의 잎사귀
아카시아 잎사귀에서 운명을 읽으려던 시절이 있다. 가위 바위 보로 차례를 정하고, 한 잎씩 따들어 가거나, 노래를 부르며 박자에 맞춰 잎을 따냈다. 박자가 끝날 즈음마다 잎자루 끝에서 파르르 떨던 아카시아 잎사귀, 그 가느다란 떨림처럼 지구가 조그맣게 떨렸던 것 같다. 내 생이 그렇게 떨렸던 것도 같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아카시아 잎사귀를 떨구며 생의 密度를 읽으려던 시절, 동구 밖에서 내 생보다 훤칠하게 자란 아카시아가 아침 산책길의 내 生을 내려다보고 있다.
도로시의 가을
세월이 지나가는 가을 들판에 허수아비 하나 서 있습니다.
그 옆에 느낌표 하나 찍어 봅니다.
느낌이 있는 허수아비! 가을 들판,
분주한 농부의 손길 옆에 쉼표 하나 찍어 봅니다.
농부는 지나는 자리마다 마침표를 찍고,
일손을 놓고 잠시 쉬고 있는 농부, 옆에
쉼표 하나 찍어 봅니다.
농부가 화안한 미소를 띄며 담배 한 가락 피워 뭅니다.
담배를 피는 농부 옆에 말줄임표 여럿 찍어 봅니다.
………… 가을 들판 …………
가을걷이로 말이 필요 없는 가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할 말을 잃은 가을 들판에서.
허수아비 하나 남루를 걸친 채 바람에 휘청댑니다.
변종태․
1990년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멕시코 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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