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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고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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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식
오 대니 보이
한때 우린 불꽃으로 만나곤 했지
한여름 폭염 속 허름한 골방에 모여
서로의 홧홧한 가슴 어루만지던 때
밤새워 맑은 소주병 눕히며
우리 빛나는 절망을 향해 엉거주춤
울음으로 웃음으로 서 있곤 했었지
절정은 언제나 철철 넘치게 따라주던
당신의 흰 고무신 술잔
고단한 당신의 뒤꿈치를 우려
아, 산골짝마다 어김없이 울려나오던
목동들의 그 피리소리 듣고 있노라면
이쯤에서 우리 한세상 다 흘려보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네 생각도 했지
오늘 문득 날아든 당신의 편지 한장
훌쩍 건너 뛴 이십 년 세월 저쪽에서
피 끓는 청년 하나 말없이 웃고 섰다
하얗게 닦은 고무신 가득
찰랑찰랑 맑은 소주 한잔 부어들고
사나운 꿈
아까부터 수학 문제에 매달려 낑낑거리고 있는 중학생 아들 녀석 x 값에 매달려 꽉 막힌 원칙 속을 헤매기도 하고 x, y 변수 사이를 넘나들며 관계의 외로운 줄타기도 하고 거기 살아가면서 맞닥뜨려야 할 생의 서늘한 물구덩이 소복하다 “야 임마, 별것도 아닌 문젤 뭘 그리 끙끙거려” 한소리 툭 던져보지만 나이 들수록 풀리지 않는 문제들 지금도 문득문득 수학 시험지를 잡고 식은땀 흘려대는 그 가위눌리는 꿈이라니
고증식․
1959년 강원도 횡성 출생
․1994년 ≪한민족문학≫으로 등단
․시집 환한 저녁 단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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